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초 스페인으로 이민 와서 젤 그리웠던 것이 있었다면 쌀 뻥튀기였다.

그 향수가 못 견디게 그리워서 모국 방문할 때마다 뻥튀기를 한 자루 튀겨놓고 배가 남산만하게

부풀어 올라와도 실컷 먹다가 “스페인 집에 갈 때는 한 자루 꼭 튀겨가야지!” 올 때쯤 되면

짐이 오버되어 못 가져오고 또 뻥튀기 향수에 젖어 들고,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정말로

뻥튀기 한 가방을 들고 오고 난 후에야 그 뻥튀기 향수가 싹~가셔졌다.

참으로 신기했다.

중세 인도의 명상 시인 까비르(Kabir)는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말라 한다”라고 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목말라 한다. 나는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하게 목말라 갈증을 느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구에 목말라 했고, 하나님 말씀에 목말라 했었다.

나는, 참으로 오랫동안 정에 목말라했었다.

그 시절에는 스페인-한국의 거리가 왕래도 자주할 수 없는 머나먼 거리였고,

지금처럼 맘대로 전화통화도 화상통화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이민생활 향수가 몹시도

그리웠고 이곳 이민생활에서 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언니처럼, 교회 사모님은 엄마처럼 계산 없이 사랑을 했고, 정과 사랑을 듬뿍 준 만큼

깨여지는 아픔과 상처도 그만큼 깊고 컸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해외 이민자로 살다 보니 한국에서의 진실한 친구가 없었고, 나에게는 한국의 진실한

친구가 필요했고 서울에서 사는 친구가 꼭 필요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만났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했고, 친구의 갈증을 해소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렀다.

뻥튀기를 튀겨와서야 그 향수가 멈추었던 것처럼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진정한 우정을

만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이 넓은 세상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기란 요즘 세상에 어찌 보면 Everest 정상을 오를 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오랜 세월이 걸려서 결국에는 찾았고, 마지막 서울 영이 친구를 만남으로 그 갈증을 해소할 수가 있었다.

나는 순복음이다.                      

처음 예수를 믿었던 곳도 Las Palmas 순복음이고, 순복음에서 영의 양식을 먹고 자랐기에

지금도 나는 Las Palmas 순복음교회가 나의 모교다.

(순복음을 깔아 뭉개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나의 갈증의 고백을 쓰고자 함임을

염두에 둡니다. 그러기에 이 글을 읽으시고 교파비판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해외인데도 일주일이면 예배를 열 한번씩 드리고, (새벽기도, 정규예배)그 열 한번을 다 참석을 하는데도

나는 언젠가부터 항상 말씀에 목말라했었다.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내 이 갈증을 해소해 주질 못 했고, 인터넷을 통하여 유명하다는

설교 말씀을 들었지만, 처음 들을 때는 싼박하고 달콤하고 맛이 있는 것 같았으나 금방 실증이 날뿐더러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은 더 깊어지듯 목마름의 갈증은 해소되지가 않고 더 깊어만 갔다.

2006년 가을 자녀들과 함께 Paris 여행 중에 자녀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신앙의 뿌리는 참 잘 되여 있는데 성경말씀에 깊이가 많이 부족 하시니 말씀 공부를 하시면 어떠세요?”

“엄마가 말씀을 배우려면 한국어로 밖엔 방법이 없는데…”

“그럼 한국으로 가세요. 지금 시간도 많고 이 참에 한국으로 가셔서 전적으로 공부를 하세요.”

자신들이 영국으로 와서 말씀을 똑 바로 깊이 있게 배우고 보니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꼭 배워야 하는 것이 말씀이라면서 그 것을 절실히 깨 달았다고 하면서 일거일거 엄마를 교육? 하기에

들어갔다.

적어도 초창기 시절 순복음 신앙은 절대순종이다.

