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신학에 관련된 서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미국 신학자 달라스 윌라드가 쓴 하나님의 모략이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박영선 목사님께서 직접 추천해 주셨다는 것과 두 번째는 책이 너무나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시간이 있을 때였는데도 이 책을 읽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러나 책을 다 읽었어도 무슨 내용인지 머리에 남지 않아 다시 한 번 읽었다.

다시 한 번 읽은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내용은 여전히 간추려 지지 않았지만 신앙생활 잘 하면서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소개해 주신 성경은 드라마다 또는 세계사는 이야기다 라는 책들은 제목이 매우 신선하고 친근감이 갔다. 마침 수련회 때 독후감 발표를 하겠다는 말씀도 하셔서 서너 시간 만에 독파해 버리겠다는 각오로 책과 마주했다. 오산이었다.

위에서 말한 책처럼 어렵지는 않았지만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 순전히 책 읽는 시간만 계산을 하면 10시간이 걸렸지만 그 10시간이 걸린 전체 날짜를 계산하면 3주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성경은 드라마다 라는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책 한 장을 넘기기 전부터 짐작이 갔다. 성경은 이 사람 저 사람이 써 놓은 것을 모으고 편집한 책이 아니라 어떤 한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구도를 갖추어서 작품으로 썼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는 작가가 있고 연출자가 있고 배우가 있고 관객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 했을 것이다.

나의 이런 사전 짐작은 약간 빗나갔다. 우선 책이 어려웠다. 쉽게 속독으로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한동안 미루어 두었다가 원고 마감 독촉을 받은 작가처럼 하루 이틀에 집중해서 읽었다.

나는 삼위일체의 교리에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잠시만 양해를 구한다. 이 드라마에서 작가는 하나님이시다. 연출자는 두 분이신데 예수님과 성령님이시다. 배우는 누구일까? 우리들 아닌가? 관객은? 아마 천사들과 사탄일 것이다. 이 적용이 틀린다 해도 용서를 바란다. 당일치기 독후감임을 이미 고백했으니 말이다.

1. 제 1막 : 하나님이 나라를 세우시다 (창조)

(1) 우리 민족은 나라를 세운다는 말에 익숙하고 개념도 분명하다. 그 분명한 증거는 개천절이다. 어느 민족도 나라를 세운다는 말과 하늘이 열린다는 말을 같은 개념으로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국가가 시작된다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2) 이 책은 몇 걸음 더 나간다. 모든 나라를 시작하시기도 하고 닫기도 하시는 그분께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당연히 질문은 그 하나님은 누구신가로 가며 이 책의 설명은 야웨 하나님과 엘로힘 하나님이 합쳐진 것이 그분의 이름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 뜻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라는 뜻이고 그러니 그분은 나라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다. 작가는 47 페이지에서 창조세계는 그분의 인격적 의지의 산물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작품을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것은 그분의 말씀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그분의 나라 탄생 배경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창조하신 후 모든 것을 선하다, 좋았다 라고 표현하신다. 이러한 최초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설계와 계획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2. 제 2막 : 반역이 일어나다 (타락)

(1) 인간의 타락은 스스로 율법을 만드는 존재가 되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자율성이란, 다시 말해 자율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2) 얼마나 그럴듯한 말인지 모른다. 마치 자유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해 놓은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알고 나에게 붙어 있는 것은 자유이고 나를 모르고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은 타락이고 죽음이다 라고 하신다.

(3) 이 2막의 주요 배역을 맡은 아담과 하와와 뱀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그들은 몰래 하는 일을 즐긴다. 그들은 즐긴 후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는 성격들이다. 그들은 저지른 죄의 정도에 따라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우리 후손들은 이 타락의 장을 두고두고 원망했지만 그것이 저주인지 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드라마는 어느 방향으로 나가게 될까? 답을 다 알고 있는 나도 흥미진진해진다.

3. 제 3막 : 왕이 이스라엘을 택하시다 (구속의 시작)

(1) 작가는 관객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홍수라는 방법으로 배우들의 몰살을 보여준다. 작가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우리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해보고 싶거나 한 번 더 기회가 오면 정말 잘해보고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노아의 후손이 생육하고 번성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을까? 잘 모르겠다.

(2)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자 작가는 배우들의 언어를 각각 다른 방언으로 바꾸어 버리는 결단을 내린다. 이제 배우들은 연출자의 지시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는 상태까지 버려진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은 이 사건 이후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하셨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안전과 자유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3) 그 결과는 바벨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취하려 했던 명성, 안전, 유산 등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왕(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반역이 일어났지만 자신이 어떤 방안을 내어 반역의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실 어떤 일인가를 시작하신 것이다.

(4) 86 페이지에서 저자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즉, I will be who I am 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지금 존재하신다는 것뿐 아니라 이어지는 역사 내내 신실하실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된다.

(5) 98 페이지에서 저자들은 안식일을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다원주의적인 21세기 상황에서 구약의 방식대로 안식일을 위반했을 때 같은 벌을 가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지만 좀 듣기 서운하다. 주일이 우리에게 하나의 제약인 것은 사실이나 난 지금껏 한 번도 토요일날 내일이 또 주일이네 라는 부담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서 내일 하루라도 예배드리고 생각을 좀 쉬어야지 하는 기대감과 편한 마음으로 주일을 기다려 왔다.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때와 시간은 언제라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6) 104 페이지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한 장소를 택하신 것은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 백성과 함께 하나님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한다. 이 말을 보면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 중 한 부분을 옮겨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박목사님께서 오래 전부터 여러 번 해 오신 말씀이 그대로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매우 신기하다.

(7)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9 페이지를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