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성장요인으로서 박영선의 목회와 강해 설교에 대한 연구
이대원(남포교회 부목사)
(본 논문은 미국 Liberty Baptist Seminary 목회학박사논문임)

서론
 

1985년 1월 7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소재의 상가건물 지하공간은, 지난 1-2년의 짧은 기간동안에 급속히 알려진 한 목회자, 박영선 목사를 중심으로 설립한 남포교회 창립예배를 기념하러 모인 300여명의 교인들로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대부분이 단순히 창립예배를 기념하기 위해 출석한 단회적인 참가자들일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고 등록교인의 숫자는 계속 불어갔고, 창립 후 2년이 채 못되는 기간동안 등록된 교인들은 1천 여명으로 불어났고, 5년 후에는 3천 여명의 등록교인으로 증가하였으며, 창립 14년이 지난 1999년 초 현재 전체 등록교인은 7천 오 백 여명(주일학교 1천 여명은 별도)에 이를 만큼 놀랄만한 증가를 계속하고 있고, 이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포교회의 이 같은 성장은 실로 경이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히 교회성장 그 자체에 큰 관심을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교회의 관심을 끌기에 아주 적절한 대상이 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일반적인 한국의 대형교회의 성장을 이해하는데 제시되는 몇 가지 기준들은 주로 목회적 방법론의 적용과 교회의 조직운용 등에 기인하는 특징들을 분석하는 데에서 찾아왔다. 보통 제자훈련의 방법론이나 선교 지향적인 전투적 훈련, 그리고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나 은사주의 운동 등이중요한 개념들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남포교회의 예외적인 급성장과 박영선의 목회는 위의 일반적 대형교회의 성장에 적용되는 기준들과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남포교회가 교회의 조직을 강조하거나 교회성장을 위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박영선의 목회 역량에 있어서도 은사운동의 기능적 활용이나 대중적 집회성격의 강조와는 무관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포교회의 성장요인은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이는 박영선의 목회철학이 반영되는 남포교회의 목회적 특징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므로 가능할 것이다.

본 논문의 제 1부는 남포교회 성장의 한 요인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주제로서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의 성격과 특징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즉 목회자로서 박영선의 어떤 특징이 남포교회의 목회를 통해 나타났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남포교회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문제에 답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제 2부의 주제인 박영선의 강해 설교를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목회적 상황의 이해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장에서는 목회자로서 박영선의 형성시기와 한국교회의 배경이라는 주제로 그의 성장과정과 소명형성과정, 그의 신학연구, 그리고 남포교회 설립과 발전 등을 다루고자 한다.

여기서 그가 한국사회와 한국의 역사 속에서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의 목회적 소명의식을 깨닫게 되었는가하는 점과 함께, 한국교회의 기독교 복음 이해를 형성해온 몇몇 특징들이 한국사회의 전통적 문화적 영향의 관련성에 비추어 논의될 것이다. 2장에서는 남포교회의 설립과 그 성장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이에 대해 통계적 자료를 제시하므로써 현재까지의 남포교회 성장과정의 현황을 제시할 것이다. 여러 다양한 통계들이 남포교회의 성장과정을 비롯하여 교인들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해 제시될 것이며, 이것 또한 제 2부에 다루게 될 강해 설교에서 청중들의 구성과 성격을 이해하도록 도와 줄 것이다. 3장에서는 남포교회의 목회에 나타난 박영선의 목회적 특징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는 남포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목회패턴 뿐 아니라, 남포교회의 목회를 통해 지향해 나가는 박영선의 목회철학과 교회모델까지도 설명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제 1부의 마지막 장인 4장에서는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가 전체 한국교회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점이 논의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모델이 어떤 점에서 한국교회에 공헌해왔고, 또 앞으로도 어떤 면을 더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 볼 것이다.

 

 

1. 목회자 박영선의 형성시기와 한국교회의 배경
 

(1) 출생과 어린 시절

박영선 목사는 1948년 11월 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부친 박근식과 모친 백연옥 사이에서 3남 2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한국에 온 최초의 미국선교사에 의해 개종된 기독교 신자였으며 조부께서는 독립운동가였고, 외조부 역시 교회를 목회 하던 목회자로 친가와 외가 모두 한국교회의 초기에 개종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의 부친은 책임감이 강한 인물인 반면에, 모친은 가난한 목회자의 딸로 자라 보수적인 성품을 지녔으면서도 친화력 있는 인물이었다.

박영선이 태어난 시기는 오늘날의 의미에서도 한반도의 현대적 갈등이 시작되던 때였고, 해방직후 남북한이 신탁통치를 받으며 각각 독립국가를 건국하려던 때였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와 혼동의 상황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그의 부모는 이미 공산화가 되어버린 북한당국에 의해 숙청대상으로 몰려 평안북도 구성에서 평양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그의 가족들은 다시 서울로 월남하여 서울 회현동에 정착하게 되는데, 1.4후퇴로 명명되는 월남 당시 일부 그의 가족은 북한에 남게되어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서울에 정착한 부친은 전기설비공사를 운영하는 등 남다른 사업수완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이뤘다. 그는 이런 아버지의 성품을 따라 매우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재능이 두드러졌는데, 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 교내 브라스 밴드부에서 활동한 점이나,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점등은 그의 그 같은 성격을 잘 반영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의 도심지 중앙에 위치한 회현동의 성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랐고, 여기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전통적인 한국교회의 가르침을 접하며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에 있어 보다 자유롭고 정확한 이해를 갈망하는 고민을 키워가기도 했다.

더구나 그가 자란 회현동은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활발하게 상거래를 하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대문시장이 있는 곳으로서 그곳에서의 많은 경험들은 그에게 인생의 치열한 교육장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박영선이 성장하던 50년대의 한국은 오랜 전쟁 후 폐허로부터 재건을 시작한 시기이며, 60년대는 5.16혁명 이후 관-주도적인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며 경제적 성장을 활발히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한국은 해방 전까지의 약 50여 년 동안 받아왔던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던 시기였고, 그 대안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과도기였기 때문에, 성장 시절의 박영선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이 화석화되어 가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식 신문화의 도전에 의해 생긴 한국사회와 교회의 기독교적 가치의 공황 사이에서 한국교회가 浮游(부유)하며 분열되는 시기를 경험하였다. 비록 그가 한국교회의 초기 기독교 집안의 유산을 타고났을지라도, 격동기의 한국사회를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있어 기독교적 성장 배경은 오히려 교회 안에서의 한국적 사회윤리의 강조와 전통가치의 보수 지향적 패턴을 강화하는 시각에 대해 비판적 열린 통찰을 형성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는 메시지가 비현실적이라는 점 때문에 교회에 대한 친화력을 가질 수 없었다.

어린 학창시절의 박영선의 학업수행능력은 매우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공부 이외에 주어지는 다양한 경험들에 대해서도 기꺼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년 때에 신앙의 갈등을 겪으며 방황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까지 분명한 점은 그가 목회적 소명에 대해 도전 받았던 직접적 계기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 소명형성 과정 (1967-1975)

이 시기는 박영선의 목회적 소명을 확인하는 시기로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사실 그의 목회적 소명은 긴 방황의 인생과정에서 경험된 것들과 함께 점진적으로 확인된 내용으로 주어진 게 사실이지만, 이 시기의 그의 경험들은 그 진폭이 매우 크고 불규칙하다는 점에서 이후의 그의 설교를 통해 반영되는 관점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영선은 1969년 3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에 입학하는데, 이는 아마도 부친의 가업에 의해 쉽게 선택된 것이라 여겨진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1969년 5월 해병대에 지원하여 군복무에 들어가 1971년 2월 갑작스런 수술 뒤 후유증으로의병제대를 하는데, 이를 계기로 이후부터 그는 만성적인 건강장애를 호소하며 지내게 된다. 제대 후 복학한 그는 2학년이 끝날 무렵인 1972년 12월 개인적인 체험과 함께 하나님의 목회에로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는데, 이를 자신의 소명으로 확인하기까지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신학교 입학을 미루던 1975년, 박영선은YFC (Youth For Christ)에서 간사로 일하다가, 1976년 3월 총회신학원에 입학한다.

따라서 이 시기의 특징은 박영선이 방황시기를 끝내고 목회적 헌신의 결정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의 방황은 청년기의 자기 선택적 불안정성에서 시작되어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반면, 어느 순간 하나님과의 대면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소명은 계속 이어지는 떨칠 수 없는 그분의 간섭에 대한 자기의 포기훈련이요, 포기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신학연구 시기와 한국교회 경험 (1976-1981)

사실 이 기간의 박영선은 신구약 성경을 조망하는 성경학을 비롯하여 교리적인 체계와 그 밖의 전문 신학수업을 위해 온 정열을 불태웠으며, 이제까지 경험하고 이해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다양한 삶의 패턴들에 대해 체계적인 정리를 마친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그가 입학한 총회신학원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이 그의 성경관을 비롯한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는데 도움될 것이다. 총회신학원은 1901년 평양신학교로부터 시작하여 몇 차례의 한국교회의 교단분열을 거치는 동안 보수적인 신학성향을 유지했던 박형룡, 박윤선 등의 청교도적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학자들이 중심이 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교단에 소속된 신학교로서 한국교회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신학교였다. 더구나 총회신학원은 성경의 교리나 가르침을 엄격한 경건주의와 근본주의의 패턴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이러한 신학교의 분위기는 한국사회의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에 상당한 호응을 받아 한국교회의 주류적 흐름을 형성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박영선이 총회신학원에 입학해서 신학에 몰두할 수 있었던 주된 근거는 이 학교가 표방하는 보수적 성경관의 전제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지, 경건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학훈련을 받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그는 보수적인 성경관의 태도로 성경 자체의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절대적 기준을 강조하는 것과, 성경을 해석하여 다양하고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적용하는 데에서도 그 기준을 요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인정이 기독교 신학의 출발점이어야 된다는 강한 전제를 가진 그가 보수적인 성경관을 표방하는 총회신학원에 입학한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 시기의 그는 성경을 이해할 통로로서의 신학연구에 집중하여, 신학교의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신학조망을 훈련했다.

사실 총회신학원은 보수적인 장로교신학교였기 때문에 전통주의적 성경해석과 경건주의적 청교도주의의 신학에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박영선은 성경관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를 인정하고 믿는 입장이었지만, 많은부분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전통주의와 근본주의적 성향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다. 예컨대, 한국교회의 전통주의적 보수신학 경향이 절대적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기초 위에서 형성된 성경관일지라도, 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지난 100여 년간의 한국교회는 기독교적 성숙의 과정으로서 일관된 흐름을 보였다기 보다 많은 극단적인 사회적 사건과 경험을 통해 때로는 폭발되고 단절되며 급격한 변화를 보이면서 기독교 복음의 본래적 가르침과 이상을 왜곡해왔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초기의 한국교회의 경우, 한국의 전통문화와 갈등을 빚으며 복음과 문화의 적대적 입장에서 복음을 사수하고 믿음을 지켜냈다고 한다면, 일제의 식민지배체제 아래의 상황에서는 민족복음의 전투적 입장과 북한 공산주의의 기독교탄압의 분위기 속에서 더욱 근본주의적 열심으로 기독교 복음의 생존적 싸움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같은 성향은 한국전쟁 이후 평화시기가 도래하게 되자 그 패턴을 달리하게 되는데, 한국교회가 교회의 부흥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여 전도운동과 선교운동으로 전환되어 이전 시대의 동일한 근본주의적 열심을 불태우게 된 사실은 이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운동성은 한국교회와 신학에 영향을 끼쳤는데, 총회신학원의 경우도 이러한 근본주의적 태도와 경건주의적 사고의 영향권에 있었다. 이점에서 박영선이 보수적인 성경관을 표방하며 동시에 경건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학을 강조하는 총회신학원에 입학한 사실은 마치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뛰어든 경우로서, 하나님의 계시로서 말씀인 성경연구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복음이해가 근본주의의 열성신학적 태도를 적절히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말할 수있겠다.

따라서 박영선은 이 기간동안 목회자로서의 신학훈련을 통해 우선적으로 성경연구에 몰두하는데, 특히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성경과 복음의 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재조명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다시말해 그는 성경본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성경 그 자체의 연구와 동시에 그 본문이 이해되고 해석되는 현장으로서의 맥락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연구에 집중했으며, 더 나아가 성경본문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청중들에게 그대로 다시 읽혀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성경을 조명하고자 노력했다. 성경본문의 메시지는 오늘날의 정황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경본문의 배경에 대한 문헌학적이고 신학적인 이해를 전제로 그 본문의 해석자와 그 청중이 속한 시대정신과 이해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했다. 그에게 있어 후자의 준비는 이미 소명 형성과정의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 문제의식을 고취하고 있었으며, 전자에 대해서는 이 신학연구 기간의 탐구를 통해 자기 자신의 독자적 이해패턴을 갖고자 노력을 경주한 것이다.

박영선은 이 기간동안 성경본문의 연구와 더불어 개혁신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종교개혁신학의 칭의의 구원론과 성화의 교회론에 대해서 역사적 이해를 위해 일관된 시각을 형성했다. 그것은 개신교의 기원으로서 기독교 복음의 이해에 결정적인 출발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그는 이러한 종교개혁신학이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교회에 전수되었는가를 주목하고, 근대 이래의 교회사와 신학사를 교리적 전수의 연관과 함께 살펴야 했다. 그가 발견한 한국교회의 모체로서 교회와 신학에 영향을 끼쳤던 일차적 모델은 19세기의 북미 청교도적 장로교였는데, 20세기초엽 프린스튼 신학교에서 일어난 논쟁인 독일적 자유주의와 미국의 근본주의의 갈등에 있어서 각각 전자는 이성주의적 신학으로 후자는 도덕주의적 신학으로 평가할 수 있는 미국교회와 신학의 영향이 한국교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음을 주목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한국교회의 특징은 미국교회와 신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기독교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교회와 신학, 그리고 미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였다. 사실 미국은 한국이 1945년 해방된 이래, 그때까지 영향을 받아왔던 일본을 거절하며 그 대안으로 택한 우방국가였다. 1950년부터 일어난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은 한국에 대해 뗄래야 뗄 수 없는 혈맹국가로 발전했고, 이와 함께 많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미국을 한국교회와 신학의 모델로 선택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영선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와 신학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미국교회 너머에 있는 유럽의 교회와 신학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기독교 복음에 대한 적절하고도 균형잡힌 합의를 만들어 내었던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근세의 이성주의적 명료함과 전통주의적 정통성이 빚어낸 갈등과 함께 개혁교회와 신학을 스콜라주의적 형태와 이신주의적 형태로 변형시켰던 17세기의 독일과 화란의 신학형태를 전제로 하여, 잉글란드의 정치구조논쟁을 둘러싸고 전개된 교회론적 논의의 부정적 결과인 청교도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의 기독교회 출범은 경건주의적 운동성향에서 시작되어 종교적 자유이상과 잘 융화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형성했다. 이점에서 그는 과연 한국교회와 신학이 성경말씀의 적절한 이해와 교회사의 균형잡힌 교훈을 기초로 하여 본래적인 기독교 복음의 에이전트로서의 성경적 교회의 모습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 답하려 했다. 이는 기독교 신학과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작업과 동시에 주류적 기독교회의 역사적 패턴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작업이 수반되었다. 따라서 박영선의 신학수업은 비록 한국교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시작했을지라도, 개혁신학의 복음과 교회이해를 다양한 역사적 신학의 모델에 비춰 수행했기 때문에 그 내용의 분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 제한된 여러 조건과 상황 속에서 이를 감당한 결과 건강을 크게 헤치게 되었다.

1979년 2월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목사가 된 박영선은 몇몇 전통적인 분위기의 한국교회에서 말씀을 설교하며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의 목회적 경험은 비록 짧고 간접적이며 단절적이었지만, 그의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체질에 대한 이해를 보다 분명히 했을 뿐 아니라 많은 면에서 자신의 성경본문 중심의 메시지 전달에 대해 뚜렷한 목적의식을 확인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부터 그의 설교는 성경을 보는 시각의 독특성이나 성경 자체에 대한 풍요로운 메시지 전달이 많은 청중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그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면 줄수록 당시의 전통적인 교회들은 그의 설교를 제도적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한국문화적 차원에서의 전통적이고 경건주의적인 교회들은 그의 설교가 교회의 권위를 손상시킨다거나, 교회 내의 권위와 질서를 위협한다고 인식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미 그의 설교가 기존의 한국교회의 정서에 맞게 행해지는 패턴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가 젊은 부목사로서 많은 교인들에게 설교를 통해 성경을 보는 관점과 메시지 전달의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기존 교회 내의 다른 권위 그룹에 의해 강하게 견제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비록 그 스스로가 기존 한국교회의 전통적 제도의 산물이었을지라도, 그가 시도한 기독교 복음의 한 걸음 진전된 소개는 아직 한국교회의 제도적인 성향 때문에 충분히 소화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그는 이런 준비되지 않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통감하며 경험했던 것이다.

이런 과도기의 박영선은 목회자로서의 훈련과 자세보다는 성경과 복음을 설교하는 설교자의 훈련과 자세가 더 확인되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1982년 1월 미국 버지니아 린치버그의 리버티 신학대학원에 유학하여 기독교교육학 석사(MA)를 공부한 사실도, 그의 성경과 복음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훈련의 연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그의 미국유학은 신학연구의 확대라기보다 한국교회와의 연관으로서 미국교회와 신학, 그리고 미국문화에 대한 경험으로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영향사적 배후에 대한 관심을 가진 그는, 또한 기독교 복음과 현대문화적 적용의 모델로서 미국교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 시기의 연구 분야였던 기독교 교육에 대해서도, 그가 이제까지 연구하고 경험한 성경적 메시지의 전달을 강화하는 도구로서 의미 있는 배움이기도 했다.