아니 어찌 보면 절대복종이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던 무지였던 신앙에서 오직 성령충만! 기도기도! 전도전도! 교회충성! 귀신귀신!

아픈 것도 귀신! 병든 것도 귀신! 십일조를 해야만이 복을 받는다! 목사를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

참으로 말씀에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나 또한 그 동안 믿으면서 오직 예수!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 봉사는 하늘에 상금! 그 것만

외치고 살았다.

세월이 가면서 이게 다는 아닌데…오직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죽지는 않았을 건데…

하면서 의문이 생겼고 그래서 말씀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6-70년대 우리나라가 가난했고,

그 시절에는 복음을 그렇게 밖에는 전파할 수밖에 없었고, 무속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을 복 받고 잘 살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했던 일들은 위대한 일이지만, 지금은 성경을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면서

아이들은 또 구구절절 설교하기 시작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가 말씀을 배우고 오셔서 교만하시면 안돼요.

어쩌면 말씀을 배우고 나면 Las Palmas에서 예배 드리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말씀을 헛배우신 거에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고 좋은 충고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받을 충고는 받아야지”

나는 마음이 들떠서 남편, 자녀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 행 Ticket을 샀고 순복음에서 성령충만을 받았으니

장로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싶었다.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이때는 이곳밖에 몰랐다.) 손꼽힌 사랑의 교회에서 말씀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지 마세요! 이곳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보세요!”

“그게 안되기 때문에 갈려고 합니다.”

“그래도 가지 마세요!”

“왜요?”

“무조건 가지 마세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배우고 오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도 염려를 했고, 그 문제는 충분히 들었기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가지 마세요!”

“그렇다면 여적 저를 봐 오신 목사님도 저를 그럴 사람으로 보십니까?”

“네! 집사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인생이란 거친 풍랑을 헤치고 나가는 돛단배와 같고 풍랑의 파도를 잘 읽는 자가 현명하고

어려운 고비가 찾아 올 때 그 고비를 어떻게 슬기롭게 잘 넘기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황당한 그 말씀에 내 온 몸이 굳어버렸고,

“네! 집사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네! 집사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입니다!”만 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정히 그러시다면 사랑의 교회는 가지 마시고 순복음교회로 가세요.”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나, 나는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슬기롭게 그 장면을 넘기지 못 하고,

“목사님의 말씀은 반 토막이라서 반도 알아 듣지 못 해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다 그래요!”

그 말을 내 뱉고 획! 뒤돌아 서고 말았다.

“목사를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 꼭 이 말씀 때문이 아니고, 여적 신앙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목사님 말씀에 거역해 본적도 없었고 불순종해 본적도 없었다.

말씀에 갈급했고 갈급하여 말씀을 찾았지만, 나의 신앙을 두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이때, 그 동안 나의 열정이, 내 신앙 관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이미 사 버린 비행기표를 들고 한국으로 향했으나, 사랑의 교회와 여의도 순복음교회 두 곳 성경대학에

등록만 하고 책만 잔뜩 사 들고 6개월만 에 다시 Las Palmas 순복음교회로 돌아오고 말았다.

긴 세월을 나는 말 없이 내 자리를 지켰고, 그 때 그 일을 목사님께서도 미안해 하셨지만,

나의 갈증과 갈급함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1년 이란 세월이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귀와 눈이 번쩍 트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목말라했던 말씀을 발견한 것이다.

남포교회 박영선목사님, 그토록 갈급하게 목말라 찾았던 말씀! 그토록 배우고 싶었고 알고 싶었던 말씀들…

이것은 나의 영원을 뒤 흔드는 사건이었고 내 온 몸과 마음을 뒤 흔드는 사건이었다.

아니 무어라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엄청난 말씀들이 숨겨져 있었다.

마치 사막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았다.

