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능력, 영광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를 명쾌하게 일깨워 주는 목사님의 용기있는 설교에, 세상적 권력과 물질적 파워의 위헙과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는 설교에 참 감사합니다.

지금 세상은 어느 곳을 들여다 보아도 온통 돈이 최고이고 물질적 능력과 세상적 권력과 즐거움이
최고의 가치로 추구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세상적 가치에 넘어가지 않는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복이요 행운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곧 십자가 처형으로 죽게 되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인자가 곧 영광을 얻을 때가 왔으니..” (요12:23) 라는 전혀 뜻밖의 말씀을 히셨습니다.
그는 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의아한 말씀도 했습니다.

자신이 장차 당하게 될 죽음에 대하여, 그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그걸 가지고 <영광을 얻는다>고 말씀 하시다니요..
천지를 지으신 생명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그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다니요..
선뜻 공감이 가지가 않습니다.

뭐, 예수님의 말씀이니까, 참이요 진리라고 억지로라도 받아들이고,
여러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믿어 지는데까지는 옵니다만,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내게 닥치는 세상의 부당한 오해와 무시함, 억울한 모함과 고통에 대하여
예수님을 좇아서 내가 묵묵히 참고 용서하며 감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거 같습니다.
아니 한편으로는 손해와 자존심 상함, 불공평함, 억울함 등을 감수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상에서는 바보 멍청이가 되는거 같아서 내심 거부하고 있는 면이 큽니다.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수의 모습은,
모욕과 오해와 억울함과 고통 앞에서 아무런 말씀도 없이 고스란히 다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한없이 무력한 자요, 제대로 항변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 예수께서는 자신의 그 나약하고 힘없는 모습, 그 모든 고통과 억울함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참아내며 자신을 그렇게 몰고간 주위 모든 사람들을 용납하고 용서히시며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그 바보같고 얼간이 같은 삶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를 어떡하겠습니까..
신자에게는 예수가 가신 이 고통과 억울함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그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는게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신자란 바로 그렇게 세상의 눈으로는 분명히 무력한 자요, 억울함을 항변도 못하고 풀지도 못하고
힘없이 죽어간 바로 그 바보같기만 한 예수를 따르기로 하는 사람밉니다.
그렇게 사신 예수가 곧 길이요 진리요 영광이라고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