따라서 박영선의 신학연구와 한국교회에 대한 경험의 시기는 박영선의 이후 목회사역에 나타나는 한국교회에 대한 인식의 배경이 형성된 시기로서 그의 다양한 메시지의 단편적 조각들이 발견된 시기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의 성경본문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강조와, 그 작업을 통해 확인되는 성경의 메시지의 분명한 내용, 그리고 목회자로서 그 메시지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의 소명과 책임이 인식되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외치는 소리로서의 메시지와 한국교회의 반응 (1981-1984)

1982년 8월 박영선은 미국유학으로부터 조기 귀국했는데,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한국교회를 말씀으로 섬기겠다는 소명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의 얼마동안 그는 제도적 교회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었다. 전통적인 한국교회가 그에게 목회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던 이 시기에 그의 말씀사역은 경기도 ‘아멘기도원’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의 유명한 설교가로 널리 인정받던 이동원 목사(현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의 ‘아멘기도원’ 집회에서 초청강사로 불려간 박영선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창세기의 족장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메시지로 큰 반응을 일으켰다. 이제까지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이 시도해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 등에 대한 해석들은 주로 그들의 신앙의 영웅됨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박영선은 창세기의 본문을 추적하고 분석하여 그 족장들의 삶을 오늘날의 일반적인 신앙인의 삶과 비교함으로써 성경의 인물들을 너무 쉽게 영웅시하는 우리들의 시각을 교정하는데, 그 족장들의 생애를 우리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간섭하시고 역사 하셨던 ‘하나님의 열심’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그의 첫 번째 책의 제목이 된 ‘하나님의 열심’의 개념이 한국교회에 소개된 것이다.

아멘기도원 집회 사건 이후로 박영선은 한국교회에 급속히 알려지게 되는데, 여기저기의 영향력 있는 모임에서 그를 초청하여 그의 새로운 시각의 메시지를 듣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까지 교회에서 목회자나 설교자로 사역하지는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의 영향이 지속적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1982년 9월 서울 신반포동 소재의 남서울교회에 청빙을 받고 교회의 터 위에서 정기적인 설교와 목회의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더구나 당시 남서울교회의 담임목사이던 홍정길 (현재 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은 83년 6월부터 1년간 안식년 외유 기간동안 박영선에게 임시 담임목사와 설교자로 위촉하였는데, 이 기간이 그에게 있어 목회와 설교의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가 남서울교회에서 행한 첫 번째 설교 씨리즈는 구약 사사기의 입다를 비롯한 사사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받은 사사들 역시 영웅적 인물이라는 선이해를 갖기보다 오늘날의 신자들인 우리 자신들과 같은 인물이라는 전제를 갖는 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는 성경적 관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들 사사들은 신앙의 영웅이라기 보다 오히려 연약성이 더욱 두드러진 인물들임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간섭하시는 도구로 소명을 주시고 이끌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창세기의 족장들부터 시작되는 구약의 인물들을 장기간에 걸쳐 씨리즈로 설교했다.그는 역시 이 설교들에 대해서도 성경인물들을 이해하는 새롭고 신선한 관점으로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컨셉트에 초점을 맞췄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적 모델의 인물들을 대할 때, 그들을 들어 쓰신 하나님의 이유와 의도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신앙의 모델이 된 성경인물들의 이야기는 종종 쉽게 미화되어왔다. 그러나 이제 박영선의 메시지는 성경인물의 인간적인 성공과 업적이 아니라 그들의 실패와 연약함을 균형 있게 이해하도록 함으로 사실상의 성경기록의 목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로 청중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 시절의 박영선의 설교는 아마도 가장 날카롭고 원색적인 표현과 강하고 높은 톤의 외침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 시절에 행한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회상하며 “당시 설교할 때의 심정은 정말 비장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 전할 수 없는 안타까움까지 있었다”고 했다.박영선이 남서울교회에서 임시담임목사로서 설교하던 1년 동안 약 1,500여명의 성도들은 2,400여명의 성도들로 증가했는데,그들 대부분은 서울의 강남에 소재한 이 교회의 새롭고 젊은 설교자인 박영선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든 성도들이었다. 이 같은 변화와 함께 박영선 개인의 목회와 설교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이 시기의 남서울교회 사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의 서울의 지역적 특성과 한국사회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사회는 새로운 사회변화와 더불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일어난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사회적 구성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교회 또한 1984년 선교 10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전도와 선교의 열정에 취해 있었고, 신도들은 날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서울의 경우, 역사적으로 중심부 역할을 해온 한강의 북쪽 (강북) 사대문안의 기능이 경제적 변화와 주거환경의 향상으로 인해 그 무게중심이 한강 남쪽 (강남)으로 이전하던 때였다. 이때 많은 교회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거나 개척을 시작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교회의 변화와 관련하여 당시 강남의 지역적 특성들은 다음 몇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비교적 교육수준들이 높은 거주자들이 정착한 곳이다. 둘째, 경제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은 거주지역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생활패턴 보다는 개혁적이고 개방적이며 이해될만한 생활패턴을 선호한다. 끝으로 아직도 개발도중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교회와 관련해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남서울교회는 바로 이러한 강남지역에 소재했고, 박영선의 설교는 이 지역의 교인들에게 설득력 있는 충격적인 시각의 메시지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성경본문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분석, 그리고 그 본문해석의 내용을 교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교하는 패턴은 그의 설교의 특징이었던 바, 비록 그가 손쉽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특출한 재능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그 전체적인 과정은 매우 어려운 성경본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의 제안이었기 때문에 청중들의 수준도 매우 중요한 상호작용의 요인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설교에 대한 이 첫 번째 단계의 선풍적인 반응은 남서울교회라는 강남의 새롭게 부각되는 지역에 소재한 상황에서 나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컨대, 그의 이전 교회들은 그의 동일한 설교를 들었을 때, 교회의 권위그룹이 앞장서서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이 교회에서는 그의 설교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남서울교회 20년사’는 다음과 같이 박영선 설교의 특징을 기록하고 있다. “박영선 목사의 말씀의 특징은, 첫째 서구식 사고방식과 분석적인 접근방식으로 도출한 내용이 많아 핵심이 명확한 강해 설교였고,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고 인도하심을 강조하였고, 셋째는 후련한 청량감과 감동을 주는 설교였다.

사실 박영선이 인식한 자신의 역할은 목회자로서라기 보다는 설교자로서의 위치였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설교를 통한 말씀 봉사에 대해 그의 관심을 쏟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이 시기의 그의 설교만큼 청중들에게 원색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구사하는 외침은 그 어디에서도 찾기가 드물 것이다. 그의 설교는 사실 도회지에서 울려 퍼지는 광야의 외지는 자의 소리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이 시기의 나는 설교할 때마다 마지막일 것이라는 절박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받은 하나님 말씀의 깊고도 강도높은 뜻을 어떻게든 전달해야겠다는 비장함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인식한 나의 역할이 외치는 자의 소리가 아닌가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박영선은 설교자로서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남서울교회에서 주간에 행해지던 그의 저녁강의 시간에는 남서울교회의 성도들만이 아니라 타교회의 신자들이나 신학생들이 몰려와 그의 간결하게 절제된 주제별 강의를 들었다.

(5) 남포교회의 개척과 성장시기 (1985-1999현재).

사실 박영선은 남서울교회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목회에 대한 소명이나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그는 자신의 역할을 목회자로서라기 보다 설교자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설교자로서 교회를 섬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생각은 새로운 국면의 상황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1984년 9월 남서울교회의 담임목사 홍정길 목사가 안식년으로부터 귀국하게 되면서 그의 교회개척을 의논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남서울교회 20년사’는 “홍정길 목사가 귀국했을 때는 상당수의 성도들이 박 목사의 설교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것이 박 목사의 남포교회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1984년 말, 당시 강남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개포동지역에 상가건물 지하에 장소를 구하고 1985년 1월 첫째 주에 남포교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남포교회’의 ‘남포’라는 말은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사용되던 한국 전통의 불빛인 ‘남포'(Lamp)와 교회발생론적으로 남서울교회에서 분가된 개포동의 교회라는 의미로 ‘남서울개포’의 첫 자와 마지막자를 뽑아 ‘남포교회’라 명명한 것이다.

남포교회가 설립되면서부터 박영선은 이제 광야의 외치는 자로서보다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목회자로서의 연속 강해 설교를 시작하였고, 그의 성경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설교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남포교회는 창립과 더불어 개척교회가 아닌 중형교회로 시작할 수 있었으며, 해를 거듭하여 계속 놀랄만한 교회성장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박영선의 남포교회 개척의 의미가 그 교회나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어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모종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소위 박영선 스타일이라고 일컫는 그의 성경본문의 강해와 메시지 전달방식, 그리고 목회철학 등이 전체 한국교회의 전통적 흐름에 비추어 보면 아직은 낯설지라도, 주로 전통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오던 교인들이 남포교회의 설립과 더불어 모여든 점이나 그들이 박영선의 목회가 지향하는 바의 새로운 안목에서의 기독교 복음의 가르침과 신앙인들의 실천적 삶의 자세에 대해 기존의 한국적 문화와 전통이 개입된 부분들을 벗고자 노력하는 점은 바로 한국교회의 체질변화를 고대하던 그룹들의 반응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남포교회에 등록한 교인들은 처음부터 주로 다양한 기존 전통적인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은 교인들이었고, 이들은 거의 박영선의 설교를 듣고 그의 말씀강해의 독특한 메시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남포교회에 출석하면서 첫 단계의 신앙생활을 시작했을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미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박영선의 설교가 새로운 신자들에 대해서는 물론 오래된 신앙인들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줄만큼 특별한 시각과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생각하도록 한다. 이점에서 박영선의 남포교회개척이 갖는 의미는 한국교회에 성경본문을 중심한 설교와 이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증거 되는 목회적 헌신이요, 그의 강해 설교와 남포교회의 성장은 아직도 많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메시지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가 갖는 의미는 한국교회에 전수되고 있는 강한 정신적 성향이라 할 수 있는 열심주의적 구원관과 완전주의적 윤리관이 성경본문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의해 극복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기존의 남포교회의 목회와 설교를 통해 박영선은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추구해온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윤리적 성화의 훈련에 대해 기독교 복음의 존재론적 이해를 제시하는데 공헌했고, 기독교 복음의 이해를 근거로 교회 안에서 근본주의적 운동성을 추구하던 한국교회의 패턴을 신앙적 삶의 실천을 통한 성화의 강조를 강조하는데 공헌하기도 했다.

박영선은 자신의 목회와 강해 설교를 통해 한국교회가 이제까지 100여년을 지나는 동안 전도와 다양한 신앙훈련을 통한 외형적 성장을 추구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한국교회가 간과해왔던 신앙인들의 내적인 성숙과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신앙인다운 태도를 드러내며 살도록 가르치고 훈련해야 된다고 믿었다. 이제는 기독교 복음의 헌신을 열심과 운동성으로 표현하기 보다, 일상적이고 다양한 현실에서 신앙인의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와 실천을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성숙한 복음에의 헌신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다.이점에서 박영선의 의의는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 조명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다음 장에서는 남포교회의 설립과 그 성장과정에 대한 역사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2. 남포교회 설립과 그 성장의 역사
 

(1) 남포교회 설립과 초기 성장시기(1985-1987)

남포교회의 설립과 성장을 살펴볼 때, 아마도 그 설립과정과 성장패턴의 속도와 규모는 한국교회사 뿐 아니라 세계교회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특별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남포교회가 초고속 성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있던 사람들이 성경 강해를 중심으로 모여 교회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남포교회는 종종 오랜 기간에 걸쳐 성장해온 교회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남포교회의 설립과 성장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초기 설립기간을 살펴보도록 하자.

1984년 10월 교회설립을 결정한 박영선은 이 교회설립에 동참하기로 뜻을 모은 몇 가정을 중심으로 개척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교회설립을 준비한 소수의 위원들과 함께 서울 강남구 개포동 소재의 상가 지하공간 (약 110 여평)을 임대하여 교회설립을 위한 준비를 하다, 1985년 1월 첫째 주일에 창립예배를 보았다. 이 창립예배에는 남서울교회에서 참여한 50여명의 성도들과 지난 1-2년의 짧은 기간동안에 박영선의 설교테이프를 듣거나 소문을 듣고 온 250여명 등 300여명의 성도들이 참여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단지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 단회적으로 출석한 참가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거듭되는 주일마다 등록교인들을 늘어갔고, 창립 6개월이 지나며 곧 500여명에 이르렀으며, 1년이 되면서 600여명의 등록교인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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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박영선이 남포교회의 목회를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명성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이전 남서울교회 시절에 행한 그의 설교와 성경공부가 테이프로 녹음되어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었고 또한 책으로 출간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그의 설교 스타일과 성경을 보는 안목에 대해 주목하였고, 유별난 존경심을 갖기까지 했다. 그들이 남포교회의 설립소식을 들었을 때, 박영선의 설교를 듣고 배우기 위해 자발적인 참여자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남포교회는 비록 갓 시작한 창립교회일지라도 규모 상으로는 보통 중형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더구나 매주 새로운 교인들이 등록을 했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당면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예컨대 설립 된지 불과 1개월이 채 안되어 늘어나는 교인들로 인해 비좁은 장소를 해결하기 위해 60평을 추가로 임대하여 본당을 확대했다.

그러나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3개월이 지난 4월 둘째 주부터 늘어나는 교인들을 위해 예배를 2부로 나눠 드리게 되었다. 창립 7개월 후에는 예배장소 이전을 위한 기획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8개월 째에는 60평을 추가 임대하여 교육관 및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확장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교인들의 증가로 남포교회의 예배처소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창립 1주년이 되면서 표-2에서와 같이 예배를 3부로 나눠 드렸지만, 여름철이 되면서 냉방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예배처소는 매주 홍역을 치르듯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고육지책을 모색하던 남포교회는 1986년 6월부터 8월까지의 여름기간 동안 숙명여자고등학교의 허가를 받아 학교의 대강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들과는 달리 남포교회의 교인들은 교회가 마련한 신앙생활을 위한 훈련과정 등 교회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거쳐 등록하고 정착한 것이 아니었다. 남포교회의 성장을 살펴볼 때, 매우 독특한 교인등록의 패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 패턴은 초기 시절만이 아니라 계속된 남포교회의 교인등록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박영선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였다.

표-2 : 예배 구분 횟수 (1985. 1 – 1987. 4)

예배 횟수

기 간

장 소

1 부

1985. 1 – 1985. 4

개포동

1, 2 부

1985. 4 – 1985. 12

개포동

1, 2, 3 부

1986. 1 – 1986. 6

개포동

1 부

1986. 6 – 1986. 8

숙명여고 강당

1, 2 부

1986. 9 – 1987. 4

개포동

그들은자발적으로 또는 가족이나 친구의 권유로 박영선의 설교를 듣기 위해 남포교회에 출석했다. 그들은 박영선의 설교를 통해 기독교 복음의 새로운 조망을 경험하게 되고, 그 메시지에 승복되어 신앙의 성숙을 위해 교회에 등록하고 정착하곤 했다. 따라서 남포교회의 교인등록 패턴은 박영선의 설교듣기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남포교회에 등록하는 교인들은 크게 두 종류의 그룹으로 나뉜다. 첫째, 초기 시절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그룹은 이미 타 교회에서 오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의 경우이다. 이들은 이미 기독교 복음의 핵심과 교회에 대한 인식이 있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부분이 이미 기존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박영선의 설교가 기독교 복음의 이해에 대해 한 단계 발전된 소개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갈망해왔던 복음의 소개인 것을 확인했다.

둘째, 처음 기독교 복음을 접하는 초신자들의 경우가 있다. 이들은 가족들을 따라 처음 교회에 출석하여 박영선의 설교에 인상을 받고 계속 출석을 하면서 복음을 깨우친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록 기독교의 종교적 이해가 없었을지라도 박영선의 기독교 복음의 소개가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정적 사회적 배경의 예화를 통해 전달될 때,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요약해서 정리하면, 남포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이미 박영선을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남포교회의 설립 초기에 있어 성장의 주된 배경은 이미 박영선의 설교스타일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참여한 교인들은 주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이었으며, 이는 박영선의 남포교회 설립이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사실을 반증할 것이다.

(2) 남포교회 예배처소 이전과 비약적 성장시기(1988-1995)

앞에서 살펴 본대로, 개척하면서부터 남포교회는 등록교인들의 계속된 증가로 예배처소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가능한대로 임대건평을 넓혀가며 대처하는 것도 개척 2년째에 접어들면서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여름철이 되면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를 했을지라도 비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보는 열기로 높아진 실내온도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표-2 참고) 예배를 1.2.3부로 나눠 드렸지만, 등록교인들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에 비좁은 공간의 상황은 이내 비슷하게 되었다. 1987년 창립 2주년이 되자 남포교회는 예배당 건축위원회를 발족시켰고, 당시 1986년 아시안게임을 위해 지었다가 게임이 끝난 뒤 일반 분양된 잠실 아시아선수촌 상가의 431.7평과 69.7평을 분양 받게 되었다. 1987년 4월 19일 남포교회는 현재의 장소인 잠실 아시아선수촌으로 옮겨와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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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위치인 잠실 아시아선수촌으로 예배당 처소를 옮긴 남포교회의 성장은 계속 되었다. 사실 남포교회는 예배당 처소를 옮긴 이후에 본격적으로 성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87년 4월 예배당 처소를 옮길 때 약 1000여명의 교인들이 있었는데, 1990년까지 매년 500여명, 600여명, 700여명이 증가하게 되었고, 1991년부터 1994년까지의 기간은 등록교인들의 증가가 약간 둔화되긴 했을지라도 매년 평균 400여명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운 성장신화를 계속한 것이다.

