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 다시 보기(3) (엡1:3~6)

2023. 2. 19.(일)
박 영 선 목사

1. 내용

가. 서론

(1)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류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창조를 시작하셨다. 창세 전이라는 것은, 만들어 보고 그때 상황과 결과에 따라서가 아니라 처음 설계가 하늘에 속한 복을 주려는 목적대로 되었다는 뜻이다.

이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다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뜻은 신적인 내용 속에서라는 뜻이다.

왜 이것을 강조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가 등장하면, 십자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오셔서 타락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가게 하셨다는 실존적 신앙관으로 성경의 약속들을 해석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행위는 복음주의라고 얘기하는 구원 일변도로 축소된다.

구원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하나 보자 하시고, 우리가 실패하자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감당하실 필요가 없는 수모와 죽음을 감당하셨다,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예수와 십자가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전도가 우리 신앙생활 실천의 대표적인 행위가 되었다.

당신은 예수 믿어야 천국 가지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2)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으로 웅장하고 장엄하게 하나님의 목표를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이해이지만 좀 더 크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표는 실패할 수 없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적 자신감이다.

나. 본론

(1) (롬8:35)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실패하거나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편인데 누가 나를 흔들 수 있는가?, 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예수를 진실로 믿고 약속을 지킨다면 무슨 일이 와도 나는 자신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신앙관을 가지고 보면 하나님은 창세 전에 계획하셨고 이 계획은 목적을 반드시 이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중에서 포기하시는 일은 없고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이일을 진행하신다, 가 된다.
난관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을 이루시고야 만다. 창조와 종말 사이에서 우리가 겪는 현실은 세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시험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얻은 사람답지 않은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밖에서부터 오는 도전은 예수를 힘입어 큰소리를 칠 수 있지만 스스로에서 일어나는 자책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신자들의 대부분은 이 자책을 메꾸기 위해 회개를 끝없이 한다. 회개해야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해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타락했을 때 몇 명을 골라서 구원해 주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인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이 있으셨다. 그중 가장 핵심적으로 권능이 드러난 것은 십자가다.

그러니까 시작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시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작정을 하신 때가 시작인 것이다. 우리의 반응이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가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실패와 좌절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이것으로 우리와 씨름을 하시며 이것을 통해 일하시며 결국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인도하신다.

실존적 신앙관으로 보면 우리가 죄를 짓고 그 후에는 회개가 필요하고 그래서 정결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을 허락하시고 그 잘못과 씨름하시고 거기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이렇게 우리의 지평을 열어주신다.
잘못해도 된다. 이문장 하나만 놓고 보면 무엄한 말이지만 우리가 자녀를 가르칠 때 어떻게 하는가? 네가 해봐.

정답을 쉽게 말해주는 아버지는 없다. 네가 풀어봐 거기서 왜 이리로 갔어?

우리가 해봐야 하는 일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 왜?

우리는 자책이 싫다. 그래서 자책이 없는 것이 최고의 평안이다. 이때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감동했을 때 하나님은 모른척하신다.

여러분이 가장 크게 잘못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모른척하신다. 무슨 뜻인가? 부모는 자식을 기를 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초등학교 때 아이를 다루는 기준과 대학 때 다루는 기준은 다르다. 이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한 존재가 크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는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관계에 우리를 초대하신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열심히 살아 보상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간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장 감동에 찼을 때, 내가 가장 헌신하고 싶었을 때의 마음을 연장해 주지 않으시는가? 왜 우리의 실패를 허락하시는가?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만들어 가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은 무엇을 만드는 것인가?

하나님이 자신의 자식들에 대하여 어디까지 드러내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부모이니까 자식의 죽음에까지 따라 들어오실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식을 살리고 자신이 죽으려 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기 원하시며 이런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사랑해라, 용서해라 하시는 것은 도덕성을 높여 주시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런 차원이 없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자라면서 겪는 어떤 부족함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모든 과정을 완벽히 이수해야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부족한 채로 진급한다. 우리는 이렇게 커가면서 잘잘못으로 구별되던 과거가, 성숙을 이루어내는 존재로 변화된다.

성경은 끊임없이 용서하라고 한다. 사양하라고 한다.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 빰을 대라. 이것은 윤리가 아니다. 그런 때에 보복하려는 마음을 넘어서라. 너희가 생각하는 보상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따라와라. 성경은 이것을 가르친다.

(2) (롬7:18~8:2 ) 이것은 모든 신자가 겪는 현실이다. 우리는 완벽한 신앙인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남이 잘못했을 때는 너무나 잘 보인다. 그러나 내 문제로 오면 내가 만족할만한 신앙생활은 잘되지 않는다. 모든 신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음에도 이같이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즉 하나님께 물어봐야 한다. 내 생각은 늘 옳은데, 내 행동은왜 안 그렇습니까? 답이 나온다.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너의 잘못이 네 운명이 되지 않는다. 잘못도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오해하는 부분은 잘못을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 잘못이 무엇을 만드는가를 보아야 한다.

완벽한 도덕성으로는 겸손을 가지지 못한다. 똑똑할수록 남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이걸 틀리는가? 우리도 그러고 있다. 너 예수 안 믿으면 지옥에 가.

