99세 할머니 첫 시집, 일본 열도를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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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생님께

저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오늘은 무슨 요일?”
“9+9는 얼마?”
그런 바보 같은 질문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시바타 씨
사이죠 야소의 시를
좋아해요?”
“고이즈미 내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질문이라면
좋겠어요.

*사이죠 야소; 일본의 시인이자 작곡가, 불문학자.

제목; 비밀.

난 말이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

98세라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꿔
구름도 타고 싶은걸

제목; 화장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어머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해 줬다고
기쁜 듯이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이후로 정성껏
97세인 지금도
화장을 하고 있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제목; 녹아드네

주전자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은
상냥한
말 한마디


마음의 각설탕은
컵 안에서
기분 좋게
녹아드네

제목; 외로워지면

외로워질 때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떠서
몇 번이고 얼굴에
대보는 거야

그 온기는
어머니의 온기

어머니
힘낼게요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서네

시바타 도요 시집 ‘약해 지지 마’ 발매 6개월만에 70만 부 돌파!

지금 일본에서는99세 늦깎이 신인작가가 화제다.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 ‘약해 지지 마(くじけないで)’를

발간한 시바타 도요(99)씨가 그 주인공.

90대에 시인 데뷔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지난 3월에 발간하여 단 6개월만에

70만 부가 팔린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데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0세를 눈 앞에 둔 여성이 잔잔한 필체로 풀어낸 시는 많은 일본인에게

감동과 공감을 선사하고 있다.

시바타 씨의 시에는 인생이 녹아 있고, 삶의 용기를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입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시집에 대한 호평은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알려지며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량이 늘어가고 있다.

1911년 도치기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던 시바타 씨는 10대 시절,

아버지의 가산 탕진으로 인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일터로 향해야 했다.

이후, 전통료칸과 요리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20대에 한차례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33세에 평생을 함께 할 요리사 남편을 만나 외아들을 낳고, 그동안 재봉일 등

부업을 해가며 살아왔다.

평생을 글 쓰는 일과는 무연하게 살아온 시바타 씨는92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시 창작에 나서게 된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평소 취미로 하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적적할 어머니를 배려하여, 시인인 아들 겐이치 씨가 추천한 것이다.

남들보다 긴 인생이 재산이 된 시바타 씨의 시는 금세 사람을 감동시키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재능을 알아보고 신문사에 투고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시는 6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산케이 신문 1면, ‘아침의 노래’ 코너에 실리게 되었다.

구십 평생, 시 쓰는 법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고, 써 본 적도 없었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솔직하고 순수한 시바타씨의 시에, 유명시인이자 산케이 아침의 노래 심사위원인

신카와 가즈에 씨도 매료되었다.

신카와 씨는 시집 서문에서 “시바타 도요 씨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문에서 시바타씨의 시를 읽고 팬을 자처하는 독자들도 늘어났다.

시집을 출판한 아스카신서 출판담당자 이가라시 아사코 씨도 팬 중의 한 명.
이런 시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올해 1월,

시바타 씨를 직접 찾아가 시집 출판에 대한 제의를 했다.

처음 출판제의를 받은 시바타 씨는 처음에는 좀처럼 못 믿는 눈치였다고 한다.

평범하고 온화하게 일상을 보내던 그녀에게 일본 전국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내겠다고 하니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잘 만들겠다’는 설득 끝에 마침내 허락이 떨어졌고, 시집 ‘약해지지마’는

올해 3월 25일 전국 서점에 진열되었다.

<약해지지 마>                                                  <바람과 햇살과 나>

저기, 불행하다며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한숨 쉬지마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과 산들바람은                                           햇살까지 들어와
한쪽 편만 들지않아                                          셋이서 수다를 떠네

꿈은                                                              할머니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길래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난 괴로운 일도                                                나는 대답했네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끝까지 고집부리지 말고
편하게 가는게 좋아
너도 약해지지 마
다 같이 웃었던
오후

<저금 >

나말야,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면
마음속에 저금해두고 있어

외롭다고 느낄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

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
연금보다
나을 테니까
후기 (나의 궤적)

‘아침은 반드시 온다’

한 세기를 살았습니다.
….
제가 지금 혼자 사는 집에는 도우미가 일주일에 여섯번, 64세가 되는 외아들

겐이치가 일주일에 한번씩 와주는데, 솔직히 말해서 도우미나 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외롭고 슬퍼집니다.

특히 겐이치가 돌아 갈 시간이 다가오면 우울해지면서 말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다잡고 또 다잡으며’ 나 자신을 설득합니다.
“약해지지 마, 힘내, 힘내”라고.
….
이 나이에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정말 괴롭습니다.
그래도 나는 힘을 내서 침대에서 일어나, 버터나 잼을 바른 빵과 홍차로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날 도우미가 해줄 청소나 빨래를 정리하거나 장 볼 목록을 만듭니다.

또 공공요금 수납 등을 포함한 가계부와 통원 스케줄 등을 생각합니다.

상당히 머리를 쓰는 셈으로, 바쁜 편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외로워도 평소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인생이란 언제라도 지금부터야. 누구에게나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라고 말입니다.

혼자 산 지 20년.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시바타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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