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본과 관련된 일을 오래하다보니 다른 사람 보다 일찍 일본의 여러 글들을 접할 기회와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저에게 감명 깊었던 글 중에 오늘은 구리료헤이의 ‘우동 한그릇’이란 동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어 여자 진행자의 정감있는 낭독으로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 인터넷에서 한국어로 번역되고 동화가 곁들여진 글을 발견하여 8편을 연재하여 올립니다.

이 동화는 1989년 2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의원이 난데없이 무언가를 꺼내 읽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반쯤 진행 되자 여기저기서 눈물을 훌쩍이며 급기야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정책이고 이념이고 파벌이고 모든 것을 다 초월한 숙연한 순간이었으며, 장관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편을 가를 것 없이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국회를 울린 이 동화는 그후 드라마로 제작되어 NHK에서 방영되었고,일본 열도를 곧 울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 제목은 ‘잇빠이노가케소바(一杯のかけそば)’로 “소바”는 메밀로 만든 것이니 ‘메밀국수 한 그릇’으로 번역을 해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소바라고 하면 얼른 감이 오지 않고 우동이 더 친근해서 “우동”으로 번역을 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우동을 주문하면 단무지도 주고 깍두기도 주지만 일본에서는 매정하게도 달랑 우동하나만 주고 우리처럼 반찬 인심이 후하지 않다는 것은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一杯のかけそば(우동 한그릇) 1

해마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년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여자는 임시로 고용한 여종업원에게 특별 보너스와 국수가 담긴 상자를 선물로 주어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요오코 양, 오늘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네, 아주머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오코 양이 돌아간 뒤 주인 여자는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이제 두 시간도 안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

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 된 체크 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 머뭇 말했습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 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한화 약 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사람에게 주인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