예수님이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 죄를 감수함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들고자 하시는가?

감사하는 자, 나누는 자, 함께 우는 자, 함께 웃는 자, 혼자 잘나지 않고 같이 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같이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못난 것을 지적한다고 여러분이 잘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잘났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워 지는 것, 즉 인간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용서해야 한다.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셨다. 우리의 범죄한 자리까지 찾아오셨다. 그리고 우리의 저항을 받으셨다. 하나님마저 죽이겠다는 것을 받아들이셨다.
이런 영광을 다른 것과 바꾸지 말라, 고 말하는 것이 성경이다.

기독교는 창조세계를 다 끌어안아야 한다. 신이 있다면 일정한 조건과 법칙에서만 적용이 되고 그 반대편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놓지 않으신다. 우리가 해보고 틀렸을 때 다시 해보라고 하신다. 그러니 과거를 지우는 회개가 아니라, 잘못한 과거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나이에 걸맞는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얼굴은 속 실력의 게시판이다.

아침, 저녁으로 거울을 보고 생각해 보라 나는 왜 이런 표정을 지을까? 예수를 믿는데 표정이 멋있는 사람이 없다면 안된다.

신이 인간을 부자지간으로 대하며, 가족으로 영광과 자랑을 함께 나누자고 찾아오셨다. 돌팔매질하는 나에게까지 오셨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며 기독교의 기적이다.

(3) (롬8:18~21) 자연 세계는 지금 봐도 아름답다. 인간이 타락하는 바람에 세상이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썩음이 있고 죽음이 있다. 창조세계의 회복은 인간의 회복과 연계되어서만 일어난다.

인류의 회복은 인류가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실력을 가진 자로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목적이요 결과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 사랑은 최고의 가치이며, 자랑이며, 기쁨이다. 누가 이것을 강요하겠는가? 아니면 보상을 걸어서 할 수 있겠는가?
우리라는 존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자리에 가야 한다. 그 영광의 자유에 도달해야 한다.

세상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강요이다. 내가 널 사랑했는데 너는 왜 내 마음에 안 드는 거냐?

하나님은 아니다. 해봐. 그래 좋아.

탕자의 비유는 우리가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온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고 알고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나아가야 한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 다 주인이 잃어버린 것을 찾는 비유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러 가는 목자 이야기, 잃어버린 드라크마 한 개를 찾는 주인 이야기, 세 번째는 잃어버린 것이 돌아오는 비유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미리 자기 몫을 달라고 한다. 신기하다. 아버지가 준다. 아담이 왜 선악과를 따 먹었을까? 따먹게 놔두셨다. 자기가 한 짓의 결과를 봐야 한다.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지내다가 거지가 되었다. 먹을 것도 없다. 드디어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 집은 풍족하고 너그러워서 품꾼들조차 넉넉했다. 내가 왜 여기서 이 꼴을 당하고 있겠는가?

집으로 간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삼아주십시오.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잔치 소리를 듣고 불만을 토한다. 모든 재산을 말아먹은 놈을 왜 환대하십니까? 나한테는 한 번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지 않으십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둘째 아들의 가치는 무엇인가? 철이 들어서 왔다는 것이다.

큰아들은 지금 모든 것을 지키고 있지만, 철딱서니가 없는 것이다. 네 동생이 돌아왔는데 너는 안 기쁘냐?

집을 나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법이었다. 잘못하지 않는 것이 다였다.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뭘 잘해야 하는 지는 몰랐다.

다. 결어

(1) 우리가 잘못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못났는가를 뼈저리게 느껴야 깊어지고 성장한다.

용서하고 이해를 하고 함께 울 수 있다. 함께 웃을 수 있다. 함께 껴안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신 경지 즉 이런 경지까지 우리가 올 것을 기대하신다. 만드신다.

우리의 죽음마저도 이것을 만드시기 위해 쓰신다. 죽음은 우리에게 마지막 관문이다. 죽음보다 더 큰 것을 배우도록,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어느 경우도 외면하지 않으신다. 타협하지 않으신다. 면제해 주지 않으신다.

(2)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소원은 무엇인가? 안심과 평안 이외에 다른 것이 있는가? 여기는 하나님이 나를 훈련 시키기 위해 못살게 구는 자리이다. 더 귀하고 영원한 것을 만들라고 우리를 흔들어 깨우신다.

우리는 스스로가 커나가야 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은혜를 증거 해야 한다. 이중적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권력을 가지고 기독교를 설명 하거나 권능을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 앞에서 여러분은 달라야 한다. 최소한 인간은 이쯤은 되어야 해.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요구하시는 일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더 훌륭해질 것이다. 여러분 각자가 그 기적을 누리는 인생이 되기를 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명예와 영광을 모릅니다. 수치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못난 것들입니다. 그저 자기 혼자 살기 바쁘고 자기 혼자 만족하기 위해 모두를 해치는 것 외에는 배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초대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한순간도 헛되게 보낼 수 없습니다. 이 귀한 인생을 사는 줄 아는 믿음이, 소망이 있게 하옵소서. 이 약속을 전해 받은 한 존재로서, 자신의 삶에서 이 약속을 구현하게 하옵소서.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고 명예와 영광을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