표-4 : 예배 구분 횟수 (1985. 1 – 1987. 4)

예배 횟수

기 간

장 소

1 부

1987. 4 – 1987. 10

잠실 아시아선수촌

1, 2 부

1987. 10 – 1990. 12

잠실 아시아선수촌

1, 2, 3 부

1991. 1 – 1995. 2

잠실 아시아선수촌

이렇게 성장이 계속되게 되자 남포교회는 예배당 처소를 옮긴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예배를 두 차례로 나눠 드려야 했다. (표-4 참고) 그리고 역시 표-4가 보여주는 것처럼, 교인들의 증가로 이 같은 문제가 계속되자 1991년 1월부터는 다시 예배를 3부로 나눠 드리는 등, 증가되는 교인들과 반비례되는 예배당 규모를 해결하려는 자구책 역시 계속되었다.

이 시기의 남포교회 등록교인들의 패턴을 조사해 볼 때, 등록교인들의 주거지역이 초기 시기보다도 더욱 확대된 지역적 분포를 보인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는 이광희가 그의 아티클 “어떤 프로그램도 말씀 강해보다 우선할 수 없다”에서 지적한대로 남포교회가 단순히 예배당 처소를 잠실로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박영선의 설교가 점차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보다 넓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남포교회로 출석하게 되었고, 이들이 결국 등록하게 되는 패턴을 보인다. 남포교회가 개포동의 초기 시기에는 주로 박영선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반면에, 잠실의 아시아선수촌 시기에는 박영선의 목회와 설교가 점차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결과로 보다 폭 넓은 지역과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남포교회의 성장은 지역적 특성과 관련되기 보다 박영선의 설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표-8에서 보는 것과 같이 남포교회에 등록한 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의 출석이유는 단연 박영선의 설교 때문이다.

(표-5) 남포교인들의 등록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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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시기의 남포교회 성장은 전체 한국교회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성장이 둔화되었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성장이 멈추게 되었으며, 1990년대 중반 즈음에는 교인감소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록 1990년대에도 일부 성장하는 교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시기에 교회성장이 놀랍게 진행된 남포교회의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남포교회의 경우, 한국의 개신교 역사에 있어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온 교회성장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전도에 대한 열심과 제자훈련 등 다양한 강조를 하지 않고도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남포교회의 성장은 분명히 다른 성장하는 한국교회와 차별된다. 이 차별은 전체 한국교회의 틀 속에서 몇 가지 특징과 함께 설명될 수 있겠다.

첫째, 남포교회의 성장은 박영선의 탁월한 강해 설교에 근거한 것이다. 박영선은 남포교회 창립부터 계속하여 강해 설교를 시도했고, 남포교회의 계속된 성장은 이 설교에 대한 기존의 한국교회의 신자들의 반응이기도 했다.

(표-6) 남포교회 교인들의 등록패턴(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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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7이 보여주듯이, 남포교회의 교인들은 이미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박영선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들의 전통적인 교회로부터 이적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시기에도 많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강해 설교를 시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영선의 경우, 본 논문의 제 2부에서 살펴보겠지만, 성경 본문을 분석하는 통찰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전력이 뛰어났다. 남포교회에 출석하여 박영선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은 성경 본문의 생생한 강해와 현장감 있는 적용에 하나님의 실재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 기간의 남포교회 성장이 다른 교회들과 차별되는 요소로 박영선의 목회가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특징을 들 수 있다. 특히 박영선은 설교를 통해서만 아니라, 교회의 행정에 있어서도 권위주의적 구조를 피했다. 사실, 이 시기는 일반적인 한국교회가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문화의 영향으로 권위주의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을 때였고, 점점 비판적인 주제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남포교회에 등록한 교인들은 그 교회가 계급적인 구조에 의해서나 또는 계급적인 관계에 의해 지탱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이러한 사실로부터 복음의 진정한 자유함이 주는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남포교회를 선택하여 등록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일반적으로 한국교회가 과업 지향적인 것에 비해, 남포교회는 교회 그 자체의 교회됨과 신자의 신자됨을 지향한 점이 구별된다. 박영선은 남포교회가 계속 성장하여 소위 대형교회가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교회의 교회된 모습을 유지하도록 역설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행하시려는 일은, 그 교회를 통한 일련의 사업들이 아니라 그 교회로 자기 백성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교회를 통한 업적이 아니라 교회에 근거한 당신의 백성됨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남포교회의 입장은 성장하는 대형교회들이 다양한 과업을 설정하여 교인들에게 열심을 강조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성장의 프로그램에 열심 있는 참여를 강권 받아온 점에 비추어 볼 때, 박영선의 목회방침은 교회론의 개혁 모델링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시기의박영선의 설교가 주로 교회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인의 신앙적 성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시기는 남포교회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였고, 박영선의 강해 설교와 그 메시지가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려간 시기였다. 즉 이 시기에 남포교회가 성장한 것은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성경본문을 면밀하게 다루는 강해 설교를 통해서도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고, 그 중심에 박영선이 있었던 것이다.

(3) 남포교회 성장의 계속(1995-1999현재)

창립 초기부터 계속해서 성장해온 남포교회는 현재까지도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5년간의 남포교회 성장은 주목할만한 규모를 보여오기까지 했다. 이 기간동안 전체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미 교인감소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던 점과 비교해 본다면, 이 같은 남포교회의 성장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몇몇 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회들이 성장이 멈추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성장의 위기를 느끼던 이 기간동안 과연 어떤 이유로 계속적인 성장을 보일 수 있었을까?

표-7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95년 1월 당시 4,600여명의 등록교인은 4년이 지난 1999년 1월 현재 7,500여명의 성인 등록교인으로 증가되었다. 약 3,000여명 가까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위의 표-7은 1997년도와 1999년 사이에만 약 2,000여명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실로 놀랄만한 교회성장의 역사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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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동안 남포교회가 성장한 주된 이유는 역시 일관되게 확인되는 박영선의 강단메시지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기간 중 폭발적인성장이 일어났던 1997년과 1999년 사이의 기간은 다른 이유로 설명이 보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은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적 시련을맞은 한국의 경제위기기간 이었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신앙의 기준으로 반성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교회를 떠났거나 옮겨간 사람들이 말씀을 따라 교회로 몰려왔는데, 남포교회의 경우도 이에 속한다. 따라서 남포교회는 계속된 성장으로 인해 이미 예배횟수를 4부까지 늘렸지만, (표-8을 참고) 예배당처소의 공간은 여전히 증가되는 교인들의 숫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표-8: 예배 구분 횟수 (1995. 3 – 1999 현재)

예배 횟수

기 간

장 소

1, 2, 3, 4 부

1995. 3 – 1999. 8 현재

잠실 아시아선수촌

 

이 기간의 남포교회의 성장은 남포교회를 한국교회의 흐름 속에서의 위치를 자리 매김 하는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남포교회의 성장이 박영선의 강해 설교에 의존된 특별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은 소위 박영선의 메시지와 남포교회의 성장이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일련의 복음이해의 계보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남포교회의 성장이 박영선의 메시지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은 성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행사하지 않고도 오직 말씀선포만으로 교회성장이 가능하다는 모델링이 되기도 하다.

(4) 남포교회 교인들의 성격과 특징

그러면 지난 15년 동안 남포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이룬 주체가 박영선의 강해 설교 메시지라 한다면, 그 객체라 할 수 있는 남포교회 교인들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남포교회 교인들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점 중의 하나라 여겨지는 것은 신앙적 특성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남포교회 교인들의 신앙적 특성이야말로 남포교회의 놀라운 성장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 남포교회의 등록교인들은 이미 한국의 기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표-6에서 볼 수 있듯이 77.5%의 등록교인들이 이미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이적했을 정도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기독교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또한 성경과 기초적인 기독교교리에 대한 전이해가 전제되어 있다는 뜻도 된다. 더구나 박영선의 강해 설교가 기독교 복음에 대한 초기적 이해에 초점을 두어 설교하는 전도 설교와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이들은 이미 신앙적 입문의 단계를 거친 사람들일 뿐 아니라 교회생활에 대한 경험을 소유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사실 박영선의 강해 설교는 일단 성경본문에 대한 원래적 의미를 풀어가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에 대한 전이해가 없이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포교회 교인들의 성격과 특징 중에서 두 번째로 고려할 점은 남자교인들이 더 많은 성별분포이다. 이같은 남포교회의 성별분포는 일반적인 한국교회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은 교인들 중의 대다수가 여성교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더 많이 교회에 적극성을 보이며 참여하였고, 이에 따라 남성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교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 숨는 현상이 두드러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많은 한국교회의 현실은 남자에 비해 여자들이 복음을 더 잘 수용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포교회의 경우, 균형을 잃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현실에 대해 숨어있는 남자교인들이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강조하는 설교를 하였고, 또한 교회의 목회적 패턴도 이를 반영하도록 했다. 남자교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남포교회의 성장이 가정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정적 균형감은 소위 온 가족의 기독교적 정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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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특징으로 노년층에 비해 젊은 장년층이 두텁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표-9을 참고) 이것도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연령별 구성비와 비교해 볼 때, 남포교회는 매우 젊은 구성원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두번째 특징이 가정적 안정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임에 비해 남포교회의 사회적 안정감을 확인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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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고려해 볼 남포교회 교인들의 특성은 비교적 높은 학력수준을 보인다는 점이다. (표-10를 참고) 사실 기독교 복음의 수용이 높은 학력, 또는 지적 능력과는 무관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 특징은 남포교회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기 때문에 중요할 것이다. 예컨대, 남포교회의 급속한 성장의 주된 요인이 박영선의 설교 메시지이고, 그것이 전도 설교라기 보다는 매우 분석적인 강해 설교이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높은 학력을 나타낸다는 것은 설교의 이해를 위한 차원에서 그 특성을 가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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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논할 수 있는 남포교회 교인들의 특성은 사회-경제적 입장과 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교인들의 직업적 분포를 나타내주는 표-11을 보면, 가장 많은 비율을 보이는 직업은 회사원으로서 이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음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남포교회 목회에 나타난 박영선의 목회적 특징
 

(1) 말씀 중심의 목회

남포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이 박영선의 말씀강해에 기인한 것임은 이제까지 우리가 줄곧 생각해온 관점이다. 즉 남포교회의 성장은 박영선의 메시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장에서 언급한대로, 이제까지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구원 그 자체만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교회성장을 위해 전도의 실천과 헌신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더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박영선의 메시지는 성경본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근거로 신자들이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서 보다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도록 도전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같은 말씀 선포는 보다 고급한 신앙인격으로 성숙할 것을 원하는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박영선의 메시지를 사모하게 되었고, 목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박영선은 남포교회를 목회 하는데 있어 말씀 선포, 또는 강해 설교의 메시지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가? 말씀에 대한 강조가 그의 목회적 특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한다면, 그 강조는 어느 정도의 내용을 가지는가? 그리고 남포교회의 성장과 관련해서 말씀에 대한 강조라는 특징이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박영선은 남포교회의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역이 말씀 선포라고 믿었을 뿐 아니라, 말씀선포에 가장 우선적인 비중을 둔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목회에 있어 중점사항을 전도나 선교, 또는 교회성장 등의 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히 목회의 초점을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 자체에 비중을 두기보다 그들을 통해 행해지는 과업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전도와 선교사업을 통해 교회의 업무를 대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박영선은 남포교회의 목회에 있어 말씀선포의 사역을 최우선으로 둔다. 교회는 끊임없이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 가르치는 것의 첫 번째가 설교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다른 모든 일들은 성도들이 깨달은 신앙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 하기 위해 주어진 어떤 일들일 뿐이다. 말씀선포야말로 교회의 최우선적 사명이요, 교회로 교회 되게 하는 존재이유이다. 말씀선포를 위해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선포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인 교인들이 양육되며, 말씀선포를 계속 수행하는 것이 교회가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박영선의 말씀선포에 대한 이 우선권은 남포교회의 목회적 특징과 핵심 사역을 이루게 하였다. 더구나 그는 말씀선포에 대한 비중을 남포교회 목회의 핵심원리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에 말씀선포의 질적 수준과 내용도 매우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제 2장의 표 0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남포교인들이 남포교회의 특징으로 박영선의 말씀 강해를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실로 박영선의 말씀선포는 놀라운 은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말씀선포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남포교회를 말씀이 풍성한 교회, 말씀이 살아 역사 하는 교회, 말씀의 교회가 되게 했다.

(2) 행정과 조직 중심이 아닌 교회편제 및 운용

남포교회의 목회가 말씀선포의 중심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정과 조직의 비중을 극소화한다는 점으로 연결된다. 남포교회가 교회편제 및 운용적인 특징으로서 행정과 조직 등 관리적인 면이
약하다는 지적은 쉽게 인정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포교회가 행정과 조직관리를 약하게 의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행정과 조직은 말씀에 따른 양육을 돕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운용할 뿐이다. 내용과 형식을 전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남포교회는 말씀과 교육의 내용에 대한 강조로 인해 행정과 조직이 약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인 한국교회는 행정과 조직을 교회성장의 방편으로 간주해온 것이 사실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행정과 조직관리에 집중하여 교회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회 안으로 일반 사회의 경영관리를 도입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교회까지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교회의 본질로서의 말씀사역의 초점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점에서 박영선은 성경이 요구하는 신자의 본질 또는 신앙의 본질을 교회가 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남포교회도 교회의 본질인 말씀사역을 위한 내용을 지원하는 차원에서의 행정과 조직은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행정과 조직이 말씀사역을 돕기 위한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점이고, 그 반대로 행정과 조직을 통한 목회운영을 지양하는 것이다. 만일 잘 짜여진 행정과 조직을 통해 교회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못지 않게 그 행정과 조직을 유지하고 다듬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행정과 조직을 필요이상으로 갖추게 되면 그것을 위해 교회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말씀사역이 방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많은 한국교회가 경영원리에 따른 행정과 조직을 통한 목회운영을 시도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포교회는 이 같은 사회적 경영원리를 지양하기 위해 최소한 필요에 의해서만 행정과 조직을 생각하고 있다. 더욱이 박영선은 그의 로마서강해에서 율법의 의미를 다루는데 있어, 원래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족하실만한 영광스럽고 거룩한 수준이나, 유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이해는 그것으로 자기를 치장하는 쪽으로 갔다.고 지적함으로, 단순히 규범을 지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본질적인 정신이라는 원리를 끌어낸다. 즉, 교회의 목회에 있어 그 본질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방해받는 차원의 행정과 조직은 과감히 줄이고, 목회를 돕는 차원에서의 기본적으로 필요한 행정과 조직을 구성하고자 한다.

사실 행정과 조직의 짜임새를 갖춘다면, 목회의 효율성을 보다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영과 관리적인 개념으로 목회를 끌어간다면 교회는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은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기 쉬운 방법들이고, 교회의 본질인 말씀사역과 신자들의 인격적인 성숙을 약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이점에서 경영합리화를 시도할 그런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합리주의적인 사고에 의존하지 않는다. 예컨대 박영선은 이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한다. 교회는 가능한 한 일을 여러 사람이 하게 해야 한다. 열 사람이 할 것을 세 사람이 하게 하는 것이 경영 합리화이다. 백만 원 들 것을 십만 원 들게 하는 것이 경영 합리화이다. 하지만 교회는 세 사람이 할 것을 삼백 명이 하게 한다. 이 사람이 와서 청소하다 어질러 놓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청소하다가 또 깨뜨리고… 하나님은 나중에 이렇게 계산하실 것이다. 너는 유리창을 갈아 끼웠고, 너는 청소를 했고, 너는 휴지를 주었고, 너는 천정을 고쳤느니라. 여기서 교회를 지배하는 원리는 결코 경영합리화일 수 없다. 교회의 목회사역은 경영합리화를 통한 효율성을 자극하고 극대화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신자들을 불러모으고 삶을 나누며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삶의 모습을 배워가기 위해 모든 비효율성과 비능률적인 반복된 시행착오를 용납하는 그런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는 또 교회는 경영합리화를 하는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든지 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기회를 주어 거기에서 본인의 신앙이 크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책임들이 그에게 훈련의 과정이 되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커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치밀한 계획과 조직에 의해 운영되어야 할 사회경제적 경영의 장소가 아니다. 이러한 박영선의 교회이해는 남포교회의 목회에 있어 관리나 경영적이지 않은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남포교회가 관리나 경영을 강조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는 말은 그것들을 주된 뼈대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 두드러지게 프로그램화하거나 에너지를 집중시키지 않는다는 말이지, 목회를 위한 교구 및 구역편성이나 다양한 성경공부모임 등을 소홀히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박영선의 목회적 특징에 나타난 강조점은 사실 말씀강해에 기초하여 그 말씀을 배우고 삶에 실천하도록 돕는 범위와 차원 내에서 교회의 교육체계를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한 만큼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포교회는 목회실적을 점검할만한 어떤 관리를 취하지 않는다. 예컨대, 교인들이 출석하는 현황이나 헌금, 구역모임의 실적도표 등을 작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자율적인 참여와 실행에 맡긴다는 점이다.

