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시대의 음악

1.바로크의 어원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미술선생님이 계셨는데, 키가 작고 땅딸막한데다, 곱슬머리에 얼굴은 반짝거리고 붉은 빛이 도는, 그러면서 매섭기 짝이 없는 분 이었습니다. 그 분은 늘 30센티쯤 되는 막대기를 전과의 보도처럼 들고 다니셨는데, 좀 떠드는 아이가 있다 싶으면 가차 없이 그 작고 매운 막대기가 날아가 순식간에 그 까까중머리통 위에서 “딱!”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미술사를 전공하셨는지, 늘 바로크며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소리쳐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듣도 보도 못했던 단어를 따라 하기도 어색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그림의 특징을 구분할 능력이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외워야 했고 가차 없이 점수를 깎아 버리는 통에 미술시간은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 음악사를 가르치는 요즘도  “바로크”란 단어만 나오면 그때의 공포가 떠오르기도 하여 괜히 몸이 움츠려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그 “바로크”란 말의 어원은 “괴상하다”, “기괴하다”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하니 미술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어떤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니 참 이상한 노릇입니다. 이 “바로크”란 어휘를 아무리 점잖게 해석을 해도 “특이하다”거나 “지나치게 장식적인” 정도로 해석이 되니 예술사의 한 장르를 이름 짓기에는 왠지 의문이 많이 가는 용어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 바로크가 왜 예술사에 등장해서 17-18세기의 예술형태를 이름 짓게 되었는지 이번시간에는 바로크의 의미와 그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해 음악적 관점을 가지고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7세기의 음악, 무엇이 괴상하다는 뜻일까요. 왜 이런 이름이 예술사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전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16세기말에는 이미 교회의 권한이 약해지고 반대로 자연과학과 천문학, 인문학과 철학이 발전하여 기존의 학문적 토대가 심하게 흔들리게 된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크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제,사람들은 점차 자연의 힘을 빌어 보다 편리하고 여유 있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전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프랑스와 독일간의 30년 전쟁이 아직 진행 중 이어서 하층민들은 늘 노동력과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중세 말에 찾아왔던 종교적 억압과 고통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2.바로크 음악의 배경

  17세기가 되면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렇게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안목이 바뀐 것이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이당시 이탈리아는 독일과의 30년 전쟁으로 민심이 흉흉해졌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30년 전쟁’이란 ‘종교전쟁’이라고도 말하는데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개신교도들의 조직적인 반발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는 국제간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되고 따라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이 전쟁에 연루되게 됩니다.  일종의 영토와 패권전쟁으로 변해갔지요.  

  음악적으로 보면 이탈리아는 17세기 이전까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전 분야에서 가장 선진화된 국가였습니다. 예를 들면  귀족과 종교 후원자들을 통해 설립된 음악아카데미는 전문적인 음악가를 양성하였고, 이들은 베니스를 중심으로 한 오페라활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됩니다. 한시대의 음악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시대의 새로운 음악사조는 ‘합리주의적 관점’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받아들이는 문제였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서는 이 ‘새로운 접근’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 방향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방향은 음악을 가사와 멜로디, 둘 중 어느 쪽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즉, 성악곡에서 멜로디를 음악의 중요한 포인트로 보느냐, 아니면 가사의 내용을 더 중시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 시대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니 참 기묘한 노릇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악작곡법에 대한 논쟁은 그 후 기악음악의 기교적 표현이 예술행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성악의 가사를 통한 예술성의 표현이라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때 악기나 성악의 기교적 표현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고 믿어 음악은 구체적인 내용전달의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즉, 오페라나 판타지 음악의 기초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관용법적 작곡(Idiomatic Writing)”이라고 말합니다.  즉, 작곡가가 어떤 생각이나 인물을 표현할 때 그 독특한 캐릭터를 음악의 독특한 선율이나 리듬으로 제시함으로써 나중에는 청중들이 그 멜로디만 나와도 그 생각이나 인물을 연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낭만주의 시대에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에서 즐겨 사용했던 지도동기 (指導動機: Leit Motiv)의 17세기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이 당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의 발달은 음악에도 직접적인 관여를 하게 되는데, 작곡에 대한 수사학적 원리를 적용하게 된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서양음악이 매우 조직적이고 형식적인 모양을 갖게 되는 바탕이 됩니다. 데카르트는 개념에 대한 사유방식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는데, 어떤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 ‘착상’ -‘부제’ -‘완성’ 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음악에서는 “Inventio(착상의 발견)” – “Dispositio(부제의 배치)” – “Elaboratio(음악의 완성과 장식)” 라는 단계로 해석하게 됩니다. 여기서 Inventio는 다름 아닌 음악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동기(Motive)’와 이의 발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Dispositio는 부 주제나 제2주제 등을 말하고 Elaboratio는 cadence(종결악구)를 말합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18세기 화성학과 대위법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결국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음악의 구조에 기본 골격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두 번째 방향은 리듬입니다. 17세기의 리듬은 두 가지 관습에 의해 지배됩니다. 하나는 작곡가 자신이 가지는 예술에 대한 집념 혹은 도전의식입니다.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적 표현 도구를 가지고 마음속에 품었던 감정이나 의도를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음악가가 아닐 테지요. 그러나 작곡이란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해서 그 표현 방법마저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그의 작품을 연주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겠지요.

그래서 작곡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전통적으로 만들어진 리듬의 구조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체제와 관습을 옹호하려는 보수적인 사회체제와 작곡가의 새로운 체제와 변혁에 대한 진보적인 생각이 그러한 심리적인 갈등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현상이고 크게 보면 사회발전의 변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17세기 오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