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시평>
                  정치지도자와 음악정책

정령,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음악의 가치를 알라!

송진범 PhD.(한국음악교육협회 부회장)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이제 대선일이 불과 5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정치적 판도는 크게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 그리고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로 압축되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와 진보정의당의 심상정후보가 발을 들여놓았지만 여파는 매우 미흡하다. 그런데 이 네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나 정책들을 보면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여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사실 두 정당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북정책과 대국민 복지와 경제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후보라면 마땅히 분명한 자신들의 색깔이 존재해야하고 이를 국민에게 밝혀서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후보들은 여론조사기관의 분석결과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미리알고 이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홍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국민들은 어느 후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국정을 수행할지 판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언론보도를 자세히 분석하거나 평소 그들의 성향을 소상히 아는 국민이라면 그들의 국가관이나 가치관 그리고 정치철학에 대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러한 정치적인 성향이나 정책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엇

비슷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들의 성향을 판단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된다. 조선일보 10월18일자 A6면 ‘종합’ 란에 보면 “공약만 보면 누구정책인지 헷갈리는 한국대선”이라는 타이틀아래 세 후보의 경제공약에 대해 분석해 놓았다. 이 분석에 따르면 ‘경제민주화’라는 정책에 대해 세 후보 모두 ‘추진’ 및 ‘적극 추진’ 이라는 의사를 보이고 있으며, ‘대기업 규제’라는 정책에 대해서 역시 세 후보 모두 ‘추진’ 및 ‘적극추진’으로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증세’에 대한 의견에도 ‘검토’ ‘불가피’ ‘필요’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확대’ 혹은 ‘대폭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조선일보 10월19일자 A4 ‘정치’ 면에서는 “용어는 그럴듯한데 내용은 닮은꼴”이라는 타이틀로 역시 세 후보의 정책이 거의 같다는 분석기사가 올라와 있다. 여기서 박 후보는 “창조경제”를 문 후보는“공정경제”를 안 후보는 “혁신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세부 내용으로 가면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에는 왜 이들 후보들이 문화예술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약이나 견해를 갖고 있지 않은가, 라는 것이 의문으로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문화예술정책이 경제나 정치적인 이슈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들의 관심이 없거나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고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식견과 이에 걸맞은 정책입안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예술행위가 국민들의 삶과 행복에 크게 작용한다는 철학적 이상에 대한 상식과 자질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대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음악에 대한 신념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지도자로서 원만한 인격을 요구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공자의 ⌜예기(禮記)⌟중 ⌜악기(樂記)⌟편 제2장에 보면 “시고선왕신소이감지자(是故先王愼所以感之者) 고(故) 예이도기지 악이화기성(禮爾其志 樂以和其聲) 정이일기행 형이방기간(政以一其行 形以防其姦) 예악형정 기극일야( 禮樂刑政 其極一也) 소이동민심 이출치도야 (所仁民心 而出治道也)”라고 언급되고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선왕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있어 정치를 신중히 했다.

고로 예로써 뜻을 이루었고 악으로 소리를 화평하게 하였으며 정치로 행동을 하나로 만들었고 형벌로써 간교함을 막았으니 예악형정의 그 극점은 하나인 것이다. 즉, 모든 민심을 하나같이 하여 치국평천하의 도를 이룩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즉, 공자는 정치와 음악의 화합을 지도자가 가져야할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서는 예술을 가까이 하고 아끼며 그러한 마음을 소유하려고 하는 넓고 여유 있는 자세가 보이지 않고 상대방의 약점과 치부만을 들춰내서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견고하게 하려는 소인배적인 태도만이 보일 뿐이다. 소위 ‘폴리페서’라는 정치교수들이 각 후보들의 싱크탱크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 나서는 것 같다.

언론에 의하면 어떤 후보의 브레인 그룹은 수백 명이 되고 이들의 아이디어와 정책은 실로 황당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도와준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돌아올 과실을 그려보며 열심히 아이디어를 제출하기도 하고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양산해 내고 있는 공약이라는 것들은 미래 한국사회의 비전이라기보다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인기영합적인 정책이나 실행 불가능한 포퓰리즘 아이디어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어떻게 보면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이러한 ‘폴리페서’그룹에 음악교수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아니 후보들이 음악분야에 대해서는 무정책이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뿐인 예술분야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 작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바라기는 각 대선후보들이 음악분야에서도 청사진을 제시하고 음악인들의 검증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청사진에는 기존 음악가 단체나 음악학자 그리고 작곡가와 평론가들의 요구와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적극적인 자세가 진정 필요할 것이다. 사실 음악예술정책과 음악교육정책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 음악가들이 음악창작이나 연주활동만으로도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정치적 리더들의 관심이나 애정만으로도 훨씬 좋아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대통령이 한 달에 한번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참모들을 대동하고 소박한 차림으로 참석한다든지, 공연장에서 교향악단을 지휘해본다든지, 하는 일은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런 대통령의 행보가 언론에 보도되면 모든 행정부서나 경제인들의 지원과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선진 외국의 지도자들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최전방 초소를 방문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국군장병들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됨은 물론 관련 지휘관들의 근무 자세에 큰 자극을 준다는 것이 상식 아닌가 말이다.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가 꼭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성명이나 공약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음악에 대해 그냥 관심만이라도 가져준다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은 훨씬 자극을 받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어휘의 나열이 아닌 행동으로 음악인들에게 보여주는 지도자, 그들의 소박한 즐거움을 공유하는 지도자, 그래서 음악이 우리 삶의 바탕에서 행복을 주고 각박한 사회를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몸으로 보여주는 지도자가 진정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특별히 많은 시간과 돈이 그리고 고도의 추상적인 정책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없는 소박한 음악인들의 생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