이 많은 말씀들, 무엇부터 어떻게 들어야 할지… 아이들이 요한복음부터 들으라고 가르쳐주었고,

성경전체의 핵심은 요한복음이라고, 요한복음 1장부터 듣기 시작을 하면서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요한복음151개의 말씀 파일들을 밤 낮으로 들었다. mp3을 끓어 않고 다니면서 들었다.

아, 바싹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린들 이보다 더할 수가 있을까?

퇴근해서 들어오지도 않은 남편 밥상 차려놓고 나 혼자서 열심히 “믿쓉니다!” 하며

교회로 향했던 지난 날 나의 믿음에서 가슴이 미어지게 아파옴을 느끼며 남편에게 젤 미안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다 주를 위하여 하는 것들이기에 받아 주셨다는 대목에서는 위로를 받으면서도

온 몸과 머리끝이 삐쭉삐쭉 섰다.

내가 무엇을 크게 이루는 것만이 큰 믿음이 아니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믿음이라고 하신

그 말씀 속에서 보잘것없는 나 같은 존재도 사용하신 다는 것에서 뜨거웠다.

이 정도로 표현한다는 것은 너무나 약하다. 내 이 감정을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다.

요한복음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창세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베소서, 고린도서를 듣고 나서야 나의 답답함이 속 시원하게 풀어지기 시작을 했다.

이제야 막힌 숨통이 탁! 트인 것 같다.

말씀의 갈증이 해소되기 전에는 그렇게도 답답했던 말씀들이 배우고 났더니 시원하다.

이 이상 더 표현할 수가 없다.

꼭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검색 창에서 남포교회 박영선목사님만 처도 나온다.

20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의 말씀들이 다 녹음이 되어있다. 모든 파일들이 거의 다 살아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조금만 유명? 하신 목사님 말씀들은 돈 주고 사야만이 들을 수가 있지만,

박영선 목사님의 주옥 같은 말씀들은 모두다 그냥 들을 수 있게 되여 있다는 그 사실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그 동안 아이들이 여러 번 했던 말씀들과 일치를 했다. 아니, 아이들과 말씀으로 깊은 대화가 통해서

너무나 좋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크리스천의 삶인지 이제는 어렵사리 조금 알 것 같다.

갈증, 갈급함….

나의 두 가지의 갈증은 이제 다 풀어진 셈이다.

꼭 어느 교단이 잘 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시고 각 교단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순복음에서 성령충만을 받았으니 말씀은 장로교회에서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네! 집사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이 한마디가 나에게는 엄청난 보약이 되였다.

이 말씀이 있었기에 나는 견딜 수가 있었고, 가르치는 말씀의 뜻이 조금 달라도 티를 낼 수가 없었으며

조용히 함구할 수가 있었다.

믿음이란 떠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배웠으면 배운 만큼 내가 무엇을 해야 옳은가 찾는 것이며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고 배운 만큼 내가 더 희생하는 것이라고 박영선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지난 날 우리교회 믿음이 좋은 분이 있었다.

믿음이 얼마나 좋으면 장로 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혀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분이 부산에서 말씀을 배우고 오시더니 순복음이 틀렸다고 튕겨져 나가버렸다.

목사님도 나를 두고 아마 그것을 염려했던 것 같다.

저 너머에는 향기 나는 평원이 있듯이 삶이란 조바심 없이 넘고 건너고 그냥 가는 시간들은 없다.

다만 그 무언가 시험이 찾아올 때 우리는 몸부림을 친다.

시험이란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

때로는 시험이란 문제를 통해서 무지한 자를 해박한 지식으로 채워주고

지난 날 나의 잘못을 곱씹어 주는 계기가 되기에 시험이란 가끔 찾아 오는 것도 좋다.

참고:  (주소http://www.lamp.or.kr)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중간중간 빼서 듣거나 오다가다 들으시면 위험합니다.

꼭 정독을 하셔야 하고 제 경험으로 보면 요한복음, 창세기, 고린도 전 후서, 에베소서

순으로 들으시고 그 후부터는 자유로이 들으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