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서양음악사<열 두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지휘자 송진범 집사입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었군요. 좀 더 재미있게 풀어가지 못하고 딱딱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지만 그게 쉽지 않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여러 집사님들께서 이글을 읽고 한마디 코멘트 해주시면 글을 연재하는 좌표로 삼아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음악, 가장 완전하고 이성적이며 관념적이기까지 한 고전주의시대의 음악을 시작하겠습니다.  

1.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이런 말을 듣지요.

“그래 넌 취미가 뭐야?”
“음악 감상!”
“어떤 음악, 팝송? 재즈? 뽕짝? 클래식? 랩?”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 친구는 정색을 하며,
“난, 조용하게 흐르는 재즈음악이 좋아! 특히, 늦은 밤 식탁 앞에 앉아 집사람과 와인이라도 한잔하면서 들으면 뭐,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이지! ”…….

뭐, 대략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클래식이란 어휘가 오늘 이글의 키워드입니다.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직설적으로 ‘고전’입니다. 고전주의가 되려면, ‘클래서시즘’ (Classicism)이라고 표기하여야 하지요. 그런데, 주로 대중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자신들의 대중음악과 반대되는 의미로 ‘크라식’이라는 어휘를 간혹 사용하는데, 이는 ‘고전음악’의 독일식 표현인 ‘클라식 음악’ (Klassikalisches Musik)을 일본식의 발음, ‘크라식 옹가쿠’로 불려 내려온 습관입니다.

그런데 이 고전음악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대중음악의 반대개념으로 구축되어 오늘날까지 순수예술음악의 대명사가 되었을까요. 왜 고전음악이라는 한 시대를 지칭하는 ‘양식개념’이 과거와 현대의 음악을 나누는 ‘시대개념’으로 고착되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외래어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그냥 자신의 신분이나 교양을 나타내기 위한, 조금은 촌스러움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합니다.

실제로 1920~30년대 서구의 문화가 갑작스럽게 밀려들어올 무렵 소위 ‘신여성’이니, ‘자유부인’이니 하면서 무작정 서구문화를 따라하던 때가 있었지요. 한국에 있어 서구음악의 유입은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가져온 찬송가를 통해 이루어 졌다고 알려져 있고, 이것이 고종의 군악대로 인해 멋있는 음악으로 당시 우리민족에게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크라식 음악’ 이라는 용어는 순수예술음악을 말하는 단어로 일반화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연재하도록 하고 오늘은 고전주의음악의 탄생배경부터 알아보겠습니다.

2. 18세기 유럽은 이전시대까지 국가를 지탱해왔던 두 개의 축, 기독교와 왕권의 권위가 점차 약해집니다. 그 이유는 지난 중세음악을 다루면서 어느 정도 설명을 드렸지만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변화와 자연에 대한 연구와 이용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문학과 사상의 변화입니다.

18세기 들어 영국의 존 로크,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볼테르 같은 문인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인간성의 위대함이나 존엄, 그리고 평등을 이야기 하고 신의 존재를 무조건적 숭배의 대상이 아닌 의지와 도움의 대상으로 또 ‘없는 이’와 ‘박해받는 이’들의 신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결국 많은 사람들을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게 만들었으며 결국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눈을 돌려 음악계의 형편을 알아볼까요? 1750년은 위대한 바흐가 죽게 되고, 이어서1759년에는 헨델이 서거하면서 ‘바로크’ 시기는 완전히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1756년 태어난 모차르트는 1750년 이후 정열적으로 음악활동에 매진하게 되고, 하이든 역시 1760년 이후 그의 상전인 ‘에스테르하찌’ 대공의 보호 하에 위대한 음악을 양산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고전주의란 이렇게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활동했던 1750년부터 그들이 역할을 다하는 1802년까지 약 50년 동안의 음악을 말합니다. 이 고전주의 시대의 양대 산맥인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1800년을 기점으로 모두 서거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물론 1802년을 고전주의의 끝으로 보는 견해는 그해가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3번 교향곡은 이전의 음악형식에서 완전히 다른 양식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음악은 다른 양식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50년 동안의 짧은 시기의 음악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모든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에게 원숙한 그리고 깊은 미학적 성찰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경이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 음악의 가치는 어느 시대의 음악적 완성보다 더 깊고 경이로운 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답고 가치로운 음악의 완성. 그것은 실로 위대한 인간의 창조였습니다.

3. 고전주의의 탄생과 더불어 어떠한 조건과 생각들이 이러한 음악을 낳게 했을까요. 먼저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볼까요? 종교적으로는 무비판적인 종교활동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친숙하고 의지할 수 있는 종교를 수용합니다.  이는 16세기에 있었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여파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상적으로는 계몽주의(Aufklarung) 사조가 당시 문인들과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통해 사회저변으로 확대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도덕과 논리를 거부하고 생사의 신비,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상식과 경험, 논리와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했고 자유와 평등으로 자신의 존엄을 누리려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흐름은 음악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의 단순성입니다. 단순함(Simple)이란 순수함과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있는 단어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자연스러움과도 일맥상통하지요. 이는 그 이전 시대의 음악과 모든 사회풍조에서 단순하고 경쾌하며 우아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시대로의 변화입니다.

자, 우리가 18세기 유럽인들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까요. 그들의 머리는 길게 땋아서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가발을 뒤집어쓴 귀족들의 헤어스타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들의의상은 수많은 단추와 금박 입힌 천으로 짠 화려한 패션입니다.  외투는 바닥까지 끌리는 우아함 의 극치입니다. 구두는 어떤가요. 무릅 까지 올라오고 코가 뾰족한 긴 장화, 그 발로 카펫이 깔린 대리석의 궁정을 거니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어느 부자나 권력자라 하더라도 따라 갈 수 없는 ‘사치로움’ 입니다. 그것에 질린 것이지요.

여기서 단순함이란 그렇게 화려하고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우아한 품위를 나타내는 그런 음악과 회화, 그리고 건축물과 일상생활입니다. 이러한 양식을 ‘갤런트 스타일’(독,Gallanter Stil / 영, Gallant Style)이라고 합니다.  1750년대 이후 1802년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음악적 경향을 우리는 ‘고전주의 음악’이라고 말하고 흔히 말하는 순수예술음악의 통칭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고전주의 음악과 더불어 독일에서의 문학운동이었던 ‘질풍노도’의 개념을 알아볼까요.  1760년대 독일의 레싱(Lessing)과 헤르더(Herder)는 새 시대의 감각에 맞는 문학운동을 주도합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 철학, 과학과 예술이 개인의 복지와 존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같은 철인들의 사상을 문학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요. 이들은 이성을 존중하고 생활 속에서 모든 정치적 활동이나 문화적 활동이 철학과 논리에 위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소위 공리주의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음악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고 일반 대중들이 그동안 잘 듣지 못했던 귀족들의 음악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18세기 음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하게 된 원인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