(3) 과업 중심이 아닌 교인들의 인격적 성숙을 강조

사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교회의 존재근거를 복음전도와 선교에 두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체로서 한국교회도 피 선교 120여 년만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 선교사를 파송 하는 일에 큰 몫을 감당해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마다 전도와 선교라는 안과 밖 복음전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절대명령에 순종하는 최우선의 자세인 것으로 가르쳐 왔다. 더구나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러한 자세를 교회성장을 위한 조건부적 사업으로 간주하기까지 하면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라 가르쳐왔던 이 일들을 과업 지향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형편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포교회는 그 어떤 전도나 선교 프로그램을 강조하지 않는다. 비록 전도나 선교가 전통적으로 교회의 중요한 이념적 사명임이 분명하나, 그러한 것들 또한 기본적으로 말씀선포에 포함된 세부사항일 뿐, 독자적으로 온 교회의 에너지를 집약시킬 만큼 유별난 강조를 하지 않는다. 박영선은 이에 대해 일의 기능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시키고자 하시는 커다란 계획안에 가장 중요한 내용인 인간회복,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거룩과 영광의 회복이 초점으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사명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인데, 이는 doing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being에 관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이것이 성경의 초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는 그 무엇이 일로서의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을 할 수 있는 being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전도나 선교를 강조한다고 할 때, 신자들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존재(being)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태도의 전환이 없을 때는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재주를 동원해서라도 그 일을 이루기만 하면 되는 재주꾼들만 양성하는 셈이다. 그래서 박영선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교회가 전도를 강조하면 전도를 할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해 주를 사랑하고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많이 불러 왔느냐만 중요해진다. 교회가 교회 노릇을 하기 위해 선교사를 보내야 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선교사를 백 명 보내기로 작정했으면 선교사를 백 명 보내는 열심, 주의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백 명의 선교사를 보낼 돈을 가진 교회가 되는 싸움을 한다.

더욱이 박영선은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본질은 뜻밖에도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변화를 가지라는 것이다. 이점에서도 역시 신앙은 being에 관한 문제지 doing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행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됨에 관한 문제다. 그는 교회와 신자의 근거로서의 존재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속고 있다. 왜냐하면 열매가 맺히는 것과 그 열매를 소원하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인데, 신자의 본질이나 신앙의 본질은 내가 기독교적 열심을 갖고 있고 주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그것에서 성령의 좋은 열매가 나와야 한다.

남포교회의 목회과정에서 드러난 박영선의 목회관은 분명히 외형적인 구조의 발전이 아닌 신자들의 내면적 성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포교회의 성장은 이러한 그의 목회관이 반영된 경우이기도 하다. 그는 교회가 발전한다는 말처럼 애매한 말은 없다고 한다. 그는 교회가 발전한다는 척도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교인들의 신앙이 성숙해 나간다는 점이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남포교회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심 이전에 일상생활에 투영되는 신자들의 인격적 성숙을 강조하는 목회를 지향하는 특징을 가진다. 성경은 우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완성하는 것,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늘 기억하라. 교회의 목표는 곧 우리 자신이다.

(4) 가정의 확대로서의 교회실현 (남자 중심의 교회구조)

여기서 우리는 박영선의 목회철학 중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의 하나인 교회를 가정의 확대로 보는 관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가정공동체이다. 교회는 훈련소나 학교가 지향해야 할 일정 수준의 신앙훈련을 위해 효과적인 운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인격적인 삶이 부딪치는 관용과 기다림과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그런 하나님의 비밀스런 기관이다. 따라서 교회구성원들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비로소 한 몸이요, 지체인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정 안에서의 관계가 인격적이듯, 교회 안에서의 관계는 곧 가정에서의 관계처럼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부모자식의 관계로 유비 되고, 성도들간의 관계는 형제로 유비 되어진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한 몸으로 불러 함께 지어져 가도록 부르신 부름만이 교회를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가정모델이다. 박영선은 이런 가정모델을 위해 성도와 성도들이 서로 기다리며,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미래의 기대를 가지며 함께 걷는 자세를 서로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시행착오가 용납되는 곳이요, 훈련과 연습이 용납되는 곳이다. 세상이 그러하듯 사회적 조직체에서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세상은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주는 곳이다. 가정이 학교나 훈련소와 다르듯, 교회는 성도들의 인격적인 관계가 기초되기 때문에 삶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위로하고, 성장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책임을 나누는 그러한 가정의 모델만이 성도들의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성숙을 도울 수 있다. 이에 대해 박영선은 교회가 거듭해서 실수를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는 결국 하나님을 닮는 자리로 성도들을 함께 인도하는 곳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서 교회는 세상적인 것을 연습하는 곳이 아니라 거룩을 연습하는 곳임이 증명되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교회의 가정적 모델에 의해 남포교회는 가정에서의 가장인 남자성도들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권장되며, 참여가 강조된다. 교회의 직분에 있어서도 남자성도들을 기준으로 교회의 가정적 모델을 따라 부부가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체계가 있다. 예컨대 남자성도들 중 장로에 피택된 성도의 경우, 그는 가장으로서 그의 가정을 대표해서 더 큰 가정인 교회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성도들의 교회직분에 따라 그 가정의 여자성도에게 권사의 직분을 수여하기도 한다. 이는 교회가 가정으로서 남자성도들이 가장으로서 교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남포교회만의 제도이다.

사실 남포교회의 가정구조의 교회적용모델은 자체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성을 형성한다. 일반적인 한국교회와는 달리, 남포교회에 나오는 남자성도들은 매우 자발적으로 교회의 여러 봉사직분에 참여하는데, 이들은 남포교회의 남자성도 중심의 교회구조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교회에서 주도적으로 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가정에서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남포교회의 가정적 모델의 구조를 형성하는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교회는 가정을 건강하게 하고, 가정의 차원에서 교회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교회가 확대된 가정임을 확인하는 특징은 남포교회만의 모습이다. 교회의 봉사구조를 가정모델에 따라 구성함으로서 교회가 갖는 권위와 질서구조를 가정과 평행 되게 함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와 가정의 수평적 일치를 만든 것이다.

(5) 목회자들의 배양과 교회개척으로의 연결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 중 교회의 분립개척은 한국교회에서 매우 찾아보기 힘든 경우일 것이다. 남포교회의 설립 이후인 지난 15년 동안 6개의 교회가 분립개척 되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박영선의 목회적 특징이다.

박영선은 남포교회의 목회를 통해 같은 성경의 안목으로 함께 사역해온 동료교역자들에게 차례대로 교회개척을 권면하고 지원해왔다. 사실, 이러한 교회 개척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가 선결 되어야 한다.

* 표-12 : 남포교회 지원 교회개척 현황

순 서 설 립 교 회 이 름 담임목회자 설립연도 설립교회지역
1 전 원 교 회 박 선규 목사 1987년 서울, 양재동
2 남 정 교 회 주 성호 목사 1990년 서울, 문정동
3 평 안 교 회 박 종언 목사 1993년 서울, 대치동
4 남 산 교 회 김 기홍 목사 1995년 경기, 일산
5 분당남포교회 박 동준 목사 1997년 경기, 분당
6 구미남포교회 이 종수 목사 1998년 경기, 분당
7 남 송 교 회 김 명국 목사 1999년 서울, 가락동

첫째, 교회개척을 담당할 준비된 교역자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교역자는 남포교회에서 박영선의 성경적 안목과 목회를 배우고 말씀사역에 헌 신한 목회자로서 일정기간 남포교회의 목회에 깊이 참여한 사람이어야 한다. 즉, 남포교회에서 함께 사역하고, 함께 교회론을 나눈 목회동역자로서, 이들이 이제 독립적으로 교회를 목회할 역량을 갖춘 목회자로서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지게 될 때, 비로소 교회개척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표-12에서 보듯, 지난 15년 동안 7개의 교회가 7명의 남포교회 출신 교역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둘째, 새로운 교회설립을 위해서는 그 교회에 참여하게 될 최초의 설립교인들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포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오던 교인들 중 본인의 의사에 따라 새로 설립되는 교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도들을 적극 권장, 격려한다. 이들은 각기 개척되는 교회의 중추적인 일꾼들로 활동하게 된다. 이점에서 남포교회의 성도들은 교회설립에 대해 늘 열려있는 자세로 교회가 하나로서 보편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배울 기회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새로 설립되는 교회의 교역자 입장에서도 본교회의 성도들이 함께 교회개척준비에 동참한다고 할 때 여간 힘을 얻는 게 아니다.

셋째, 새로운 교회설립을 위해서는 재정적 후원이 필요하다. 예배당 시설을 확보하고, 여러 가지 부속장치들을 포함하여 일시에 많은 재원이 들어가기도 하고, 또한 담당 교역자의 사례 등을 포함한 인건비지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포교회는 모교회로서 새로 설립하는 교회의 여러 경비를 지원할 뿐 아니라, 그 교회가 자립하게 될 때까지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한다.

따라서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를 중심으로 지속하는 교회개척운동은 이제 얼마간 정착되어, 남포교회 자체적으로도 교회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되기까지 한다. 이 준비위원회는 교회개척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구성된 남포교회 내의 부속기관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찾아보기 드문 이 위원회는 남포교회에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여 개척독립 하려고 할 때, 처음부터 실무적인 일을 함께 의논하는데 설립목회자로 선정된 교역자를 도와 교회의 예배당 장소 물색과 재정적인 지원계획과 집행, 그 밖의 교회건물의 시설작업 등을 주도적으로 일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준비위원회는 새로 개척되는 교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도들을 찾게 되고, 일정한 시기가 되었을 때에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교회의 준비업무를 이양하는 것이다. 즉, 교회설립 준비위원회는 교회가 개척되는 기간동안 새로운 교회가 잘 준비되도록 돕는 한시적인 기관이다.

그러나 사실 일반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에서 이러한 형제교회들의 설립과 유기적 관계를 계속 갖는 경우는 매우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교회성장을 목적하고 대형교회를 추구하기 때문에, 교회의 분립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가지지 못하는 형편이다. 박영선은 이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적이다. 교회마다 경쟁을 하고 기업화되고 하는 경향은 교회 자체의 본질이 변질된 느낌을 지울 수 없도록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오늘날 큰 교회가 자꾸 서는 이유는 예수를 믿는 교인들이 일선에 서서 교인생활을 하기 싫어해서 빚어진 결과이다. 큰 교회 속에 있으면 숨을 수가 있기 때문에 큰 교회가 생겨난 것이지 큰 교회가 일을 크게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은 아니다. 헌금이나 내고 실제적인 일은 안할려는 현대인들의 게으름과 약삭빠름이 만들어 낸 것이 대형교회이다. 그는 교회분립을 대형교회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일로 간주한다. 교회를 확장하고 키우는 일을 하기보다는 분가시키는 일을 함으로서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여 보다 구체적인 교회의 현장에서 자기를 내보이고 봉사와 구제 등에 참여함으로 신자들이 삶을 통해 성숙하게 되도록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교회가 작으면 아무도 외면할 수 없고, 아무도 숨어 있을 수 없게 되어서 좋은 점도 많다. 그리고 교회가 커야된다는 요구는 성경 어느 곳에도 없다. 일례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 칭찬 받는 빌라델피아 교회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하였다’고 인정받았다. 이러한 그의 목회 자세가 교회분립사역을 하도록 했고, 이것은 앞으로도 그의 남포교회 교회분립사역을 계속하게 할 것이다.

 

 

4.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의 한국교회에서의 위치
 

(1) 말씀의 강해와 적용 모델을 제시

지난 15년 동안 박영선은 남포교회의 목회 사역을 통해 한국교회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 왔다. 그는 오직 남포교회의 목회 사역을 통해서만 전체 한국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의 남포교회 목회 사역이란 우선적으로 강해 설교로 일컫는 말씀선포 사역을 말한다. 그는 이 말씀사역으로 남포교회를 섬겨왔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한국교회에 강해 설교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큰 공헌을 인정받는다. 여기서 그의 말씀선포 사역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과 공헌으로서 그의 강해 설교의 모델을 살펴보도록 하자.

박영선의 말씀선포 사역은 독창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강해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행해 온 성경강해의 특징은 성경 본문을 철저히 분석하고 해석하여 청중들에게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한 뜻을 이해하도록 전달할 뿐 아니라, 그 이해가 성도들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가능한 사건의 범주로 이루어지도록 적절한 적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그의 성경강해의 모델은 사실 두 가지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말씀에 대한 연구는 성경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과 함께 개별 본문의 정확한 이해를 의미한다. 둘째, 그 말씀이 선포될 구체적인 현실로서 한국교회에 대한 심도 있는 역사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말씀을 듣는 청중들로서 성도들의 정서는 물론 더 나아가 그들이 속한 한국사회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강해의 적용부분이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에 이 문제의식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박영선의 성경강해 모델은 크게 말씀 이해와 적용 가능한 실천제시로 접근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성경 말씀이나 전통적인 신학교리를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해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경 강해가 말씀이 신자들의 현실적인 삶에 대해 풍요로운 실천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한국교회의 신자들에 대한 경험적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박영선의 성경강해는 청중들의 현실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해설을 전하되, 그 말씀의 이해가 개별 신자들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삶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적용모델을 제시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박영선은 이점에서 설교가 단순히 본문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본문을 해석한 것이 지금 여기서, 시간적인 동질공간, 삶의 공통공간인 청중들에게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청중의 삶의 자리를 주목한다 할지라도 성경 본문의 해석이라는 휴먼명조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성경 강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성경을 보는 안목’이라고 말한다. 성경이란 오래 전에 쓰였지만 지금 여기서 사용되도록 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한 성경의 해답을 듣는 데만 성경이해의 목적을 두면 원저자가 저작 당시의 상황에서 무엇을 의도했던가를 놓칠 수도 있다. 이점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강해 설교가 정착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보통 강해 설교라 하면, 구절 구절 한자 한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강해 설교란 본문의 내용이 가진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고 성경 저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재현시켜 우리의 상황에 제대로 끼워 넣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강해 설교를 한다고 할 때, 박영선 식의 강해 설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성경 본문에 나왔다고 해서 어구 설명을 통해 그 단어의 의미를 밝히기보다는 그 단어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찾아 수면 위로 올려주는 것이다. 어구 설명을 통해 단어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문헌학적 석의 작업이나 주석작업은 성경연구의 한 방법이 될지 모르지만, 강해 설교의 패턴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이점에서 박영선의 강해 설교는 매우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다. 그 특징은 사실 그의 기독교 신학의 교리에 근거한 성경이해의 패턴이요, 그 패턴을 축으로 한 현재적 말씀 선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특징은 기독교 교리의 균형이 유지되는 성경 이해의 안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박영선의 강해 설교의 중요한 패턴을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그가 이제까지 한국교회에 기여한 성경적 강해 설교의 모델을 이해하게 도와 줄 것이다.

첫째, 박영선의 강해 설교 패턴의 중요한 전제로서 그의 ‘하나님 이해’의 독특한 특징을 말할 수 있다. 박영선의 강해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라는 개념은 매우 우선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설교자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을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 그것을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가장 우선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영선이 발견한 하나님 이해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즉 하나님은 열심(zeal)으로 자기 백성들과의 언약관계를 유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개념을 찾은 것이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 대한 의도를 전제로 성경을 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인물들의 반응에 앞서) 이렇게까지 인도함을 받도록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히 참으시고 인도하시는 열심 있는 손길이다.

박영선의 최초 강해 설교도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개념으로 구약의 족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과정을 해석하는 내용이었다. 이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개념은 박영선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매우 중심적인 관점이기도 했다. 사실 가장 근본적인 의미로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열심 있는 분임을 계시하는 책이다. 박영선은 이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간주한다.

