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다시 보기(6) (창 32:22~32)

2024. 3. 24.(일)
박영선 목사

1. 내용

가. 서론

(1)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으면 어느 때나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하셨다.

그러니까 이 세 인물의 생애는 매우 중요한 본문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죽어가는 인생의 비극 속에서 복을 받았다.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다.

이삭은 태어날 수 없는 자가 태어나더니 죽이라고 하시고 다시 살려주셨다. 이것을 통해 죽음이 창조와 부활 사이에 필요한 과정임을 알게 하셨다.

오늘 야곱은 그 과정에 관한 긴 이야기이다.

나. 본론

(1) 야곱은 창세기 25장에서 등장해서 창세기 49장까지 긴 이야기를 이어간다. 야곱은 태어날 때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장자권을 가지려고 싸운 사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가 장자권을 얻으려고 싸웠지만 에서가 먼저 나오고 야곱은 에서의 발목을 잡고 나온다.

차남이 되었다. 고대 사회에서나 현시대에서나 별로 다르지 않게 세상 질서에서는 장남이라는 자리가 매우 크다. 부모의 모든 것이 장자에게 넘겨진다.

태어난 이후에도 야곱은 장자권을 얻기 위해 별짓을 다 한다.

사냥 나갔다가 돌아와 배가 고파서 쩔쩔매는 형에게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자고 한다. 형은 기꺼이 바꾸고 야곱은 그렇게 장자권을 뺏어 갔다.

아버지가 나이 들어 장남을 축복하겠다고, 에서를 불렀는데, 야곱은 이것을 새치기하여 자기가 들어간다. 아버지를 속였다. 아버지는 장남인 줄 알고 모든 복을 야곱에게 주었다.

형에게 쫓기게 된다. 화가 극렬했던 형은 동생을 죽이려고 한다. 동생은 외삼촌 집으로 도망간다. 도망가는 중에 창세기 28장의 벧엘 사건이 벌어진다.

돌베개를 베고 자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서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신다.

너 누운 땅과 네 사방의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리고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야곱도 감동하여 기름을 붓고, 내가 무사히 돌아오면 여기에 제단을 쌓겠습니다, 라고 서원한다.

외삼촌 집에 간 야곱은 결국 종노릇만 하게 된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자기의 몫을 달라고 한다. 자기 몫을 구별하기 위해 얼룩지거나 아롱 반점이 있는 가축은 내 것이고, 그런 것이 없는 가축은 모두 삼촌 것입니다, 라는 제안을 했고 삼촌은 동의한다.

외삼촌은 그 후 자신의 가축 떼에 있던 얼룩지거나 아롱진 가축들을 구별해서 멀리 보내 버린다. 그런데도 아롱지고 얼룩진 것들이 많이 생겨서 야곱 재산이 삼촌보다 넘어서게 된다.

삼촌의 아들들이 야곱을 미워하게 된다. 재산을 빼앗기 위해 그를 죽이려고 한다. 야곱은 사실 그 당시 굉장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삼촌의 첫째 딸과 둘째 딸을 모두 아내로 삼고 있었다. 삼촌의 사위였던 것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야반도주를 했다.

부인과 아이들과 식솔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가는데 소문을 들으니 형에서가 군사 4백 명을 데리고 나온다는 것이다.

일행을 몇 그룹으로 나누어 앞서 보내고 야곱은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았다.

야곱은 먼저 일행들에게 지시했는데, 만일, 에서를 만나면 이 재산들은 모두 동생 야곱이 형님 에서에게 드리는 예물이라고 해라, 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더 깊은 표현을 쓴다. 주의 종이 주에게 드립니다, 라고 하여 관계의 계급 차이를 매우 높게 나타내고 싶었던 야곱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야곱은 몸을 무척 사렸던 것이다.

혼자 있는 야곱에게 천사가 내려와 도전한다. 이 싸움에서 천사가 이기지 못하자, 천사는 야곱에게 일격을 가한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고 축복해 달라고 애원을 한다.

창세기 28장의 축복과 창세기 33장의 축복은 큰 차이가 난다.

2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약속 속에는 피난 시절과 재산을 모으는 일과 얍복 나루가 다 포함되어 있음에도 야곱은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도 야곱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에게 특별한 민족이다.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하고 나는 너희의 아비가 되고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역사 내내 이 약속을 어긴다.

이스라엘은 왜 그랬을까? 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을까?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잊고 있을 뿐이었다.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은 저 들의 정체성과 신분과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생존경쟁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치열하게 싸워 이겨야만 했다. 치열해진다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을 관통하는 지적이었다.

십계명에 보면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나는 네 하나님이고 너희는 너희의 필요를 이웃에게서 뺏어올 필요가 없다.

