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서양음악사(21회)

18세기의 음악과 사상

제가 어릴 적에는 유랑극단이라는 단체가 시골의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받고 서커스나 노래, 그리고 만담이나 재미있는 연극을 보여주었습니다. 마땅히 흥밋거리가 없던 시절 이런 유랑극단의 공연은 온종일 젊은이들과 시골 아낙네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곤 했지요. 부모로부터 입장료를 받아낼 재간이 없는 동네 개구쟁이들은 공연이 거의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주최 측에서 장막을 걷어 올리면 우르르 몰려 들어갑니다.  그러나 장막이 걷혀지기 전 장막 안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며 환성이 터져 나오기라도 하면 들어가지 못한 꼬마들은 애간장을 태우곤 했습니다. 이러한 유랑극단은 60년대 말부터 등장한 라디오와 TV의 연속 드라마 때문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70년대에는 도시공터의 한 귀퉁이로 쫓겨나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이때 본 천막영화중에서 “상록수”라는 영화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 영화는 1935년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영화화한 것으로 농촌의 문맹퇴치와 계몽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계몽운동의 중요한 목표는 일제로 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지만 당시 일제의 엄격한 검열을 의식하여 소설은 비교적 온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농촌을 계몽시키기 위한 젊은 남녀의 사랑과 열정입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계몽운동이 도처에서 많이 일어났는데 이를 브나로드운동이라고 동아일보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18세기 유럽의 정치사회적 구조

18세기 유럽의 정치사회는 우리의 20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봉건체제로부터의 해방, 종교적 획일성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계몽주의 사조가 문학과 예술운동으로 전개됩니다. 알다시피 1776년 미국은 조지 워싱턴에 의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합니다. 미국의 독립은 자유와 독립 그리고 개척과 창조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결국 민주적 자본주의 정치치제를 수립하게 됩니다. 이 미국의 독립정신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 그리고 평등을 극대화함으로써 근대 세계의 경제와 문화예술 전반에 지도적 위치를 고수하게 됩니다. 한편 1789년은 프랑스의 황제 루이16세가 그 가족과 함께 단두대에 처형되고 나폴레옹에 의해 공화정치체제를 이룩하게 됩니다. 공화정치가 무엇입니까. 글자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 프랑스 혁명은 결국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가치와 능력이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함으로써 민주화의 물결을 이루게 합니다. 물론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시민의식은 한참동안 정체될 수밖에 없었지만 한번 타오른 민주화의 물결은 그 뒤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가 된 국가로 나가게 된 계기가 됩니다. 한편 종교적 획일주의 혹은 편협성은 자연과학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고 결국 르네상스를 통한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6세기 중반 루터에 의한 기독교의 개혁운동은 시민들의 일방적인 종교의식을 깨우치게 하고 오히려 자연을 모방하고 응용하여 탄생한 과학의 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이와 같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발전을 요구하게 되는데, 음악에 있어서의 형이상학적 논리와 비평이 그것입니다.

2.음악의 형이상학적 고찰

사실 음악에 있어서 미학적 접근은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찍부터 음악은 철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굳이 이를 따로 떼어내 독립된 학문으로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음악의 존재는 종교적 행사나 의식에 부수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로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거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1750년 독일의 바움가르텐(Baumgarten)이라는 철학자에 의해 음악은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미학을 체계화하게 됩니다. 이후 미학은 칸트와 헤겔 그리고 쇼펜하우어 같은 대철학자들에 의해 형이상학적 학문으로서 인식을 높여나가게 됩니다. 특히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는 음악의 가사가 사실상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일종의 장식적인 요소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는 가사 없는 음악 즉, 기악음악이 성악음악보다 더 인간의 정신세계에 다양하고 깊이 있게 작용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악은 가사라는 단어의 의미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단어가 갖는 의미의 세계 안에 구속되게 되지만 가사가 없는 기악음악, 특히 교향곡과 같이 다양한 음향을 만들어내는 음악체계는 단어의 의미에 구속되지 않는 다양하고 폭넓은 생각과 상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악음악의 비언어적 음악세계는 언어의 의미를 뛰어넘는 예술적 철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해서 18세기 고전주의 기악음악은 예술적으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고급한 예술행위로 인정하게 됩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교향곡은 바로 이러한 철학적 형이상학이 가장 잘 구현된 음악이며 음악이 갖는 그 절대적인 가치를 즐기는 음악이라 하여 “절대주의 음악(absolute music)”이라고 음악학자들은 규정하게 됩니다. 또한 장 폴(Jean Paul)이나 박켄로더(W.H.Wackenroder) 그리고 티크(L.Tieck), 호프만(E.T.A.Hofmann) 같은 문학가들은 음악이 인간의 내면세계에 직접 작용하여 감성을 움직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행위라고 믿게 됩니다. 특히 장 폴은 “음악이 세계의 가장 높은 메아리(Das höchste Echo der Welt)”라고 하여 음악이 정신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구현할 수 있는 매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소설 ⌜헤스페루스(Hesperus)⌟에서 “높은 인간(Hoher Mensch)”이 가지는 현실과 이상에 대한 정신적 갈등을 ‘발트(Walt)’와 ‘불트(Vult)’의 삶을 통해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즉 발트는 감정적이고 몽상적인 성향으로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허상을 동경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반대로 불트는 구체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현실”을 중시하지만 결국 감정적이고 몽상적인 삶을 동경하게 됩니다.

3.음악에 있어서 절대성 혹은 형식미의 의미

장 폴의 소설 ⌜헤스페루스⌟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격정적인 정서를 중시하게 되고 그 목표는 비현실적인 동경의 세계를 꿈꾸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바케로더’나‘티크 ’같은 문학가들의 작품에서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로버트 슈만의 음악세계나 슈베르트의 가곡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론 슈만을 한없이 존경했던 브람스, “종교적 본질이 예술로 옮겨갔다”고 생각했던 바그너의 작품에도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중에서 박켄로더 같은 소설가는 그의 소설 ⌜수도사⌟에서 음악과 종교를 같은 차원의 영적 세계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그는 주로 교회를 방문하였고 트럼본과 트러펫 소리와 함께 높은 천장 밑을 울리는 오라토리오 선율음악, 합창을 들었다…..음악이 끝나고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순수해지고 고귀해지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들으며 그 한없는 경외감과 카타르시스를 음악을 통해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음악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작용하여 신앙적 정화작용을 함께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면 이러한 음악이 그려내는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에 있을까요. 작곡가이자 평론가인 호프만(E.T.A. Hofmann) 은 베토벤의 5번“운명”교향곡을 ‘기악음악으로서 가장 완벽한 음악’이라고 평을 하면서 ‘음악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의식’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18세기의 철학과 문학가들에 의한 음악의 재평가작업은 작곡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결국 ⌜고전주의(classicism)⌟라는 음악사상 가장 빛나는 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예술음악을 말할 때 ⌜클래식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1750년부터 1802년, 즉 베토벤의 3번 “영웅”교향곡이 초연되기까지의 시대적 구분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문학과 철학적 사상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물결을 만들게 되었고 인류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용광로 속에서 녹여진 거대한 음악세계의 흐름을 수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모차르트가 그랬고 하이든이 그러했으며 베토벤과 슈베르트 슈만이 이러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그려나간 것이지요. 후에 음악학자들은 이러한 시기의 음악을 음악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 즉, 음향이나 멜로디, 음악적 기술로 잘 포장된 소리들의 향연을 듣고 즐기며 이를 자신의 정신세계와 견주어 삶을 보다 정결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기 원하는 대중들의 마음을 충족하게 된 것이지요. 다음호에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음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