더구나 박영선의 강해 설교는 이 ‘하나님의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나타나고 확증되었다는 틀 속에서 성경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의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의해 오늘의 신자들에게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들을 확증하시고 그 약속에 참여시키기 위해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열심과 간섭을 계속 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을 감수하고라도, 그 어떤 장애를 뛰어 넘어서라도,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만드시고야 말 고집을 갖고 계신 분이시고, 열심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분이다. 따라서 설교자로서 박영선은 사실과 진실을 규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둘째,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박영선의 강해 설교의 특징은 어떤 본문이든 본문의 원래 내용과 의미를 재구성하는데 있어 해석을 지원할 성경의 다른 본문을 확보하여 해석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또 다른 특징으로 이끈다. 성경은 성경의 보증아래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은 자체의 해석원리에 의해 성경의 지원이 요구된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가장 큰 해석도구는 성경 자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박영선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계시의 역사적 발전과 연결이 성경 자체의 논리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고 보고, 어떤 본문이든지 전체 성경의 흐름과 하나님의 의도를 전제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로마서강해에서 1:17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를 해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다른 구절들을 동원하여 기준점을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는 같은 로마서 3:21-2에서도 동일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을 보는데, 이러한 구절들의 해석을 위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약 하박국 2:2-4의 원래 구절을 찾아 해석을 취함으로 ‘하나님의 의’의 진정한 개념이해를 밝히고 있다. 박영선은 이에 대해 본문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여러 성경구절의 지지를 확인하는 해석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입장을 보인다. 그래서 박영선은 이런 것들은 여러 가지 성경적인 지지를 받는다. 몇 구절을 더 찾아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하는 원리는 성경의 객관적 지지를 확인하는 해석방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의 광범위한 주제의 일치를 확인시켜주는 해석방법이기도 하다. 같은 로마서강해 2:1-8의 본문으로 하나님의 인내를 설명할 때, 박영선은 먼저 구약의 역사가운데 하나님의 인내에 대한 케이스연구로 유다의 멸망을 살펴보는 것도 동일한 해석방법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신약을 강해하는데 있어 필요한 원리로서 ‘구약의 가치’는 놀랄만한 분량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박영선 강해 설교의 패턴을 이루는 특징 가운데 말씀의 현실적 적용을 들 수 있다. 사실 박영선의 모든 설교는 성도들의 현실 생활에 적용하도록 설득력 있는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특징이 있다. 그의 적용제시는 기록된 말씀의 지평과 그 말씀이 해석되고 이해되어지는 청중들의 지평융해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큰 설득력을 가진다.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의 신앙을 점검하도록 하는 유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쓰이기는 옛날에 쓰였지만 지금 여기서 쓰도록 되어 있다. 박영선이 이해하는 강해 설교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설교라는 것은 본문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본문을 역사적-문법적 초점으로 풀어 가는 해석활동을 엄밀한 의미에서 석의라고 한다. 물론 해석이 상위 개념이고, 석의가 하위 개념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설교는 본문을 해석하는데만 그칠 수 없다. 해석한 것이 ‘지금 여기’, 시간적인 동질공간, 삶의 공통공간으로, 청중들에게까지 내려와야 한다. 따라서 박영선은 설교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교회나 청중이 처한 삶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박영선 성경강해의 패턴에 있어서 적용 부분은 매우 독특한 청중과 설교상황의 이해를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설득력을 가진 게 특징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예증으로 고린도전서 강해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박영선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를 쓰게 된 동기 중 하나인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요인과 현재적 상황을 설교하면서, 고린도교인들이 복음의 핵심을 오해해서 그리스도 대신 자신의 일을 자랑하는 교만에 빠졌던 부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메시지의 적용을 구체적인 교회상황에서의 성도들의 이해에 맞게 제시한다. 예컨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통해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신앙을 이러한 기준 위에서 되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신앙도 너무 능력 일변도이고, 자랑하는 일변도가 된다는 점은 고린도교회의 상황과 다름없다.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능력 쪽으로 가는 것은 성경이 목표하고있는 신앙의 목표가 아니다. 더구나 박영선은 이러한 적용을 위해서 극히 현실적이고 이해할만한 가까운 상황을 제시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종종 신앙생활을 하며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세상적인 기준을 갖고 할 때가 많다. 가령 세상을 사는 남자들은 큰 기업을 이룬다던가, 어떤 무엇을 해서 입신양명을 한다. 기업가가 되던가, 장관이 되던가 해서 사회적으로 자기 능력을 과시한다. 이런 것들은 남자들의 본능이기도 하다. 심지어 목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떻게 큰 교회를 담당하던가, 우리 교회에 박사나 사장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자랑이 되기도 한다. 큰 시험거리들이다. 이런 상황제시와 더불어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는 게 보다 현실적인 적용을 위한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 중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은 이것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래서 예수는 즐겨 죄인들과 친구가 되신다. 여러분들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세상적인 자랑으로 보상받으려고 하지 말아라. 이것은 언제나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는 신앙형태이다.

박영선의 강해 설교는 따라서 크게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를 성경본문에서 밝히는 해석과, 그 의도가 오늘의 성도들의 현실에서 어떤 메시지로 전달되어야 하는가 하는 적용이라는 두 가지 축이 패턴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패턴은 박영선의 독특한 강해 설교의 한국교회 상황에 맞는 모델에 대한 기여이기도 하다.

(2) 목회 모델을 제시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 패턴은 사실 아직 한국교회에 정착되기엔 이른 패턴이라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담임목사로서의 목회 모델은 권위주의적인 가부장적 패턴, 일 중심적인 교역자 기용, 가정분위기보다는 사회적 일터로서의 분위기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박영선의 목회 패턴은 그 반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권위주의에 대한 심한 혐오감을 나타낼 정도이다. 사실, 박영선의 권위에 대한 이해는 매우 한국 문화적 상황과 함께 형성된 역사적 의식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전반에 걸쳐 목회구조와 조직 면에서 권위주의적 성향이 뿌리내리게 된 배경은 유교문화권의 깊은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의 계급주의 관계가 기독교의 계급적 토착화되었고, 유교적 이상이 추구하는 사회적 관계 역시 한국교회의 구조에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박영선은 유교가 지향하는 권위주의와 전통주의의 이상이 기독교의 권위 개념이나 전통개념과 정반대 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권위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출처한 권위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제도나 관계 속에서 만든 그런 것이 아니다. 전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의 전통이란 복음이 갖는 전통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 그 복음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그 어떤 방법에 대한 전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박영선은 목회현장에서 이러한 자세의 관계를 기초한 목회구조를 형성해왔다. 실재로 남포교회의 경우, 교회를 섬기는 많은 교역자들은 각기 독립적이며 자발적인 태도로 자기 일을 감당하고 있으며, 목회자들 사이의 어떤 선임의식이나 권위, 또한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계급의식이나 간격을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많은 한국교회들이 유교영향의 결과로 교회 내의 직분에 따른 계급의식과 목회자의 ‘주의 종’의식이 만들어낸 목회자의 권위주의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더구나 교회가 대형화 될 수록 목사는 마치 작은 교황처럼 군림하는 성직자제도의 계급화 현상이 강화되기도 한다. 박영선은 이에 대한 해결을 목회구조에 있어 권위적 요소를 없앰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담임목사의 위치에 있을지라도 교역자들이나 일반 성도들에게 격의 없이 인간적인 따뜻한 관계를 유지한다던가, 형식적인 절차와 계층적 분위기를 단절시킴으로 보다 가족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예컨대, 매주나 매월 일정한 부서의 회합이나 정기모임을 통해 보고와 계획의 확인을 정례화 하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적절한 시기를 정해 함께 만나 의논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서 교직원들의 상호 신뢰와 자발적 책임을 강화한다는 점은 매우 유연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박영선의 목회 모델로서의 권위주의와 전통주의적 요소를 지양하는 특징은 사실 그의 설교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그의 설교 수사적 표현들 가운데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기준을 훨씬 초과한 과감한 표현과 역설적인 어법을 구사하는 것은 그의 권위주의나 전통주의에 대한 격렬한 반대의 몸짓이기도 하다. 그는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신분으로 오셨으면 서도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음은 우리에게 권위에 대해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설교의 열정이 이끄는 대로 과감하며 원색적인 표현을 구사하면서까지 복음을 권위적 형태로 전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노출을 시도한다. 이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인상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영선이 기독교의 권위나 전통에 훨씬 수호적 입장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적 태도와 삶의 실천을 보아도 짐작할 정도이다.

박영선의 목회 패턴의 중요한 특징은 목회를 위한 조직적 운영이 없이도, 권위주의적 질서를 강조하지 않고도, 전통주의적인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을지라도, 자유 가운데 형성된 교회의 가족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성장을 위해 정열을 고갈시켜 가는 많은 목회자들과 함께, 이미 성장을 이룬 목회자들이 권위주의적이고 카리스마적 목회를 추구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건전한 가정적 목회의 모델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3) 한국교회의 복음이해에 대한 반성적 모델을 제시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복음이해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사상이 가미된 토양에서 종종 도피적이고 타계적인 태도로 수용되곤 했다. 한국에 만연된 전통종교인 불교의 세계관이 기독교 복음에 혼재된 현실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적 어려움 가운데 역사적으로 일제와 한국전쟁 등과 같은 큰 민족적 고난과 어려운 시기를 거치는 동안, 많은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 복음선포를 계속해왔고, 많은 신자들은 이러한 어려운 현실을 타파하는데 기독교 신앙의 싸움을 해왔다. 결과적으로 일부 한국교회는 마니교적인 이원론의 구조 속에서 기독교 복음을 이해하는 경향이 짙어졌고, 이런 극단적인 신앙이해가 만연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이원론적인 신앙관은 오히려 현세적인 신앙관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같은 신앙패턴은 한국의 전통적 재래종교사상인 샤머니즘과 어우러지면서 이 세상에서의 복음을 믿는 믿음의 보상으로 물리적 복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발전되어 자리를 굳여갔다.

박영선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전통문화와 타협한 형태의 기복적 신앙을 돌이키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축복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기독교 복음의 성격은 자칫 현세적이고 물리적인 물질축복으로 강조되는 게 현실이었지만, 박영선은 진정한 복음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십자가를 바라보는 희생을 강조하곤 한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결국 세상에 있는 가치를 주를 위해 쓴다는 개념이 아니고 가치 자체가 하늘에 속한 것이냐, 땅에 속한 것이냐로 나눠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땅에 속하는 것들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하여 멸시 당하고 핍박당하며, 주를 따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 이것이 하늘나라의 보물이다. 박영선은 이 세상의 물리적인 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을 향해 이렇게 강한 톤으로 권면한다. 복, 우리가 너무 혼동하고 있는데 너무 세상적으로 복을 이해하지 마라. 아프지 않고 좌절이 없고 실패가 없고 돈이 필요한 대로 다 있고,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는 이런 것이 복인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절대 오해다. 성경의 복은 그의 존재와 그의 삶에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이것이다. 신자에게 왜 이토록 감사가 없고, 자랑이 없고, 승리가 없느냐? 그건 여러분이 신앙적인 싸움을 제대로 하지 않고 세상적인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에 있는 헛된 것을 구하며, 세상에 있는 썩어질 영광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방법을 쓰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명예, 세상의 박수, 세상에 있는 물질,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을 기도함으로써 그 싸움을 한다고 그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싸움을 하고 세상 목표를 향해 하나님을 동원하는 것은 언제나 실패다.

박영선에게 기독교 복음의 이해는 언제나 현실 속에서 역동적인 삶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이해하고 믿는 신자로서 그 믿음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신자다운 삶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복이라 말한다. 여러분이 인생을 가장 복되고 가장 살찌게 사는 방법은 여러분이 신자이기 때문에 신자답게 사는 것이다. 이점에서 박영선은 지극히 기독교 현실주의자이다. 기독교 복음이 신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삶을 역동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의 현실적 효용성을 수반하는 이해야말로 물리적으로 추구하는 현세적 물질주의와 기복신앙을 극복하게 하고, 동시에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힘겹게 인내하며 살아가는 염세주의적 태도를 극복하게 할 것이다.

박영선의 이러한 기독교 복음이해의 반성과 제안적 설교는 한국교회의 또 다른 부작용에 대한 기독교적 반성에 공헌하고 있다. 즉 한국교회는 이 세상의 물질주의와 타계적인 염세주의가 교묘하게 혼합되어 신자들의 경건의 특징을 이루게 하였는데, 이 때의 경건의 핵심은 대부분 열심과 인내로 나타난다. 사실상 열심과 인내라는 개념은 한국교회의 경건과 신학을 이루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가르침은 이 열심에 근거하여 복음을 설파할 뿐 아니라, 이 열심을 통해 하나님께로의 헌신을 확인하는 신앙생활의 매카니즘을 형성하게 만든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이 열심이라는 신앙의 동기를 전도의 열기로 이어지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의욕에 찬 신앙생활을 권장하여 ‘일사각오’라는 열성주의적 종교적 열광주의 빠지게 호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박영선은 기독교 복음의 가르침은 운동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열심은 자신의 신자로서의 삶을 사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열심이지 결코 열심의 행위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큰 잘못 중의 하나는 신자들을 너무 어떤 일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의 거룩이요, 하나님의 자녀다움이지, 여러분들이 얼마나 전도를 많이 하던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내던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자꾸 무슨 공사장 같은데, 사실 여러분들이 요구받는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주를 위해 하는 일들이 너무 능력 위주이기 때문에 훨씬 이 인격적인 차원에서의 하나님 자녀된 거룩한 모습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한국교회가 열심을 강조하여 신자들을 헌신으로 이끄는 것은 일종의 유교적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문화의 특징에 편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영선은 신앙이 명분이 될 경계를 예리하게 지적하며, 교회와 신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의 순서를 명분에 따라 정하지 말도록 가르친다. 보통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명분 있는 일을 하고,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일은 하는데, 가장 급한 일은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전도나 선교 등이 명분 있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요구하고 싶다. 우선 가족에게 잘 하라.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에게 책임을 다 하지 않고 교회에 나가서 일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체적으로 박영선의 목회는 한국교회에 전제된 전통적인 문화적 영향들을 기독교 복음에 비추어 반성한 의의를 가진다. 한국교회의 고유한 특성을 전제로 복음의 이해에 비추어 여러 잘못된 현상들을 반성한 박영선의 목회 패턴은 한국교회 신자들의 복음이해와 삶의 실천에 한 걸음 앞장선 모델이라 말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서론
 

본 논문의 제 2부에서는 박영선의 목회에서 강해 설교로 강조점을 옮기고자 한다. 특히 강해 설교의 분석에 비중을 둘 것이다. 제 2부의 목적은 제 1부의 박영선의 남포교회 목회에서 가장 비중이 있는 강해 설교의 신학적 주제의 성격이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박영선 강해 설교의 특징을 제시하려는데 있다.

제 5장, ‘박영선의 연속 강해 설교와 청중의 성격’에서는 박영선이 남포교회를 목회하며 계속 행해왔던 강해 설교를 분류하여 소개함으로 그 특징과 성격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본 장에서는 남포교회가 창립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15년간의 모든 강해 설교를 포함하여, 청중의 성격을 분석할 것이다. 더구나 주일예배 때에 전해진 강해 설교와 수요예배 때 전해진 강해 설교의 성격의 차이점을 분석하는데 적절한 강조가 주어질 것이다. 대체로 말해, 주일예배의 강해 설교가 ‘칭의’의 구원론적인 성격이 반영되었던 반면에, 수요예배의 강해 설교는 ‘성화’의 교회론적 성격이 반영되고 있는 특징을 설명할 것이다. 박영선의 강해 설교는 성경권별로 끝날 때마다 계속 책으로 출간되어왔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게 될 것이다.

제 6장, ‘박영선의 강해 설교에 나타난 신학구조와 개념들’에서는 박영선의 성경을 보는 관점과 기독교복음 이해의 패턴, 그리고 기독교신학의 체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볼 것이다. 따라서 이 6장의 목적은 박영선의 강해 설교의 신학적 성격을 규명하고 평가하는데 있다. 특별한 강조점이 구원론과 교회론으로 대표되는 ‘칭의’와 ‘성화’의 배경에 주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박영선의 강해 설교의 자료들이 관찰될 것이고, 성경본문의 해석이 분석될 것이다.

 

5. 박영선 연속 강해 설교와 청중의 성격
 

(1) 주일 아침예배 강해 설교와 청중의 성격

박영선이 남포교회를 처음 개척할 1985년 1월 첫 주부터 강해를 시작한 성경은 요한복음 강해였다. 그후 요한복음은 정확히 3년이 지난 1987년 12월 마지막 주에 끝났다. 다음의 강해 설교 성경은 사도행전이었다. 1988년 1월 첫째 주에 시작된 사도행전 역시 정확하게 3년이 지난 1990년 12월 마지막 주에 끝나고, 그후 1991년 1월부터 5년 동안은 로마서를 강해하여 1995년 성탄주일에 끝이 났다. 1995년 12월 마지막 주부터 2년 4개월 동안은 히브리서 강해가 이어져 1998년 5월 첫 째주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1998년 5월 마지막 주부터 현재까지 마태복음이 계속 강해 중이다.

남포교회의 주일 아침예배는 오전 11시에 시작되어 거의 정확하게 1시간 안에 끝난다. 이 주일 아침예배는 대체로 모든 등록교인들이 참석하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삶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신앙행사로 여기는 이 공식 예배를 통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돌아보고 삶의 결단을 내리는 매우 경건하고 엄숙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주일 아침예배에는 처음 복음에 접한 초신자들로부터 오랜 신앙생활을 한 헌신된 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듣는 중심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박영선은 약 25분간의 주일 아침예배 설교 시간을 통하여, 복음의 기본 도리이며 구원의 메시지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선포하는데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구원을 강조하는 성경강해를 선택한 것이다.

박영선이 주일 아침예배 때에 강해한 성경이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히브리서, 마태복음 등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복음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신약성경들이기도 하다. 다른 어떤 성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야기를 다루는 복음서(요한복음과 마태복음)와 그 복음이 최초의 교회들을 통해 어떻게 퍼져 갔는지를 말하는 복음의 역사서로서의 사도행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나타난 구원의 도리를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로마서와 히브리서 등을 선택 한 사실은, 주일예배를 복음의 선포됨으로 신자들이 말씀으로 자신의 존재됨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2) 주일 오후예배 강해 설교와 청중의 성격

박영선이 주일 오후예배에 강해 설교를 한 것은 남포교회 설립초기 시절의 약 1년 5개월 정도의 기간이었다. 1985년 1월 둘째 주일 오후부터 이듬해 1월 둘째 수요일까지 약 1년간 고린도전서를 강해했으며, 1986년 1월 셋째 주일 오후부터 약 5개월간 고린도후서를 강해했는데, 이 때 고린도전후서 강해는 끝마무리를 못하고 수요 저녁예배시간으로 옮겨진 1990년 7월부터 1995년 12월 둘째 수요일까지 연장되었다.