인간은 여기서 생각이 갈라진다. 내가 필요한 것을 내가 만들 수 없다. 그러니까 이웃의 것을 뺏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야곱은 이 점에서 철저히 세속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자가 되기 전까지 하나님 없는 인생이 빠져드는, 좋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이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고 있는 중에 벌어진다는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 규칙 속에서, 죄와 사망이 왕노릇 하는 곳에서, 하나님만 섬기고 살 수는 없다면서 현실과 타협한 것이다. 약탈자가 되고 속이게 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자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야곱은 드디어 얍복 나루에서 터지게 된다.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온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에게 묻는다.

네가 살아온 인생이 너에게 어떤 결과와 가치와 유익을 만들었는지 봐라. 야곱은 대답한다.

그럼 무슨 다른 수가 있습니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나를 돌보아 주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야곱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은 맹렬하게 부딪친다. 천사는 나는 너와 더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라고 하면서 가려고 한다.

야곱은 매달린다.

(호 12: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야곱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내가 무슨 다른 수가 있습니까? 살려주십시오.

천사가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야곱의 뜻은 약탈자, 날강도이다. 그의 이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모든 세상 사람을 대표한다.

천사는 다른 이름을 준다.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이다.

야곱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저를 약탈자, 사기꾼이라 욕하지 마십시오. 제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도움을 요청하거나 보호를 받을 곳이 없는 고아입니다.

하나님이 답하신다.

너는 다시는 고아라고 하지 말라. 내가 있지 않느냐. 내가 네 부모야. 너는 나를 이긴 자야.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더냐?

(3) 아담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다. 그리고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었다. 형이 아우를 죽이거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나님은 이들을 죽이지 않으시고 흩으셨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축복하신다. 이 축복은 인간들이 앞에서 했던 내용을 생각하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신 약속인 것이다. 야곱에 오면, 한 단계 더 나아가신다. 내가 네 부모야. 부모가 자기 살려고 자식을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엡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데 왜 고난의 시간이 필요한가?

하나님 없으면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를 봐라.

하나님이 없으면 인간은 서로 약탈하고 서로 속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 부족을 채울 수는 없다. 하나님이 없으면 죽어 나간다. 어떤 승리도 가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현실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다.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모두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너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러니 시간과 과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약탈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야곱이 여기서 무너진다. 살려주십시오.

인간은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그의 결국은 체념뿐이다. 보통은 다 보복 속에서 산다. 원한을 갚는 것이 유일한 삶의 동력이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너희는 다르다. 너희는 나의 영광의 찬송이다. 진정한 인간의 덕목은 용서, 사랑, 기다려줌, 공감에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증명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처지에 찾아 들어오신다. 이것을 심판하시지 않는다. 신이 죽음의 자리에까지 따라 들어오신다.

다. 결어

(1) 우리가 성육신을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으며 인간의 처지에 찾아오시며 우리의 상황을 심판하지 않으시며 기다리신다. 한 단계 한 단계씩 배우도록 하신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주신 것은 진리와 생명, 찬송과 영광이다. 인간 본연의 본문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셔서 이런 기적들을 행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문둥병도 고치시고 5천 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으셨다. 이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 이것보다 더 큰 능력으로 우리가 죽는 자리에까지 따라 들어오셨다. 죽음마저도 너희와 하나님을 갈라놓을 수 없다. 내가 죽음까지 끌어안는다.

(2)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본문을 만들어 가는 일에 하루를 써야 한다. 한 번에 성자가 되어 완벽해질 수 없다. 견디어야 한다.

한 번만이라도 잘 해보자. 이렇게 목표를 세워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하나씩 배운다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유혹한다. 권력, 분노, 공평, 세상이 말하는 이런 것들은 다 거짓이다.

공평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우리의 공평은 악한 자에게는 악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와 저주를 버려라. 여러분의 신앙을 체념과 반발로 채우지 말라.

여러분의 현장에서 주님이 여러분을 지키고 계신다. 그러니 여러분의 하루는 굉장한 하루이다. 그리고 많은 날이 필요하다.

인간은 언제쯤 철들기 시작할까? 많이 낮추어 생각해도 육십은 되어야 한다. 그전에는 상처와 후회가 남는다. 그러나 그것들이 일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주일 하루 예배에 그치면 안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승리와 항복이 믿음을 꽃피우는 인생이 되기 바란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오늘은 귀한 하루입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하나씩은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자기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나를 만나는 이웃이 우리에게서 생명과 빛을 보는 책임을 견디게 하옵소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 것을 매일 새기며 찬송과 기쁨으로 우리의 믿음을 풍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