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이 성 복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 때 아버지가 우겨서
딴 이름의 학교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친구들 보기 창피하다고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던 학교 들어가 처음 교복 입고
노란 교표 달린 모자 쓰고 찍은 내 사진을
아버지는 늘 지갑 속에 넣고 다니셨습니다
점심 값 아끼느라 호떡이나 인절미 사 먹고
그 먼 퇴근길 버스도 안 타고 걸어오시던
아버지는 그토록 내가 자랑스러웠나 봅니다.
시험 잘 보고 와도 칭찬 한번 안 하던 아버지,
뭘 좀 잘못하면 눈만 흘기시던 아버지,
정말 내가 잘못한 날에는 자기 종아리 걷고
혁대 풀어, 나보고 때리라고 하였습니다
언제까지 아버지가 지갑 속에 내 사진을
넣고 다니셨는지 모르지만, 올여름이면
아버지 돌아가신 지 십 년, 지금 내 지갑 속엔
이십 년도 더 된 아이들 사진이 있습니다
어느 봄날 아파트 공터에서 첫째는 동생 목을 감고
둘째는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녀석들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고
취직도 안 하고 빈둥거리지만, 지갑 속에서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깔깔거리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지갑 속 그 아이들을 바라보듯이,
육십 년대 후반 회사 그만두고 쉬는 동안
아버지는 이따금 내 사진을 들여다보셨겠지요
빳빳한 교복 컬러에 턱을 묻은 그 아이가
언젠가 그의 가난과 실직과 시들한 살림살이를
하루아침에 바꿔주길 바라셨겠지요
평생 울컥, 화내는 취미밖에 없었던 아버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경로당 두루마리 휴지를
한 움큼 뜯어 오다 창피당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유리문 너머 아버지 입관하실 때도,
영정사진 앞세우고 산을 오를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독한 아들이었습니다

(동아일보 2013. 2. 6자 수록)

이재철 집사가 교우 여러분께 한 번 읽어 보시라고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