원래 박영선은 남포교회 설립 당시, 주일 오전예배와 오후예배, 그리고 수요일 저녁예배 등 세 차례의 강해 설교를 수행하였으나, 교인들이 증가됨에 따라 주일 아침예배의 횟수가 늘어났고, 이에 따른 격무로 인해 주일 오후예배를 다른 부교역자가 담당하도록 바꾼 것이다.

따라서 주일 오후예배에 행했던 고린도전후서의 전반부 강해는 비록 뱫은 기간이었지만, 보다 진지한 청중들에게 신앙의 성숙을 강조한 내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일 오후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신앙수준이 깊은 성도들이었고, 교회에 얼마간 깊이 헌신된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이 때의 강해 설교는 보다 실제적인 신앙생활의 문제점들을 실천할 수 있는 메시지로 설교한 특징이 있다. 사실 강해의 대상으로 고린도전후서를 선택한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여러 교회와 성도들 간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기록한 바울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3) 수요 저녁예배 강해 설교와 청중의 성격

박영선은 1985년 남포교회 창립이후 첫 번째 주 수요 저녁예배부터 에베소서를 강해하여 약 5년 5개월이 지난 1990 5월 마지막 수요일에 끝났다. 그후 위에서 언급한대로 고린도전후서 후반부를 약 5년 5개월 만인 1995년 12월 둘째 수요일까지 강해했으며, 1995년 12월 마지막 주 수요일부터 1999년 12월 셋째 주 수요일까지 구약의 신명기를 강해하였다.

사실 일반적으로 말해 한국교회의 수요예배 참여도는 지극히 헌신된 신자들로 제한되어 주일 아침예배 때의 인원과 비교해 볼 때 현저히 줄어든다. 더구나 대형교회들일 경우 수요예배의 참여자들의 숫자는 등록교인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12%도 못된다. 그러나 남포교회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수요예배 참여도에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신자들의 높은 참여율을 나타내는 것이 사실이다. 전체 등록교인들의 약 20%가 수요예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주된 이유는 박영선의 강해 설교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출석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수요 저녁예배 시간에는 남포교회의 등록교인들이 아닌 타교회 교인들이나 남포교회에 등록하기 위해 다니는 신자들도 많이 참석한다. 자연히 수요 저녁예배의 성도들은 신앙적으로 보다 성숙된 사람들이기 마련이다. 그들이 평일의 하루저녁을 예배로 모이는 것은 보다 깊은 신앙성숙을 위한 그들의 헌신의 태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박영선이 수요 저녁예배의 강해로 선택한 성경은 성도들의 실제적 실천의 문제와 성도들의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는 신앙생활의 내용에 대한 책들이라 볼 수 있다. 에배소서의 경우, 성도들의 거룩한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내용과 보다 성화된 삶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성도들에게 교훈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 구약에서 선택하여 강해를 시작한 신명기는, 가나안에 입성하기에 앞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기로 다짐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삶의 원리와 태도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위한 강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점에서도 역시 수요 저녁예배의 강해 설교는 주일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구원의 메시지를 전제한 ‘성화’의 메시지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겠다.

(4) 박영선 강해 설교의 출판 현황

박영선의 강해 설교의 분량은 양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분량을 차지한다. 사실 박영선의 모든 설교는 테이프레코더에 의해 녹음이 되며 많은 분량이 판매되고 있으며, 심지어 많은 해외 교포들까지도 이 테이프를 주문하여 듣는 실정이다. 초기의 박영선 설교들도 거의 모두 출판되었지만, 남포교회의 강해 설교 또한 씨리즈별로 출판되었다.

따라서 남포교회는 박영선의 강해 설교를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교회 내에 ‘교재편찬실’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서 모든 박영선의 강해설교 씨리즈가 출간될 뿐 아니라, 그 강해 씨리즈로부터 개별 신학적 주제에 따른 성경공부 교재도 펴내고 있기도 하다. 남포교회 교재편찬실에서 출간한 박영선의 강해 설교 씨리즈는 요한복음강해, 고린도전후서강해, 사도행전강해, 로마서강해, 히브리서강해, 신명기강해,(근간) 그리고 마태복음강해(근간) 등이다. 그리고 주제별로 간행된 성경공부교재는 하나님나라, 구원론, 교회론, 구약의 인물, 제자훈련 등이다.

 

6. 박영선 강해 설교에 나타난 신학구조와 개념들
 

(1) 하나님 중심 주권(신론)

박영선의 강해 설교에 나타난 하나님이해는 매우 분명한 하나님주권 사상을 들 수 있다. 그는 철저하게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절대주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우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경배할 대상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또한 나의 아버지라는 뜨거운 인식과 만남이 있으며, 또한 그것을 아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예배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인 ‘신령과 진정’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싸움이다. 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존재의 표현이기도 하다. 천지창조는, 하나님 한 분만이 창조의 권능을 가진 유일한 분이라는 표현이지, 다른 것을 표현한 말이 아니다. 천지창조는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는 주권적 표현이기도 하다. 천지창조는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 계시하시는 선언이기도 하다. 피조된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재료이며 하나님으로 인도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영선은 이 창조주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으로 역사 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함으로 우리의 구원이 그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선택과 의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성경이 주장하는 바는 구원에 관한 성격이 우리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의지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시점을 ‘창세 전’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구원의 근거이기보다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가 구원의 근거인 것을 보이고 싶어서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이제 구원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관계를 하시는데, 이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할만한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가장 근접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박영선은 요한복음강해에서,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요한복음 식대로 한다면 ‘말씀’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참 많았다. 전능하시다, 거룩하시다, 사랑이시다, 영원하시다, 의로우시다, 자비로우시다, 오래 참으신다 등등 여러 가지 표현이 많지만, 이런 중에도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말씀’이라고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본 자가 아무도 없고,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시킬 만한 묘사를 할 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묘사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영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은 요한복음 3:16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대가를 지불하셨는데,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으뜸 되는 증거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데 있어 어떤 조건이나 제한성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나 조건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선택적 사랑의 제한성과는 다른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은 그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방법이요, 표현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신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증거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도 여기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 편에서의 간섭과 열심에 의지하여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택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박영선에 의하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절대적 사랑과 구원의 간섭은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자들의 이해와 상반되는 내용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늘 마음속에 내가 이런 꼴인데도, 이런 실수를 해도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하는 것에 어느 정도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스스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을 이해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고 부활시킨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그래서 이제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우리 모든 신자들이 오늘을 사는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근거요, 힘의 원천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며,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이점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결과에 대해 우리가 자랑할 수 없는 사실로 이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성격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쪽의 어떤 근거나 조건을 내세울 그런 자랑이 있을 수 없다.

박영선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성취를 위해 오신 분으로서 그 분만이 구원의 이유가 되고 구원의 조건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진, 구원과 심판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으로서 빌립보서 2:5-11에서와 같이 우리의 구원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육하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박영선은 성부와 성자의 구원사역의 협동과 함께 성령의 역사 하심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확인된 바 되었다고 주장함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적인 관점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고 얘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보았던 그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그 아들의 영을 보내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성령님의 기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를 확실히 확인해 준다는 점이다. 이 자녀로의 확인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우리 신자들의 관계가 부자관계의 메타포로 제시되는 것이며, 우리 신자들의 구원이란 바로 그 아버지의 상속자로서의 권리로서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박영선이 이해하는 성령의 역사가 어떤 기적적인 사건이나 어떤 신비로운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쉽게 오해하는 성령의 나타남을 어떤 초월적인 현상,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자꾸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 요구하거나 많은 비중을 두는 사건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박영선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부인하거나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일로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기는 해도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에 중점을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령의 많은 역사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말씀에 대한 사역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하시는 평범한 깨우침들에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복음을 깨닫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데, 우리가 복음의 복음된 것을 조명해보면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어떤 힘, 곧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붙잡아 가는 싸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박영선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구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약속으로 받은 것이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완성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첫 번째 증거는 주께서 우리를 향하여 행하신 대속 사역이 완성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성령의 임하심을 가리켜 그동안 율법으로 구원이 요구되고 있다고 오해했던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게 구원이 우리 인간 쪽으로부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우리가 율법을 시행하고 율법을 만족시키게 할 실력이 없는 자임을 확인시키고,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박영선의 하나님 이해의 큰 틀은 삼위 하나님의 이해를 근거로 신자들과 구원의 언약의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래서 박영선의 강해 설교들이 대부분 신약의 성경본문을 다루고 있지만, 많은 인용문들은 구약의 역사적인 흐름의 맥락에서의 관련성을 가지는 본문들이기도 하다. 즉, 박영선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 대한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자신을 계시해온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며 신약의 강해 설교를 시도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이렇게 함으로서 성경의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약속의 관계로 연합되어 있는 모델들을 통하여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모습을 바라보도록 하고, 여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2) 인간과 죄의 이해(인간론)

박영선의 강해 설교를 통해 확인되는 인간이해는 인간이 철저히 죄인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고, 그가 죄와 사망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가 아담이라는 죄인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죄란 인간적인 경험이나 느낌이 아니다. 인간의 죄는 성품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의 죄성은 자기중심적 성향으로 나타난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것처럼, 어떤 인간이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무슨 일을 해도 다 자기 생색이고 자기치장이다. 그래서 로마서 3:9-20에서 모든 인간이 죄라는 지적을 하는 초점이 무엇인가를 보라. 이웃에 대해 나타나는 악한 행실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박영선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죄인된 표현이 하나님에 대하여 등을 돌리고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인간이 죄인이란 말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고, 하나님을 적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죄인됨은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 상태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는 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죄란 물질적인 어떤 형태가 아니다. 죄란 인간의 태도요, 경향이다.

박영선은 원래적 인간의 죄성에 대한 기원을 창세기의 타락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처음 하나님에게 창조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합의 관계였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간이 죽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는데, 그 죽음이 어디에서 나타나느냐면 그들이 서로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죽은 다음의 인간은 살아 있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어서 그 때부터 우리가 육신에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박영선의 인간론은 이처럼 철저하게 인간의 죄된 성품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하나님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죄라는 것이다. 죄나 악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요, 불순종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영선은 이 죄인된 인간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변화된 모습을 언급하면서, 죄에 대하여 죽게 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는데, 이를 구원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나와야 되고 새로 들어가야 되는 곳, 즉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부터 나오고 의와 거룩과 영생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되는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나오기 위한 죽으심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구원이란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 구원의 사건 전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담 안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잘못한 일이 없어도 아담에게 일어난 일이 모두 우리의 결과가 된 것같이, 이제는 우리의 신분이 예수의 소속이 되어 예수에게 일어났던 일이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기 위해 보내신 방법이다. 우리는 바로 죄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예수의 구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박영선은 이제 아담 안에 속한 옛 성품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을 얘기한다. 그가 말하는 구원이 결과한 새로운 인간은 신자라 불리는데, 신자는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던 데서 벗어나 이제 의와 거룩과 영광과 생명과 진리의 자리에 들어온 새로운 피조물을 말한다. 신자란 이제 죄에 대해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의인의 칭호를 얻은 자들인 것이다. 박영선은 이에 대해 아담유비로 설명하는 로마서를 강해한다. 아담이 죄인이었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도 죄인이었는데, 이제 예수께서 의인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의 후손된 신자들이 의인이 되었다. 특히 로마서 5장의 전개는 이렇게 둘째 사람인 예수의 십자가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족보를 마감하고 새로운 족보에 들게 하여 죄가 왕 노릇하던 데서부터 우리를 꺼내 이제 의와 진리와 은혜가 왕 노릇 하는 데로 옮겨 놓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영선은 이 새로운 사람은 이제 두 가지의 법칙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며 죄문제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이제 죄와 사망의 왕 노릇하던 데에서 벗어나 의와 진리와 거룩의 지배 아래 들어온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 신자들도 여전히 죄와 그 증후들과 더불어 고난의 세상에서 싸워야 하는 성화의 과정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죄와 직면해 있다 할지라도 이 죄가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를 전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죄를 짓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다르냐면 이제는 죄가 우리를 장악하고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한다. 신자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면, 죄를 아직도 짓는 것이 사실이지만 죄를 짓는 것이 계속되거나 그것이 그의 주된 삶의 경향이지 않고 싫어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는 점이다. 박영선은 신자들이 아직도 계속 죄를 짓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아직 옛 습성이 남아있고, 옛날에 사단에 대해 하도 당했던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겁을 먹고 죄에 대한 유혹과 그 버릇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에는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신자에게 있어서 죄는 이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비록 신자들도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전의 죄의 종노릇하던 때 맺은 부끄러운 열매들이 있을지라도, 이제 신자들은 죄에서 벗어나 의와 거룩으로 부름 받았고 그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의와 거룩으로 새사람된 구원을 입은 인간의 현실인 것이다. 박영선은 이러한 옛사람과 새사람의 관계등식을 로마서 6장의 개요를 설명하며 말한다. 우리가 로마서 6장에서는 죄에서 해방되고 의와 거룩으로 거듭났다는 식의 표현을 접했다. 예전에는 아담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예수 안에 있다. 예전에는 죄 아래 있었으나, 지금은 은혜 아래에 있다. 예전에는 진노 아래 있었으므로 마지막이 형벌이었으나, 지금은 생명과 영생과 영광 안에 있다.

박영선의 구원받은 새로운 인간이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는 우리의 신분적 변화에서 더욱 적극적인 새로운 인간으로의 추구를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신자들이 가지는 구원에 대한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나는 지옥가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다. 로마서의 표현대로 하면 죄와 사망의 노예로부터 은혜와 영생의 자리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는 우리의 구원을 설명할 때, 그런 차원 말고도 다른 차원이 있음을 가르친다. 우리가 죄와 사망으로부터 은혜와 영생의 자리로 옮겨졌을 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삶과 신분이 부동한 이유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한 사역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있어 가장 불행한 것은 ‘죄를 짓지 말아야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식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자기방향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나 안 지으라고 요구하실 만큼 가난한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는 삶 속에 화평을 세우라고 요구하신다. 이점에서 박영선은 인간성의 더욱 적극적인 회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백성들로 요구받는 수준까지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성장하는 새로운 피조물 된 인간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3) 칭의와 구원의 이해(기독론과 구원론)

박영선의 강해 설교에 있어서 구원론적 메시지의 중심성은 그의 전체 성경강해를 뚜렷하게 부각해주는 중요한 신학적 패턴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구원론적 메시지는 여러 다양한 성경의 개념들을 분석하여 신자들의 구체적 현실에 맞게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 ‘칭의’의 개념과 구원의 이해는 기독교복음의 가장 두드러진 교리이며, 모든 세기에 있어 이 구원론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있어온 게 사실이다.

박영선의 ‘칭의’ 개념의 이해는 16세기의 종교개혁의 구원론 교리에 정초한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로마교의 ‘기독교복음’ 이해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칭의교리로부터 변질된 것을 비판하여, 어거스틴의 신학전통에 따라 ‘이신칭의’ 사상을 다시 발견하고 주장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선도했었다. 사실 루터의 관심은 죄인들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구원의 방법론에 대한 연구였다. 루터는 이 물음을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았고, 이 은혜란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구원의 다리로서 이해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교리를 천명한 것이다.

박영선도 이 루터의 칭의 개념을 더욱 자세히 분석하여 20세기말의 한국교회 상황에서의 구원론 이해의 패러다임을 강화하는 기준을 삼고, 이 종교개혁의 구원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박영선의 구원론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교회의 구원론 이해의 현상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구원론의 중심원리라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언명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거나, 다른 원리에 의해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할 수 있다. 예컨대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의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기 보다 인간 편에서의 모종의 책임국면이 있지 않는가? 하는 혼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아마도 오랜 유교적 영향으로 명분이 강화된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책임이 개입되면서 인간의 행위를 수반한 반응은 언제나 ‘칭의’의 개념의 본질을 오해하게 하거나 율법주의의 구원론 이해에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을 간과한 셈이다. 즉, 박영선의 지적대로, 구원이란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는 점에서 복음인 것이다. 구원 얻는 방법의 문제로서 ‘어떻게?’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 방법으로서 ‘어떻게?’를 믿는 방법으로서 복음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그 ‘어떻게’가 우리가 믿는 방법으로서 어떻게라면 하나의 테크닉을 의미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찾아오셨는가를 생각할 때는 이미 테크닉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과 은혜와 사랑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면 박영선의 ‘칭의’의 구원론의 전체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다음의 몇몇 개념들인 복음, 은혜, 믿음, 구원 등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a. 복음에 대하여

박영선은 기독교신앙의 출발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 부활, 승천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의 소식인 복음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지혜라는 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이점에서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문제지 우리의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일차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한다. 박영선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선택하느냐, 혹 거역하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만드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역사와 인류에 대해 어떤 뜻을 가지셨고, 개입하셨느냐는 사실이 복음이다.

