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광복절

이 재 철

집사람은 그저께부터 국기를 걸겠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묻진 않았지만
아파트에서 국기 거는 일이 낯설어진 세상이라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광복절 아침은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
집사람은 몇 번을 망설이다
8시쯤 국기를 걸었습니다.

바람이 계속 거세지자 집사람의 걱정도 계속됩니다.
“국기가 떨어져서 지나가던 사람 다치면 어쩌나”
“걱정마, 떨어져도 낙하산처럼 떨어질거야”

저는 집사람의 생각을 헤아립니다.
사실은 행인보다 국기를 더 걱정하는 거죠.

광복절 아침 9시에 개업예배를 드리는
가락시장 과일가게에 다녀온 11시쯤
집에는 아무도 없고
태극기만 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깃대는 정말 탄탄하게 줄로 묶인 채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런던 하늘에서도
독도의 바위 끝 위에서도
내 눈시울을 적시던 그 태극기가
오늘은 20층 우리 집 베란다에서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2012.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