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크나큰 바캉스를 즐겼다면 두 번이 있었다.

1994-5년도의 2년과 2011년도. (물론 매일매일 숨 쉬는 것도 은혜요 은총이지만,)

과거사는 정확히 2년이란 날짜를 짚을 수가 있지만,

현재는 진행형이기 때문에 언제까지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2011년 4월에 영국으로 이사를 왔으나 곧바로 3개월간 한국으로 갔기 때문에

실제로 영국 생활은 3개월이다.

그 3개월도 집 짓는다고 분주하다 보니 나 혼자서 낭만을 즐기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제는 집 다 짓고 모든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내 방 큰 창문 커튼을 열어 놓고 점심과 함께

와인 한잔을 들고 밖을 내다 보니 불현듯 1994년도의 행복이 떠 올랐던 것이다.

한인 이민생활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좋으면서도 고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경제 문제 때문에 고달픈 것 보다는 솔직히 인간 문제에서 더 고달프다.

특히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고달픈 것만은 사실이다.

잘 해도 입실에 오르내리고, 못해도 입실에 오르내리고…

귀 막고 밀고 나가면, “그래 너 잘났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 “쟤 요즘 시험 들었나?”

하도 답답해서 꽥꽥거려 기도하면 “어머, 쟤 정말로 문제 있나 봐??”

싸우면서도 우리는 현지인 교회로 가지 못하고 한인 교회에서 모여서 산다.

한인들끼리 뭉쳐 살면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뭉쳐서 살아야 하고 싸우면서 크고 크면서 철이 들면 그 때는

천국 가는 날이 더 가까워 지는 것이다.

아무 턴, 1994년도에 있었던 행복과 현재의 행복과 같다는 점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980년 초 스페인으로 이민 와서 오직 교회를 나가야만이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이념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2년 째 되었을 때에, “오, 하나님이란 분이 있기는 있나 보구나.” 했고

그 3년째 되던 해부터 속된 말로 불이 붙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스페인 Gran Canaria 섬에서

옆 섬인 Tenerife 섬으로 1994년도 1월에 이사를 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 때는, 왜? 그 곳으로 이사를 하게 하셨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정확히 1년 10개월간을 구름을 밟게 하시고

예수님의 손 바닥에 나를 올려 놓고 행여나 누가 나를 터치 할세라 보호하시고

예수님의 품에 꼭 안고 다니신다는 그런 느낌과 행복과 평안함 속에서 살았다.

나는,

“아, 잠시 바캉스를 즐기게 하고 바캉스가 끝나면 아프리카 평신도 선교사로 보내려고 할라 나부다!”

꿈도 참 야무졌다. ㅎㅎ

아프리카 선교는 아무나 마음만 먹고 뜻만 있으면 가는 줄 알았으니

나의 무식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박영선목사님의 말씀 중에, “고집과 무식은 같이 따라 다닌다.” 정말로 딱! 맞는 말씀이다.

4년 전, 박영선목사님의 말씀으로 와장창~깨어지기 전까지는

고집과 무식이 나와 함께 했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하랴……

그리고 그 2년 Tenerife 섬에서 바캉스를 마치게 하고,

다시 Gran Canaria 섬으로 불러들여 본 교회를 섬기게 했다.

장장 30년 세월을 그렇게 Canaria 섬에서 오직 한 교회만 섬기게 하다가

2011년 4월에 영국으로 이주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 영국에서의 나의 행복이 그 때 Tenerife 섬에서 2년간 맛보았던 행복과 똑 같은 느낌이다.

언제까지 이곳 영국에서 이런 행복 속에서 살게 하셨다가 또 언제 어디로 나를 이동하실지….

한편으로는 겁도 나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현재가 좋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어떻게 펼치실지 그게 궁금하기 때문이다.

옛 추억의 행복을 떠오르게 하면서 이렇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와인 한 잔의 행복이 나는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