박영선은 복음의 주체가 하나님이심과 복음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계속 견지하도록 강조한다. 요한복음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보내신 이가 강조됨을 주의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언제나 그를 보내신 분을 전제하고, 그 성부와 성자의 밀접한 관계로 제시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전제를 근거로 이제 복음의 내용은 어떤 관념이나 개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완악한 인간을 찾아오셔서 간섭하신 의지의 손길이다. 박영선은 로마서강해에서 이러한 복음의 이해를 근거로 복음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사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 또 부활하사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교회를 완성시키기 위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고 계신다는 모든 내용을 다 포함한다.고 말한다.

b.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박영선은 복음의 이해를 통해 ‘하나님의 의’의 개념에 접근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인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복음이라고 한다면,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는 바울의 로마서 1:16의 본문이 가리키는 의미는 우리를 의인으로 이끄는 그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여기서의 ‘의’를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인 공의가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공의는 거룩과 순결의 공의이기 때문에 부정한 죄인은 그 공의 앞에 설 수 없다. 즉 공의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공의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옳으심’, 즉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말하는 것이다.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으로서 하나님다우심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박영선은 사도 바울의 복음소개가 이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선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이 복음을 믿을 조건이나 능력이나 관심이 없는 우리에게 어떻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내시고야 말았는가 함이 복음 안에 들어있다는 의미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는데, 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복음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신 증거인 것이다. 따라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간섭이라 할 수 있다. 이점에서 박영선은 믿음이 우리의 반응이거나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과라고 말한다.

c. 은혜에 대하여

박영선의 은혜에 대한 이해는 주로 로마서강해에서 논의되는 개념이다. 그는 성경에서 언급되는 ‘은혜’의 개념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편에서 아무런 조건이나 협력을 할 수 없던 상황에서의 하나님만이 제시한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로 이해한다. 즉 은혜란 하나님만이 구원의 주권적인 주도권을 가진다는 뜻으로 인간에게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점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은혜라는 말이 도입된 것은 인간이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그 기적적인 일에 하나님이 간섭하셨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말이고, 그 점에 있어 우리의 노력여하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구원의 성격을 반영하기 위해서 은혜라는 말이 사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인간을 죄로부터 꺼내서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진리와 생명의 자리로 보내는 힘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힘이 없어 죄인의 자리에 놓여 있었는데, 이 은혜로 그 죄인의 자리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께 나를 헌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은혜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는 인간의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박영선은 인간의 구원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그것이 어떤 대가나 공로를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게 된 그 공짜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값없이 받은 선물로서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원의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 ‘율법’이라는 개념을 상응시켜 설명하는 바울의 입장을 분석한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율법으로 얻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과 은혜가 대치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이 반대편에 있음을 안다. 율법을 좇아서는 육신을 좇아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율법과 기술제휴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 박영선은 우리의 구원을 설명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 태어난 존재임을 부각시킴으로 우리 인간 쪽에서의 자랑과 좌절을 동시에 막는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지 않고 우리의 수단과 방법으로 받았다면, 우리는 계속 우리의 구원을 우리가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어떤 수단에 의해 얻어진 구원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행위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으로 자랑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박영선은 이 은혜를 신자들이 살면서 계속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고 말하므로 은혜의 추구를 확대한다. 신자들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박영선은 ‘은혜지상주의’를 경계한다. 그에 의하면,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궁극적인 결과에 이르게 하려고 베푼 것이며, 지금도 우리 중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이다. 우리는 의와 거룩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영광된 결국을 위하여 채찍질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은혜의 목적이요, 은혜의 이유이다. 따라서 은혜는 죄를 씻어주는 그런 소극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죄를 씻는 것으로부터 이제 그 인격적인 존재가 어딘가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은혜란 죄를 씻어야만 되는 그 인격적인 주체자가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느냐를 위해 등장한다. 그 인격적인 존재가 죄와 죄를 짓는 것으로부터 의롭고 거룩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야 되는 것으로 가게 하기 위하여 은혜가 등장한다. 박영선에게 은혜란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과 인격적인 인도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수단으로 얻어진 사실을 얘기하기 위해, 하나님 쪽에서의 방법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은혜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은혜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을 위한 근거로서 하나님께서 고안한 수단이기도 하다. 신자들은 이 은혜의 수단에 의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죄의 영역에서 구원의 영역으로 옮겨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은혜의 수단은 그리스도를 이 세상으로 보내심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이 은혜가 된다는 뜻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사역인 것이다. 즉, 은혜는 우리의 구원이 가능하게 된 전적인 이유이다. 박영선은 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구원방법으로서 우리의 자격이나 조건이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이고 이유이며 노력의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박영선은 은혜를 이해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서 로마서 6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를 더할 수 없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은혜는 죄와 구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며 더욱 확인되는 개념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무런 근거나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인 은혜라는 수단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면, 논리적으로 더 큰 은혜를 사모하기 위해 죄에 거할 수도 있다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점은 우리가 은혜의 진정한 목표를 혼동해서 야기된 물음이기도 하다. 은혜란 우리의 노력이나 근거 없이 공짜로 어떠한 결과를 얻은 방법이 사실이지만 은혜가 더 크게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은혜가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이 방법을 쓰게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서 박영선은 은혜의 목표가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의와 거룩과 진리의 영역으로 옮겨가도록 하기 위함인 것을 설명한다. 이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선물로서의 조건없는 은혜만을 생각한다면, 공짜은혜의 이유를 근거로 하나님의 자동적 은혜에 우리의 반응을 포기하는 질문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영선은 구원을 위한 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의 현실 삶 속에서 은혜의 통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은혜의 진정한 목적에 부합 되다고 말한다. 은혜가 우리를 통치해야 한다. 은혜가 도입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렇게 하기 위해 은혜가 우리를 다스릴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박영선은 우리 신자들의 생애는 은혜가 왕 노릇 하는 삶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은혜가 구원을 가능하게 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신자들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의 삶에 적용되어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은혜가 주어진 궁극적인 목표에 따라 은혜의 은혜 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박영선이 은혜를 이해하는 또 다른 개념은 구원이 우리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임을 나타내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이점이 성경에서 구원의 시점을 설명할 때, ‘창세 전’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 하나님의 의지가 구원의 근거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은혜는 우리를 구원과 구원의 결과에 이르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기 때문에, 죄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 거룩을 조장하는 것이다.

d. 믿음에 대하여

박영선은 신자들이 가장 오해하는 믿음에 대한 태도 중의 하나를 ‘신자들의 선택이나 결정’이라고 한다. 즉, 믿음이 소개되어 질 때, 인간의 선택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께서 이룬 것을 인간 쪽에서 결정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영선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우리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믿음은 우리가 자생적으로 그리고 자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조건이 될 수 없다.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유일한 권위자이신 것을 믿는 점을 말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하나님이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박영선은 인간의 원래적 상태가 믿음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었음을 지적하며, 하나님과의 의식적 관계나 감각이 없이 태어난 인간이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점을 전제하고, 성경의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에 비로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박영선은 성경적 개념에서의 믿음의 개념으로 그 용어의 의미를 결정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공동체의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생생한 경험을 휴먼명조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믿음의 정의를 얘기할 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로마서 1:17의 말씀처럼 믿음을 알려면 복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복음의 진수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보면 믿음이 보인다. 십자가를 보면 구원, 사랑, 은혜 등과 같은 믿음의 내용을 볼 수 있다. 그 십자가 사건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총칭하여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데,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처럼 그 믿음의 주인과 주도권으로서 하나님을 놓쳐서는 않된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righteousness로서 공의의 개념을 가진 justice가 아니라고 한다. 즉, 우리가 모두 심판의 자리에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데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시기로 하고 우리가 그 구원 받을 아뭔 능력과 조건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능력과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정의할 때,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에 참여하는 것,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한 구원의 약속을 ?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박영선이 믿음을 얘기할 때 강조하는 사항은 우선적으로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 내 쪽의 몫을 얘기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복으로 찾아오신 내용이 먼저 실려 있다는 뜻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믿음의 정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반응하고 책임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신 은혜와 긍휼과 능력의 간섭을 믿음이라는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을 푸는 열쇠이고 시작이지만,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이제 예외 없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반응하는데, 이것도 역시 행위적 보상이 아닌 믿음이다. 따라서 박영선은 믿음을 말할 때, 은혜와 마찬가지로 율법의 행위와 대조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며 얘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이 믿음이요, 그 자녀로 부른 자들에게 요구하는 마땅한 반응, 책임, 본질적 성격, 새로운 본능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믿고 안 믿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불러 구원을 베풀어 그의 자녀 만드신 이 백성과 맺는 구원의 관계를 믿음이라는 것이다.

박영선은 믿음의 대표적인 조상이라 하는 아브라함의 분석을 통해 믿음의 주도적 간섭을 아브라함이 아닌 하나님 쪽임을 확인함으로써 믿음이 인간의 반응이나 선택이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이요, 구원의 열심이라 말한다. 따라서 성경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할 때 그를 불러 시작케 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과정을 걷도록 간섭하시고 인도하실 것임을 알고 신뢰하는 것이라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관계로 부르셨고 그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사랑과 신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믿음의 적절한 이해라는 것이다. 박영선은 이 믿음에 대한 정의를 얘기할 때 로마서 1:17이 인용한 하박국서 2장을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언급한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어떠한가, 내 인생이 믿은 자 된 것이 왜 어떠한 차원에서 복이 되는가하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믿음의 부요한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박영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근거로서 그의 인격의 항복을 말함으로 믿음이 일차적으로 능력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은 인격과 성품 앞에서 항복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인격적이고 성품적인 차원에서 믿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요구를 인격과 성품적인 차원에서 요구하여,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촉구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인격적인 성품으로 믿음의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영선이 인격적인 차원에서의 믿음이해는 설명할 때, 종종 하나님과 우리 신자와의 관계설정을 가정에서의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유비를 사용한다. 우리의 가장은 하나님이시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 자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버지와 똑같아야 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본 받도록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더욱 하나님을 알아 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아들의 대열에 참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란 그러한 하나님을 아는 데에서 출발하여, 그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박영선은 믿음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행에 있어 본질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자들이 갖는 믿음의 개념을 성경적인 차원에서의 이해로 바로잡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현실적 믿음이해를 지적한다.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 대부분 신자들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의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믿음을 동원하는 쪽으로 먼저 믿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신분의 차원에서 구원을 믿음의 방법으로 얻었을 때 그 믿음이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원인을 찾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원인이 되어 결과를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현실적인 조건을 해결하는 문제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만들어 낸 그 하나님의 결과를 믿음이라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점이 성경에서 믿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용례인데, 구원을 얻는 방법에 관한 설명을 동의어와 반대어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믿음으로 얻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여기서 믿음과 동의어가 은혜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반대어는 행위이고, 율법이다. 그리고 박영선은 그 믿음과 행위, 은혜와 율법 등의 반대적 개념들을 분별하는 등식으로서 그 반대적 개념을 확인하는 판별시은 ‘자랑’의 개념이라고 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 쪽에서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랑할 수 없고, 믿음으로만 그 구원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e. 구원에 대하여

박영선의 구원론은 종교개혁의 구원론적 이해에서부터 출발되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의의 구원에 이른다는 루터의 구원론이 그의 구원이해의 출발인 것이다. 박영선의 구원이해가 이처럼 종교개혁의 구원론적 전제에서 시작되어 발전된 모델이라고 할 때, 과연 그 믿음으로 구원 얻는 기독교복음의 핵심이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 왔는가를 분석하여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특징을 보인다. 박영선은 구원을 인간 쪽에서의 방법으로 간주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구원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이해야말로 박영선 구원론의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박영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의 총화가 예수 그리스도에서 나타났다고 본다. 구원이란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한국교회는 ‘구원의 확신’의 개념에 혼동되어 구원의 출처가 나의 선택과 받아들임의 여부에 달려 있는 듯 가르쳐왔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과 논리로 보면 내가 믿은 것 같고, 내가 예수 믿기로 작정했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셨고, 붙잡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하나님을 본 다음부터만 있는 것이다. 중생한 다음에야 우리에게 구원의 인식이 있고, 경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하나님이 낳은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자기의 출생을 모르듯 영적인 출생도 본인이 깨닫지 못한다. 그가 자라며 점차로 그의 출생과정을 인식할 수 있듯이 구원의 인식도 그렇게 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주된 특징이요 유일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구원의 역할에 핵심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방법은 사람들의 편에서는 스캔들이지만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의 지혜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말할 때 늘 구원의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요, 십자가 뿐임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은혜라고 말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박영선이 구원의 문제에 대해 강조하는 설명은 주로 우리의 구원의 인식문제와 관련된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성급한 이해에 대해서이다. 이제까지 한국교회의 일각에서 구원의 확신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구원의 인식을 가르쳐왔는데, 박영선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요구 이전에 하나님의 시작의 시점을 바라보는 구원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믿음을 갖고 회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에 따른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최초의 인식이고 최초의 경험이며 또한 우리가 갖고있는 신앙체계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기초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시작의 기초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결과로 생긴 그 구원의 결과로 생긴 첫 감각일 뿐이다. 여기서 박영선은 그의 구원의 인식에 대한 설명을 위해 ‘죽음 사람의 비유’를 든다. 즉, 죽은 시체가 있다면, 그를 살려내지 않고 그에게 모종의 행위를 지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일단 살려낸 다음에 그에게 살아난 것을 인식시키던가, 그에게 무엇을 지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의 인식은 죽은 자가 살아난 다음에 자신의 생명을 인식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구원 이후에 비로소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영선은 이 비유를 통해 구원의 조건이 사람에게 없음을 천명한다. 구원은 시체에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을 얻기 전에는 들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시체에 불과할 뿐인데, 이제 우리가 구원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다.

박영선은 이처럼 구원의 시제를 통해 우리의 구원의 인식을 이해하도록 설명한다. 그 구원시제로서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계획은 이미 창세 전으로부터 있었다. 따라서 박영선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은 완성의 마지막 단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구약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 계획 아래 전 인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보아도 분명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처럼 예수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했을지라도 구원 얻은 사람이 가지는 마땅한 생각과 심정이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있었다. 박영선은 이러한 구원의 인식을 구원의 확실성으로 설명하는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의 경우 8장까지 흔들릴 수 없는 구원의 근거를 충분히 밝히고, 그것에 근거하여 12장부터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의 원리에 대해 가르쳐 준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확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구원의 확실성은 성도들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박영선의 구원이해에 등장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뿌리는 구약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기반 위에서 펼쳐 보이셨던 하나님의 관점을 붙잡고 있는 점이다. 신약의 로마서 등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완성과 성취가 구약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는가를 전제하고 구원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는 구약에서 기록된 이스라엘의 생활과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인 삶의 태도들이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구원에 대한 이해의 첩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박영선은 이스라엘의 구체적 구원의 경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가 이해해야 할 구원의 모델로 소개하는데, 아브라함을 부르심 하나님께서 그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맺은 점이라든가, 족장들의 인생들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과정들, 그리고 출애굽사건과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가나안 입성과 계속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 더 나아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등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 구약에 속한 모든 사건과 역사들은 모두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점으로 모아지고 있으며,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구약의 구원을 향한 계획이 성취되고 집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박영선의 구원이해는 율법주의나 지나친 반율법주의에 의한 영향으로 자유주의에 빠진 태도를 똑같이 비판하는 입장이다. 율법의 행위적 시도에 의해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그 구원만이 진정한 구원의 메시지가 된다는 것이다. 박영선은 한편으로 이처럼 율법주의에 의한 조건에 의한 결과로 이해하는 구원이해를 거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의 은혜의 값진 결과에 대해 만용을 보이는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구원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확실성을 보증해 줄 뿐 아니라 또한 구원에 의한 자기추구와 같은 헛된 시도나 자랑을 할 수 없는 입장을 확보해 준다. 박영선의 이러한 구원이해는 한국교회의 신자들이 구원이후의 현실적 삶을 통해 어떤 방향의 삶을 추구하는가 하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 대한 요구에 대해 반응하는 모습으로서 ‘성화론’의 장인 교회의 이해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이제 그 칭의의 구원론이 야기한 주제인 성화의 교회론을 살펴보겠다.

(4) 성화와 교회의 이해(교회론과 성도의 삶)

박영선의 구원론의 특징이 하나님 편에서의 주도적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약속들에 참여하고 바라보는 우리의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면, 그는 더욱 나아가 2세대 종교개혁자인 스위스의 개혁자 존 칼빈의 구원론 교리의 발전 모델인 신자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됨(communio cum Christo)의 개념을 전제로 구원 이후의 성도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는 성화의 교회론을 체계화하여 성경을 강해하고 있다. 따라서 박영선의 교회론은 신자들의 구원의 인식을 전제로 이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목표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교회는 곧 구원받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성취로 가능하게 된 이 교회는 이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와 진리와 거룩의 성품을 이루기 위해 더욱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데 목적을 둔다 하겠다.

박영선은 교회의 존재이유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교회의 역사도 하나님의 창조계획의 일부로서 반드시 창조의 목적과 더불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실행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즉, 모든 우주적 피조 세계와 만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다 그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일을 수행하는 결정적 주체자가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 예수의 사역의 완성결과에 따라 새롭게 불러모아진 우리 신자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기 위해 교회로 모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성도들의 그 온전한 모습에 이르는 과정 동안 그 궁극적인 목표지점까지의 인격적인 성숙을 위해 마련한 성화의 장인 셈이다. 온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에 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교회를 신자들이 성화의 과정을 수행하도록 이 땅에 허락하신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서 하나님백성들의 공동체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일차적으로 요구하시는 대상은 당신께서 불러모은 당신의 자녀들, 백성들, 교회의 공동체에 속한 신자들 개개인들이며, 그들이 더욱 신앙 안에서 성숙된 자리에 서도록 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 신자들 자신들에게 있음을 역설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궁극적인 목표와 대상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영광, 곧 우리의 온전함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 신자들이고, 우리의 인격적 성숙이다. 이것이 신자들의 구원 이후의 삶의 과정 속에서 수행되도록 교회를 허락하셨다.

