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 날라리
홍 영주

성가대에 들어온지도 10여년이 훌쩍 넘은것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대견하다. 어려서부터 팝뮤직에 빠져있어 교회다닌진 오래되었어도 꽤 오랫동안 찬송가, 성가곡이 마음에 닿아오지 않았었기때문이다. 팦뮤직중에서도 특히 뿜빠뿜빠하는 강한 비트의 락뮤직을 가장 좋아하던 나에게 성가곡은 그저 밋밋하고 단조로운 음악이었다. 친한 집사님들은 운전하실때에도 찬송가, 성가곡 CD를 들으며 다니신다던데, 난 차만타면 오로지 큰 볼륨의 팝뮤직을 즐기며 다녔다. 그래서 한동안 “아, 난 거룩한 믿음생활을 할수없겠구나.” 단정짓곤 했다.

팝송에 폭빠진게 된 것은 우리 작은오빠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이다. 어느날 갑자기 전축에서 뿜빠뿜빠하며 영어 노래가 매일 큰소리로 흘러나왔다.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무슨뜻인지도 모르지만 “오 캐롤~ 아임 버터풀” 노래를 들으면 괜히 신나고 자유스런 느낌이 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턴 완전 내 생활의 중심은 팝송이었다. 라디오의 3시의 다이알을 듣기위해 학교끝난후 빠른걸음으로 집으로 향했고, 저녁에 나오는 모든 팝뮤직 프로그램은 빼놓치않고 열심히 들었다. 영하 18도도 넘는 엄동설한에도 금주의 빌보드챠트를 듣기위해, 난로도 없는 추운 응접실에서 담요뒤집어쓰고 챠트 하나하나씩 공책에 적어나갔다. 금주의 20위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crying in the chapel”, 19위는 …..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순위대로 공책에 적어나갈 때 뭐 대단 것이라도 알아낸듯 혼자서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던지 모른다. 그시절 나를 가장 괴롭힌 사람은 의대생 대학생이던 우리 큰오빠다. 매일 공부하는데 방해된다면서, “영주야, 너 전축끄라니까!” 하며 하루 저녁에도 몇번씩 제제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볼륨으로 줄여도 소리가 들린다고 끄라는 것이다. 결국 전축소리를 모기소리만하게 최대로 줄인후, 전축스피커에 귀를 대면서까지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없는 하루는 상상도 안됐고, 가족들끼리 여름 휴가차 집을 떠날때는 팝송을 들을길이 없어 너무나 삭막했던 심정이었고, 아, 음악을 들을수만있다면 얼마나좋을까하며 음악을 너무나도 절절히 갈망했었다. 기쁠땐 음악이 기쁨을 고조시키고, 안좋을때 음악을 들으면 어느새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말로 어느 팝송제목처럼 음악은 “You mean everything to me.” 였다.

그렇게 이미 팝뮤직에 깊이 뿌리를 둔 음악 취향의 여파로 40대 중반까지도 성가곡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들의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며 주저앉게 되었다. 너무나 절박하여 그저 주님의 은혜만을 간구하며 눈물로 기도하며 부른 찬송가 한절 한절이 얼마나 은혜롭고, 위로가 되는지 계속 끝도 없이 찬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주안에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 내앞길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번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찬송부르며 복잡하고 두렵던 마음이 오로지 주님께로만 집중하게되며 찬송을 계속 부르는 동안 어느새 마음속에 펑안함과 담대함이 생기곤했다. 내가 수십년간 그렇게도 좋아하던 팝송은 이런 류의 힘을 발휘해본적이 없었다. 팝송 날라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결국 주님께서 은혜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신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좋아했던 팝뮤직에 대한 사랑이 어찌 사라지랴. 몇 년전 2부성가대 송년의밤행사가 있을 때 총무님께 가서 저 노래좀해도되냐고 부탁하여 소싯적 하던대로 기타치고 좋아하던 팝송을 불렀다. 기타를 잘치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걸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던 노래를 하고 싶었다. 2년전엔 성가대원들을 부추겨 합창으로 “오 해피데이”를 공연했다. 어려운곡 연습하느라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공연하던날 우리가 연습하던 것중 최상의 무대가 되어 모두들 너무 기뻐했다. 요즘엔 이번 여름수련회때 무대에 올리려고 비틀즈 노래를 함께 연습중이다. 우리 임마누엘대원중 비틀즈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면 함께해주셔서 올 여름 멋진 공연을 했으면 싶다. 알토 옆자리에 계신 집사님께 함께 연습하자고 했더니, “집사님, 난 사람들앞에 나서는건 절대로 못해요. 집사님이 차라리 땡볕에 밭을 매달라면 도와줄수 있어도, 무대는 안돼요.” 하며 고사하시던 집사님말씀에 웃었던 생각이 난다. 그 집사님 말씀처럼 우리들 모두는 각각 다른 기질과 성향을 갖고 태어났다. 어린시절 나에게 그런 놀라운 열정을 허락하시어 팝송날라리로 살며 기쁨을 맛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그대로 내버려두시지않으시고 결국엔 찬송으로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맛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