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서양음악사9

지난시간에 안토니오 비발디의 생애와 음악을 알아봤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음악, “사계” 같은 것을 연상하면서 읽어보시면 좀 실감이 나지 않을까요? 오늘부터는 우리가 어릴적에 음악의 아버지라고 배웠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생애와 그 음악의 특징들을 3회에 걸처 알아볼텐데요, 우리가 아는 바흐의 음악세계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J. S. 바흐의 생애

우리 음악역사상 바흐의 생애처럼 극적이고 영웅적인 그리고 존경받는 음악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의 삶을 보면 가난한집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음악을 공부하여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고, 교회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집안의 살림을 덜어드리려했던 효심이 지극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기독교 신앙과 처음부터 함께 하였는데, 이는 그의 음악이 얼마나 성스럽고 진실한 것인지를 알게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청년기는 잠시 교회를 떠나 쾌텐의 궁정음악가로 살기도 하였는데, 이는 청년기의 왕성한 승부욕과 권위에 대한 도전의식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20대까지의 교회음악가, 30대의 궁정음악가 40대에 이르러 성 토마스 성당의 교회음악가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교회 밖을 거의 나가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음악작품도 이에따라 세속적인 음악과 교회음악으로 크게 대별됩니다. 다시말하면, 그의 삶 자체는 세부분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제1기는 이십대에서 삼십대 초반의 교회 오르간 연주자, 그리고 코랄 프렐루드나 푸가 같은 교회음악작곡가로서의 역할, 제2기는 이후 삼사십대의 세속음악 작곡가로서의 역할, 그리고 제3기는 사십대에서 오십대이후 까지로서 기독교에 헌신하면서 후진 양성에 매진했던 시기, 등이 그러합니다. 이같은 그의 음악적 인생은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있는데, 유전학자 멘델은 바흐의 가계를 유전적으로 분석하여 음악가의 재능이 유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했지요.
아뭏든 그의 음악을 보면 200여년동안 많은 음악가를 배출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한 모습이구요, 그 정신은 이러한 전통적 가문의 음악적 영혼이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답니다. 바흐는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이어가는 일이 매우 중요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작곡가의 작품을 사보(寫譜)하거나 정서(正書)해 줌으로서 그 수수료를 받아 생활에 보탬이 되곤 했습니다.  

이런 사보나 정서활동은 금전적으로 작은 보탬이 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흐 자신의 음악연구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유학시절에 사보를 해서 돈을 벌어 보려했던 적이 있습니다만 수요도 별로 없고 어렵기도하여 그만 둔적이 있답니다. 악보를 사보한다, 혹은 그린다는 것은 매우 섬세한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방대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중세에는 이 악보를 일일히 그리기 어려우니까, 가로 1m, 세로 2m쯤되는 대형 악보를 하나 그려서 20여명의 성가대원이 멀리서서 보고 불렀다는 것이죠. 요즘에야 좋은 악보가 깨끗하게 인쇄되어 나오니까 사보의 필요성이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 작곡하시는 분들중엔 손으로 일일히 악보를 그려서 만드는 분도 있는것 같습니다.  

2.바흐의 어린시절

바흐는 1685년 북독일의 ‘아이제나흐’(Eisennach)에서 태어나 교회 음악감독이었던 부친과 역시 교회음악가로 ‘파헬벨’의 제자였던 형 ‘크리스토프’로 부터 기본 적인 음악이론과 바이올린, 그리고 오르간을 배웠습니다. 그의 악기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은 이후 오르간과 바이올린 작품을 쓰는데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지요.  