그러면 먼저 박영선의 교회론에서 가장 핵심 되는 개념인 성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박영선은 성화를 신자들이 신자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신자다운 삶을 요구한다. 신자들은 이미 죄에 대해 죽은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산 자가 되었으니 이것을 근거로 성화가 열매맺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성화의 개념을 종교적 형태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우려한다. 성화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신앙적 형태의 행위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봉사나 열심이나 전도나 선교나 금식기도나 선행 등은 그 자체가 성화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구원과 마찬가지로 성화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의 근거로서 율법의 요구나 행위의 인과론적 방법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은혜의 법칙으로 하나님께 의존적인 태도로 우리의 행실을 강조하지 않아야 한다. 성화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면서 우리에게 또한 요구하신다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도록 우리를 권면하시며 분발시키시며 필요하다면 매를 들어서까지 우리의 성화를 간섭하셔서 완수하시겠다는 표현이다. 우리가 성화에 성공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성화를 은혜에 맡긴다는 것은 구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제 성도들의 삶을 죄가 왕노릇 하지 못하고 은혜가 왕노릇 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박영선은 은혜에 의존하여 성화를 이룬다는 뜻이 신자들의 삶을 그냥 기도해서 주님께 맡겨버리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들을 지적한다. 그러나 박영선은 이에 대한 오해를 해결하는 대안으로서 성경이 성화를 촉구하는 이유와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 신자들의 존재가 누구냐는 것이다. 우리가 결국 어디로 가야할 사람들인가? 박영선은 이에 대해 성경이 우리에게 신자다워지며 결국 주 앞에 가서 서야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그래서 주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성경이 성화를 촉구하는 동기인 것이다. 신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새사람을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는 게 요구된다.

박영선은 성화를 위해 은혜를 추구하라고 말하면서도 성화는 구원과 달리 이미 구원이 확인된 신자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선물로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성화는 기도로도 받을 수 없다. 즉,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하고, 그것을 우리의 실제생활에 적용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인격적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성화는 훈련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화는 헌금 내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그 모습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박영선의 성화에 대한 가르침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적은 성화의 영역이 신자의 구체적 현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성화는 기도원에서는 무용하다. 성화는 종교적 형태를 띠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화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자연적인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삶의 원리에 따라 선택하는 그런 모습이고, 그런 차원에서 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박영선은 성화의 과정을 훈련할 것을 권면하면서 바울의 성화에 대한 자세를 소개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2) 이 성화를 위한 싸움은 우리가 주님께 대신 맡길 수 없는 싸움이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고, 우리의 권리이다. 우리가 신자된 그 고귀한 신분과 위치를 구걸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박영선은 이처럼 성화의 삶은 신자들 각자가 노력하고 애써서 이루어야 할 일로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기도함으로써 성화 되지 않는다. 구원은 선물로 받지만, 성화는 선물로 받지 않는다. 성화는 훈련되어지는 신자들의 신앙인격적 성숙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이 세상의 현실을 살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원리를 좇아 사는 것이 인격적인 성숙의 모습이다. 박영선은 신자들의 신앙인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한 신자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죄 가운데서 구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하나님이 그 신자를 향하여 갖는 궁극적인 목표는 그의 신앙인격이다. 그의 전인적인 거룩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영광으로서 완성적인 인격이다. 여러분은 이 신앙인격이 변해야 한다. 겸손하며, 온유하며, 자비하며, 인자하며, 정직하며, 인내하는 그런 인격을 가져야 한다. 예의가 있고, 남을 시기하지 않으며, 교만치 않는 등의 인격은 변하지 않고 교회나 개인이나 전도나 헌금이나 철야기도 등의 종교적 행위들을 강조하는 것은 성화를 위한 신앙생활이라고 볼 수 없다.

박영선은 성화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라 하였다.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추구하며 우리의 자기주장을 펼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영선은 신자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게 힘든 일임을 인정한다. 여기서 박영선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거룩한 삶의 원리를 함께 나누는 장으로서, 다시 말해 성화의 장으로서 교회를 강조한다. 이는 종교개혁시대에 개혁자들에 의해 확인된 교회의 세 표식 중의 하나인 거룩성의 나눔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는 신자들의 거룩을 함께 나눠야 하고, 거룩을 향한 성화의 과정을 함께 배우는 곳이다. 교회는 이점에서 거룩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이다. 이점은 교회의 조직과 관리적인 면에서도 정결한 모습을 유지해야 함을 포함한다.

교회는 그 본질과 속성상 성화에 참여된 성도들의 삶의 훈련을 위해 함께 모인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이다. 이점에서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와도 같다 하겠다. 박영선은 교회가 신자들을 훈련하는 원리로서 하나됨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됨을 지킨다는 것은 동일한 신앙고백의 토대를 지킨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함께, 그가 우리를 동일한 조건에서 불러낸 것과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고 용납하시며 동일한 목적지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하나됨의 원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교제와 관계를 통해서 보여지는 것이다. 이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스스로 증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관계는 섬김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이 세상의 질서인 약육강식의 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질서인 섬김과 희생과 사랑의 원리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해야 하는 것이다.

박영선은 교회의 이 공동체적 삶의 원리가 우리 신자들의 존재방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으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를 받아주고 품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본받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우리의 완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허락하신 교회라는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자로서의 존재방식은 이렇게 교회공동체로 모여 함께 지어져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기 때문이다. 함께 연합된 이 비밀스러운 관계 속에서 신자들의 존재론적 운명이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연합된 지체들로서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인격을 위해 훈련하며 서로의 종말론적 가치와 존재를 나누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가고야 말 그 영광된 장소를 향하여 오늘의 교회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박영선의 교회론은 사실 매우 실제적이고 실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교회가 유지해야할 원리를 제시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실제적인 예증을 들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 실제적 기준은 한국적 상황에서 더욱 맞아떨어진다. 예컨대, 교회는 거룩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회는 많은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그 거룩을 향한 과정으로의 용납과 관용과 사랑의 기다림이 함께 나눠져야 한다. 교회는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기회를 주어서 신자들 자신이 커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는 교회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 현실 교회들에 대한 각성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많은 한국교회가 교회성장을 위해 교인들의 신앙인격과 성화의 수준을 위한 책임을 소홀히 한다던가, 교회의 거룩성을 근거로 신자들의 실수와 실패가 용납되지 못한다던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점에서 박영선은 교회의 책임을 각성하는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교회는 가정의 모델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교회는 학교나 훈련소가 아니다. 비록 교회가 신앙적인 인격과 삶을 위해 여러 가지의 시행착오를 용납하며 훈련을 담당하고 있을지라도, 교회는 궁극적으로 가정과 같은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7. 결론
 

본 논문의 목적은 박영선의 강해 설교와 남포교회 성장과의 독특한 관계를 분석하여 박영선의 강해 설교와 목회철학이 한국교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위치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 1부의 박영선의 목회에서는 남포교회 성장의 분석과 함께 박영선의 목회철학을 규명하고자 했다. 제 1장에서 살펴본 대로 박영선의 남포교회 설립 이전까지의 목회준비기간은 그의 한국교회에 대한
역동적인 이해를 갖출만한 한국의 사회적, 종교적 경험에 의해 인도되었으며, 1980년대 변화 속의 한국에서 그가 준비한 말씀이 한국교계에 소개되었을 때 설득력 있는 설교가로 인정받게 된 점을 알아보았다. 제 2장에서는 남포교회가 설립된 지 15년이 지난 1999년 말 현재까지 남포교회의 성장과정을 다각도에서 살펴봤는데, 남포교회의 성장이 거대한 것이어서 놀랄 뿐 아니라 그 성장의 요인이 주로 박영선 개인의 영향력 있는 강해 설교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에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박영선을 말하지 않고 남포교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제 3장에서는 남포교회의 목회를 통해 드러난 박영선의 목회적 특징을 살펴봄으로 한국교회 내에서 그의 목회적 의의가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지적할 수 있게 되었다. 제 4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남포교회 목회가 한국교회에 대해 끼친 기여는 유교적 이상주의가 병합된 열심동기의 계급적 기독교 복음과 교회이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시도했다는 데에 있다 하겠다.

제 2부의 박영선의 강해 설교는 제 1부에서 살펴본 남포교회 목회의 내용과 관련하여, 박영선이 성경을 강해하는 특징과 패턴을 살펴 본 것이다. 제 5장은 박영선의 연속 강해 설교가 남포교회의 설립 이래로 쉼 없이 계속 되었던 과정을 소개하면서 그의 강해 설교에 대한 열정과 한국교회에서의 말씀의 실제적인 적용을 소개한 기여를 살펴보았다. 제 6장에서는 그의 강해 설교를 분석하여 그가 이해하고 있는 기독교신학적 주제요, 기독교복음의 이해패턴인 하나님과 인간, 칭의의 구원론과 성화의 교회론 등을 살핌으로써, 그의 신학적 체계의 견고하고 건전한 이해와 전제가 풍요한 말씀의 잔치를 가능하게 했고 남포교회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 아니라, 또한 한국교회에 기독교복음의 이해와 적용의 새로운 패턴과 내용을 제시하는 공헌을 하기까지 했다.

사실 박영선과 남포교회는 일반적인 한국교회의 시각에서 볼 때, 너무 앞서 소개된 기독교복음이해의 현상처럼 여겨진다. 제 6장에서 분석한대로 개신교의 전통적이며 개혁적인 박영선의 구원론과 교회론이 한국교회의 문화적 토착기준을 자극하고 도전하는 메시지의 열매는 앞으로도 한 세대쯤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기간 동안에 박영선과 남포교회는 이제까지의 묵묵한 행보대로 기독교복음에의 헌신과 섬김을 경주함으로써, 다음세대의 한국교회의 건강한 패턴을 선도하는 다양한 책임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1. 박영선의 연표
 
1948년 11월 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박근식과 백연옥 사이의 3남 2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다.
1951년 1월, 한국전쟁 당시 가족들을 따라 서울로 월남하다.
 
1955년 3월, 서울 남대문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61년 2월 졸업하다.
1961년 3월, 서울 중학교에 입학하여 1964년 2월에 졸업하다.
1964년 3월,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69년 2월에 졸업하다.
1969년 3월,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여 1976년 2월에 졸업하다.
1969년 5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1971년 2월에 제대하다.
1972년 12월,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받다.
1975년 2월, YOUTH FOR CHRIST (YFC) 간사를 맡다.
1976년 3월, 총신대학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 (M. Div.)에 입학하여, 1979년 2월 졸업하다.
1976년 4월, 서울 마장동교회 고등부 지도 전도사로 부임하다.
1976년 4월, 장순애와 결혼하다.
1977년 1월, 서울 회현동 소재 성도교회 고등부 지도 전도사로 부임하다.
1978년 12월, 동 교회의 대학부 지도 전도사로 부임하다.
1979년 3월, 총회신학대학원 신학석사 (Th. M.)과정에 입학, 수료하다.
1980년 3월, 서울 후암장로교회 대학부 지도 전도사로 부임하다.
1980년 12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동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다.
1982년 1월, 미국 버지니아 리버티뱁티스트신학대학교에 기독교교육학 (MA)로 유학하다.
1982년 9월, 서울 신반포 소재의 남서울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다.
1983년 7월, 남서울교회의 담임목사 홍정길 목사의 안식년으로 임시담임목사 겸 설교자가 되다.
1983년 9월, 이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과 목회학을 강의해오고 있다.
1984년 8월, 최초의 설교집으로 하나님의 설복이 출간되고, 계속하여 구원 그 이후 등을 비롯 70여권의 저서가 출간되다.
1985년 1월, 서울 강남 개포동에서 남포교회를 설립하여 담임목사로 부임하다.
1993년 5월, 미국 버지니아 리버티뱁티스트 신학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다.
1994년 3월, 이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개혁주의 성경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1997년 1월, 이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선천성안면기형 어린이 돕기 재단 동그라미의 이사장을 역임해오고 있다.
 
2. 남포교회의 연혁
 
1985년 1월 6일, 박영선 목사를 모시고 300명의 성도가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상가 업무지역 3-6 삼우빌딩 지하 1호(80평), 2호(30평)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남포교회 창립예배를 드리다.
1985년 3월 31일, 85년도 남포교회 제직(장로2, 권사3, 안수집사3, 서리집사 남 38, 여 79명)을 임명하다.
1985년 12월 5일, 대한 예수교 장로회(개혁) 동서울노회에 가입하다.
1987년 2월 25일, 예배 장소로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본동 85. 85-1 아시아선수촌상가 A-201호(431.7평)을 분양받다.
1987년 4월 19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상가 A동 201호로 예배장소를 이전하고 입당 예배를 드리다.
1987년 12월 6일, 계훈교 외 4명 장로 장립. 김동건 외 11명 집사 장립. 김수련 외 7명 권사 취임을 하다.
1989년 3월 5일, 남포교회 부설 교재편찬실을 설립하다.
1989년 9월 24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상가 A동 201호 예배당 헌당 예배 드리다.
1989년 11월 26일, 이강호 외 2명 장로 장립. 강충웅 외 9명 집사 장립을 하다.
1991년 11월 24일, 김동건 외 4명 장로 장립. 강인웅 외 16명 집사 장립. 고보화 외 9명 권사 취임하다.
1992년 3월 1일, 신복윤 목사 본 교회 명예 원로목사로 모시다.
1994년 12월 18일, 김희태 외 3명 장로 장립. 권태진 외 23명 집사 장립하다.
1997년 11월 30일, 송문섭 외 5명 장로 장립. 강응철 외 22명 집사 장립. 고경중 외 26명 권사 취임하다.
2000년 1월 9일, 창립 15주년 기념예배 및 행사를 거행하다.
 
3. 박영선의 저서
 
1. 주제별 설교집 및 단행본
 
1) 박영선, 기독청소년교육 (서울, 성도출판사, 1982).
2) 박영선, 구원 그 이후 (서울, 새순출판사, 1984).
3) 박영선, 하나님의 설복 (서울, 크리스챤서적, 1984).
4) 박영선, 하나님의 열심 (서울, 새순출판사, 1985).
5) 박영선, 성령론 (서울, 크리스챤서적, 1986).
6) 박영선, 기도 (서울, 새순출판사, 1986).
7) 박영선, 성화에의 길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8).
8) 박영선, 교회란 무엇인가?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8).
9) 박영선, 내 발걸음을 지키소서(절기설교) (서울, 새순출판사, 1988).
12) 박영선, 더 깊은 신앙으로 가는 길 (서울, 새순출판사, 1989).
11) 박영선, 하나님 나라의 이해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9).
12) 박영선, 영화에의 길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1).
13) 박영선, 구원 그 즉각성과 점진성 (서울, 새순출판사, 1992).
14) 박영선, 평신도를 위한 신학입문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2).
15) 박영선, 신자의 가정생활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3).
16) 박영선, 제자훈련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5).
17) 박영선, 독설 (서울, 규장출판사, 1998).
18) 박영선, 예화와 묵상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9).
19) 박영선, 예화와 묵상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9).
20) 박영선, 설교자의 열심 (서울, 규장출판사, 1999).
 
 
2. 강해 설교집
 
1) 요한복음 강해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6).
2) 요한복음 강해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7).
3) 요한복음 강해 3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8).
4) 요한복음 강해 4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8).
5) 요한복음 강해 5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0).
6) 요한복음 강해 6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0).
7) 사도행전 강해 1 / 초대교회 사람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89).
8) 사도행전 강해 2 / 예수의 증인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0).
9) 사도행전 강해 3 / 흩어진 증인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0).
12) 사도행전 강해 4 / 복음의 증인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1).
11) 사도행전 강해 5 / 고난받는 증인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2).
12) 사도행전 강해 6 / 세상속의 증인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2).
13) 에베소서 강해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 1 (서울, 새순출판사, 1991).
14) 에베소서 강해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 2 (서울, 새순출판사, 1990).
15) 에베소서 강해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 3 (서울, 새순출판사, 1990).
16) 에베소서 강해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 4 (서울, 새순출판사, 1992).
17) 에베소서 강해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 5 (서울, 새순출판사, 1993).
18) 에베소서 강해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 6 (서울, 새순출판사, 1995).
19) 고린도전서 강해 1 / 고린도교회와 성도들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3).
20) 고린도전서 강해 2 / 도전받는 고린도교회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4).
21) 고린도전서 강해 3 / 고린도교회, 자유와 절제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5).
22) 고린도전서 강해 4 / 고린도교회와 은사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5).
23) 로마서 강해 1 / 구원의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3).
24) 로마서 강해 2 / 은혜와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4).
25) 로마서 강해 3 / 의와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5).
26) 로마서 강해 4 / 양자의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근간).
27) 로마서 강해 5 / 부르심의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6).
28) 로마서 강해 6 / 회복될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근간).
29) 로마서 강해 7 / 신자와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근간).
30) 로마서 강해 8 / 강한 자의 영광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7).
31) 히브리서 강해 1 (서울, 엠마오출판사, 근간).
32) 히브리서 강해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9).
33) 신명기 강해 1 (서울, 엠마오출판사, 근간).
 
 
3. 성경공부 교재
 
1) 구원론 1 (서울, 크리스챤서적, 1990).
2) 구원론 2 (서울, 크리스챤서적, 1992).
3) 교회론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1).
4) 교회론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2).
5) 성화론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2).
6) 성화론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3).
7) 신자의 가정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3).
8) 구약의 인물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4).
9) 구약의 인물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4).
12) 성령론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5).
11) 제자훈련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5).
12) 제자훈련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6).
13) 제자훈련 3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6).
14) 새가족 공부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6).
15) 은사와 사랑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7).
16) 영적전투 1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7).
17) 영적전투 2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8).
18) 기도 (서울, 엠마오출판사, 1998).
19) 신앙클리닉 (서울, 규장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