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믿음의 본질은 어떤 관념이나 이상, 신념, 사상, 개념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격적 성품, 존재적 본질의 성장, 변화, 성숙이다.
곧 예수의 인격을 믿고 따름을 통해서 이루어 가는 우리의 사람됨의, 우리의 인격적 성품의,
우리의 존재적 본질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라 믿는다.

우리가 주 예수를 따라 이루어 가는 구원이란 곧 우리의 존재적 본질, 인격적 성품의 변화와 성숙이며,
이것은 어떤 별도의 수련이나 수행같은 어떤 특정 행위 지식 깨우침, 이해를 통하여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단지 해박한 성경적 지식, 단지 어떤 신학적 깨달음, 단지 어떤 충성스런
의식이나 행위, 업적들 만으로 이루어 지는 그런 류가 아니다.
단지 성경이나 설교 말씀에 대한 암기, 인용, 이해를 통해서 만으로도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각자가 처한 일상, 각자의 인생 속에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이러한 인격적 성품적 본질적 변화는 어떤 특별하고 크고 위대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보잘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삶 속에서이다. 즉, 지지고 볶는 작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서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존재적 인격적 자세의 어떠함, 우리 인간됨의
어떠함을 통하여 성숙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라 믿는다.

예수께서는 나를 좇으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성경이 일관되게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은 사실 인간의 자연스럽고
생래적인 본성을 완전히 거슬리는 길이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라는 본성을 지닌 인간이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의 이기심 애착 욕망을
죽인다는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고 낯설고 서투르다.
이론적으로나 머릿속 생각만으로는 어렵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막상 실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기란 너무나 어려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길이 어렵고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포기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진정한 영광과 멋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한번 성령을 생명을 진리와 영광을 맛 본 사람이라면 그 길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길 만이 유일한 진리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 상에, 이 우주 상에 예수가 가신
그 길 외에는 인간을 생명 진리 영광으로 인도하는 길은 없음을 세월을 더 살수록 실감한다.

예수가 걸어가신 그 길은 결국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자아를 부인하고 신과 타인을 섬기기를
죽기까지 하는 그 길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 길 외에는 달리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없음을..
예수께서는 과감히 선포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그가 가신 그 길.. 자신에게 닥친 모든 고난과 억울함과 죽음과 절망의 상황을
묵묵히 고스란히 참아내고 감수하며 관용하고 용서하고 품어낸 그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이 예수의 분명한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의 이기심과 자존심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그래서 쉽게 포기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적어도 삶의 목표와 방향을 그 십자가의 도에 두고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어차피 도달하지 못한다고 포기한다면 그만큼 영광을 누리지 못할 뿐이다.
쓰러지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계속 간다면 가는 그만큼 영광을 누리리라..
창조주께서는 인간에게 완벽함보다는 바로 이렇게 칠전팔기를 더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또한 우리는 주 예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감에 있어서 삶이 순탄하고 잘 풀릴 때 보다는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더욱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참된 힘은 순탄할 때가 아니라 역경과 고난의 때에 제대로 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의 가치가 확연히 드러나듯이..

고통과 억울함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그리스도의 인내와 관용이 우리에게 요청 되겠으며,
아무 불의 불공평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주의 온유와 겸손이 우리에게 요구 되겠으며,

모욕과 무시함과 잘못과 손해가 없는 때에 우리에게 무슨 주의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 요청되겠는가..
오히려 그 때가 바로 주의 인내 주의 온유와 겸손 그 말없이 감수하심과 그 한없는 관용과 용서가
요청되는 때이며, 바로 그 때가 곧 창조주께서 베푸시는 인간된 참 영광을 제대로 누리는 때가 아니랴..

인간의 참된 영광과 평안과 축복과 은혜는 바로 인간이 살며 겪어내는 모든 고통 속에서
자아를 낮추고 버리며 죽이는 속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예수께서 그리 하셨듯이..
모든 고통에 대한, 원인도 모르고 이해도 안되는 모든 고난에 대한 말없는 감수, 인내, 포용
바로 그 자체야말로 창조주께서 인간에게만 부여하시는 위대한 영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