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서양음악사4

1.오페라의 시작
요즘 대중음악계에서는 ‘뮤지컬’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뮤지컬은 주로 젊은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두터운 메니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대 공연문화의 충성스런 감상자로 우리 사회의 예술흐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1970-80년대 만해도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음악사전에나 존재하는 정도였고 오히려 오페라라는 용어가 익숙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유럽의 예술적 가치가 집약된 오페라보다 현실적인 가치와 실용적인 이상이 형식화된 미국적 뮤지컬이 오페라의 무대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왜일까요. 우리 근대사를 잠깐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1945년 미국의 힘에 의해 갑자기 해방을 맞은 우리나라는 미국의 군사정부를 통해 미국식 정치사회문화제도가 물밀듯 들어오게 됩니다. 일제의 군국주의적 폐쇄와 압제의 문화가 갑자기 자유와 개방적 문화로 전환되면서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된 것이 사실이구요. 무엇보다 변화가 급격했던 것은 대중음악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니스커트에 퍼머 웨이브를 한 대중가수의 출현은 당시 많은 젊은 남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후 사회의 놀라운 변화에 편승하여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역동적인 거리문화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극장안의 음악으로 형식화하여 한국의 중산층과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음악과 춤과 연기가 곁들여진 음악의 원조는 이미 16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몬테베르디라는 사람이 시작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당시 이탈리아의 신부로서 많은 교회음악을 작곡하여 오늘날에도 르네상스 작곡가로 음악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왜 16세기에 뮤지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의 형식을 선보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처음에 ‘종교극'(Liturgical Drama)이라는 형태로 시작됩니다. 즉,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이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음악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어떤 사실적 표현을 실제 극의 형식을 빌려 재연하기 시작한 것이 ‘종교극’이라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신약성서에 보면(마태복음1,2장/ 누가복음1,2장)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에 의해 말구유에서 태어난 후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와 유황과 몰약과 황금을 바치면서 참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미 동방의 학자들로부터 인정되었으며 이는 신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의해 준비되어왔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독특한 이미지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핵심적인 사실이며 팩트 입니다. 이를 보다 흥미롭게 사실적으로 묘사해 보고 싶었던 것이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 음악가들입니다. 즉 ‘종교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성경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함으로써 기독교가 신비적 종교에서 현실적 종교로 이해되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이와 함께 나타난 다른 음악극은 소위 ‘목가극’(Pastoral Drama)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전원적인 사회의 한 단면을 음악 극화시킨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던 예술장르입니다. 흔히 중세시대의 영화나 소설들을 보면 한 영주의 젊은 아들이 말을 타고 혼자 넓은 영지를 돌아다니며 사냥하기에 전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는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사슴을 찾아 헤매다가 배가 고프고 피곤해져서 쉴 곳을 찾게 됩니다. 그는 어둠이 밀려오고 인적마저 끊긴 산속을 혼자 헤매게 됩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젊은 왕자는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를 발견하고 말을 돌려 그곳으로 다가갑니다. 인적이라곤 전혀 없는 그곳 작은 오두막에는 예쁘고 젊은 처녀가 나와 공손하게 왕자를 맞아들입니다. 두 사람은 특수한 장소와 공간속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성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짧은 사랑의 시간은 금세 지나고 두 사람은 서로 헤어져야할 처지임을 알고 돌아서게 됩니다. 왕자는 곧 당신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갑니다. 처녀는 헤어진 왕자를 한없이 기다리지만 궁으로 돌아온 왕자는 아리따운 귀족의 딸들과 호화로운 생활에 젖어 그녀를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지요.

자, 예를 들면 이런 스토리입니다. 이런 목가극은 당시 젊은 귀족 청년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소재였고 이 소재는 그들이 좋아하는 ‘연작 마드리갈(Madrigal cycle)’ 선율에 붙여지면서 음악과 연극의 요소가 합쳐진 하나의 예술로 탄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연작 마드리갈이란 당시 교회음악이 점차 세속화하여 이성간의 사랑이나 자연을 노래하는 음악으로 특히 젊은 층에 인기 있었던 세속음악입니다. 여기서 연작이란 극의 내용에 맞게 마드리갈을 연속으로 편성하여 극의 효과를 내기위해 만든 것으로 일종의 ‘메들리’입니다. 그런데 이곡들은 요즘의 ‘카라’나 ‘소녀시대’의 노래쯤으로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이런 음악이 극과 함께 어우러졌으니 얼마나 재미있고 흥분 되었겠습니까. 이것은 당시 르네상스라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등장했던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극화하여 더욱 광범위한 음악극의 소재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것이 오페라가 만들어진 16세기의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2.이탈리아의 오페라와 작곡가
몬테베르디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오르페오(Orfeo)는 물론 고대 그리스의 음악신의 사랑을 극화시킨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인간의 순수한 사랑과 헌신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미 중세의 기독교적 삶의 목표가 지극히 단순하지만 인간적인 주제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음악이라면 그리고 음악극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관대하심을 그리고 찬양하는데 목적이 있었지만 이제 16세기가 되면서 이러한 음악의 연주와 찬양의 대상이 이성의 사랑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생의 허무함이나 존재 등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달리 표현하면 사람들의 관심영역이 종교적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이성과 과학의 힘을 더 중시하고 믿으려한다는 점이지요.

이 당시 로마의 오페라 작곡가들을 보면 스테파노 란디, 루이기 로씨, 마크 안토니오,피에르 카발리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이러한 한 인간 혹은 영웅의 생애를 그림으로써 이러한 휴머니즘에 입각한 오페라를 쓰게 됩니다. 물론 이 오페라의 내용을 보면 성악가의 기교적 요소와 더불어 기악적인 요소도 매우 효과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인들의 음악적 욕구가 무척 컸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음악 수요가 있는 곳에 좋은 음악이 탄생하고, 청중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음악은 고급화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 당시 로마인들의 음악에 대한 공헌은 본의 아니게 무척 컸다고 볼 수 있죠.

베네치아 역시 1630년대 오페라의 중심지로 큰 역할을 했는데 몬테베르디, 카발리 등은 규모가 크고 대규모적인 무대 장치를 도입하여 음악과 더불어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들의 오페라는 전반적으로 서정적인 분위기와 장엄한 관현악의 사운드, 악곡 중간 중간에 나오는 서주 및 간주 등은 바로크 오페라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은 음악을 통한 심리묘사에 능했다는 점, 레시타티보 (오페라에서 줄거리를 빨리 전달하기위해 대화하듯이 일정한 음높이에서 주고받는 선율)를 통해 충분한 줄거리 전달과 아리아의 수준 높은 가창력과 열정이 표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17세기의 오페라는 매우 수준 높은 예술적 기교와 심리적 내면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다음호에서는 17세기의 교회음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