그가 자란 북독일의 ‘아이제나흐’라는 지역은 토양이 매우 척박하고 날씨도 고르지 못한 곳이지만 철광석이 나는 광산촌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제나흐’라는 동네이름이 철(鐵)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어린시절 그는 이지역 광부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음악적 감각을 느끼곤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의 가계는 6대에 걸친 음악가 집안으로 많은 음악가를 배출했으며, 이는 바흐 가문의 음악적 특성이 매우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바흐는 오르간과 바이올린의 연주에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유명한 연주가의 음악을 듣기위해 그곳에서 함부르크까지 걸어서 가곤했으며, 그 열정과 노력이 대단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쾌텐’의 교회 오르간 연주자 시기에는 ‘북스테후데’라는 유명한 음악가의 연주를 듣느라고 정신이 팔려  휴가기간도 넘겼다고 하니 정말 음악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덕분에 고향에 돌아와서 주교님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다고합니다.

3.바흐의 기악음악

바흐의 음악은 아무래도 기악, 그중에서도 오르간이나 바이올린과 관련된 음악이 많은것 같습니다. 오르간과 관련한 음악으로는 ‘코랄 프렐루드’와 트리오 ‘소나타’, ‘토카타와 푸가’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체로 이탈리아이 음악에 많이 영향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흐가 어릴적 부터 이태리 출신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나 작곡가들의 음악을 사보나 연주를 통해 듣고 배웠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의 음악이 이렇게 이탈리아나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민속음악을 많이 활용하게된것은그들 나라의 음악적 요소를 사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구하게된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다보니 바흐의 음악세계는 점차 국제적인 경향을 띄게 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된 것이지요. 이것은 정말 중요한 변화이자 시도인데 작곡가가 한 자역적 특성에서 벗어나 범 세계적인 음악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음악을 새로운 감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를 두고 바흐를 국제적인 음악가, 혹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우게 된것입니다.

그의 오르간 작품중 “프렐루드와 푸가”라는 형식은 비발디나 북스데후데 같은 이탈리아작곡가들의 스타일에 자신의 독일적 요소를 가미하여 번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답니다. 이 프렐루드와 푸가라는 음악형식은 그 리듬이 활발하고 기교적인 어법으로 당시 연주가들에게 큰 도전의식을 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음악어법(musical idiom)은 음악이 무언가 어떤 의미를 갖게하는 중요한 힌트로서 나중에 낭만주의 음악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례이기도 하지요.

그 규모나 형식의 정교성은 또다른 음악의 분위기를 낳게 하였는데 이러한 기법이 후에 바로크음악(Baroque music)이라는 사조를 이루는 토대가 됩니다. 그의 작품중에 “코랄 프렐루드”라는 형식이 있습니다. 글자그대로 보면 ‘합창형식의 전주곡’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전주곡이란 원래 어떤 음악의 극적 표현물중에 가장 앞서 연주되는 음악으로 그 극적 표현물의 분위기나 배경을 악기가 미리 연주하는 음악형식인데, 바흐는 이러한 형식을 빌려 독립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답니다.

이 코랄 프렐루드는루터교의 교회 문답과 미사에 나오는 찬미가를 사용하여 신자들에게 보다 쉽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또한 성부,성자,성령의 삼위가 일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플렛이 3개인 음악, 즉 다단조의 음악이나 내림마장조의 음악으로 작곡하였습니다. 즉, 플렛(b)을 성 삼위일체로 표현하여 세 부분에 독립된 주제와 리듬을 부여하면서 음악이 세개의 독립된구조로 출발하여 나중에는 다른 주제와 결합하도록 하여 삼위일체의 의미를 갖도록 설계한것이지요.  오르간과 관련한 음악형식으로 다른 하나는 트리오 소나타입니다.  이 소나타는 6개정도가 작곡되어 있는데, 온몸의 지체를 활용하여 오르간을 연주하도록 작곡되어있어 오르가니스트에게는 매우 도전적인 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건반이2~3개인 오르간에 양손으로 선율을 연주하고 발로는 또 다른 베이스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결국 3개의 선율이 연주되도록 한 음악입니다. 참 놀랍지요. 우리의 뇌 구조는 하나의 독립된 사고와 판단이 가능하도록 체계화되어있는데, 그러한 뇌의 역할이 동시에 3가지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것은 분명 도전적인 기술이 아닐수 없습니다. 오늘은 바흐의 오르간 음악까지 알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