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22~23절 말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우리가 애송하고 잘 아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여러가지 많은 신앙적 주제들을 다루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교회안에서 특별히 뭇 열화같은
주제가 있다면 성령과 관련된 주제중에 은사 일것입니다.

한국의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남들앞에 과시할수 있고 초월적인 은사들을 누가 더 크고, 더
강력한것을 얻을수 있는가.그것을갖고 있는 사람이 훨씬더 좋아 보인다 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데, 사실은 성령론에 관한 한 그 성령의 주제중 훨씬더 사모하고 관심을 가져야 될것이
뭐냐고하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은사 보다 성령의 열매가 훨씬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의 요체이고 정점이라 할수 있기
때문이죠. 성령의 은사는 우리 한국교회의 사모하고 추정하는 것 만큼 하나님앞에선 무게있는
요소는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는지, 안 믿는지와 상관없이 주어질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 이고, 그것은 은사를 받은 사람의 신앙의 정체성이나, 성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은사가 훨씬 초월적 은사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그것과 비교되게 정말 우리가 성숙한신자인가 아닌가를 보여주는 영적인
지표가 있다면 성령의 열매죠.

성령의 열매가 우리안에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구현되고 실제로 열매맺느냐에 따라서 그사람
의 영적인 상태 그 교회의 영적인 수준이 결정됩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수확의 계절인데 좀더 주님안에서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수
있는그런 영적인 사모함의 열망이 우리 가운데서 새로워져야 되지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세례와 관련된 문제인데, 여기서 성령세례 라는 것은 통상 우리가 이해
하고 있듯이 부흥회에 가서 성령받는 그런것이 아니고 성령세례라는것은 오순절 성령세례 한번
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믿고 성령세례를 받은것이 아니고 이미 교회안에 풍만
하게 임재해 있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우리가 구원받는것과 동시에 참여하는 겁니다.

교회의 우주적 시공간을 초월하는 충만한 성령의 세례안에 그리스도의 한몸이 되는, 구원을 통해
서 연합함으로 참여하는것입니다.

성령세례를 통해서 이제는 교회가 주님이 영적으로 임재하셔서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그일을
한다는 것이죠.

우리 남포교회가 주님께서 그분의 몸으로 세우신 교회라면 우리 남포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의
유기적 선상에서 영적으로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는 충만한 교회안에
임재안으로 주님의 초대를 통해서 참여하게 되는것이죠. 성령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연합
주님의 몸 한 부분이 되고 구원의 공동체로 하나가 된다 라는것에 연합이라는 단어를 쓰죠.

연합이란 그 절묘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성령의 임재아래 충만한 임재속으로
들어가게됩니다. 우리의 전인격적인 차원에서 성령의 충만함이 임재하신다는것입니다.

성령세례를 통해서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은사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지체
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몸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할수 있도록 선물로 주어진 것이
바로 은사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을 위한 도구로 내게 맡기신 것이지 내
자신의 만족적 이기적 용도로 주어진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영적인 성장이나 만족을 위해
쓴다는 것은 원래의 용도를 오용하는 폐착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성령의 은사와는 달리 성령의 열매는 반드시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거나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자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오늘 본문에 보면 9가지 요소로 나열되고 있는데,흔히 착각하기를 성령의 열매가
갯수로 9개라고 착각할수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이것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입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사랑 희락 화평 등을 비롯해서 9가지 절묘한 맛이 조화가 된 특별한 맛
입니다.

9가지 맛으로 어우러진 열매중에서도 개별적 특성을 가진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교회 전체의 관계속에서 인격관계 유대속에서 공동체속에 성격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몇가지 있습니다.

개인적인 특성으로 약간 제한될수있는것 보다는 공동체적 차원에서만 나타날수 있는 특징이라면,
훨씬 중요할수가 있습니다.사랑 희락 화평, 다른것도 마찬가지 겠지만 이 세가지는 우리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이것을 이루어 낼수없는 요소입니다. 사랑은 가장 결정적 열매의 요소가 된다면
희생과 용서인데, 내가 혼자 배타적 으로 독립적으로 고립된상태에서는 사랑의열매가 나타날수가
없습니다.

한몸을 이루는 공동체안에서 우리 유기적인 서로간의 긴밀한 섬김과 서로 연약한점을 돌봐주고
채우고 또 다른 지체에게 결정적인 아픔과 고통이 있을때 희생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자원
이든 나누어서 채워야 되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있다보면 서로간에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줄수 있는일들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용서라는 문제로 풀어 갈수 있는것, 그안에서 자라가는것이죠.

사랑이란 요소는 전적으로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개별적으로 혼자 노력해서 되는것이 아닙니다.

9가지 열매중 절제 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개인적 특성이 강한건 맨뒤에 가 있는것 같습니다.
공동체적, 함께 어우러져서 맺는 열매는 앞에 배치가 되는것 같습니다.

사랑이 대표적이고 희락은, 자아도취적인 긍정적 마인드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밝게 만들어가라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고 희락은 함께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 한몸을 이룬
우리 전체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나 혼자로는 항상 기뻐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몸을 이루는 공동체속에서
는 슬픔 고통속에서도 기뻐할수 있는 근거와 이유가 생깁니다.

정말 혼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할수없는 절망적인 그 순간, 혼자로서는 결코 이것을 감내할수없는 인생의
짐을 갑자지 짊어지게 될때 그 무게에 압도되어 그 인생이 완전히 숨이 막히고 질식할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있을때 함께 몸을 이룬 지체들이 그 짐을 함께 들어주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위로의 공동체로
자연스러운 변화를 누리게 될때,그 절망속에서 형언할수 없는 그리스도로 한몸을 이룬 영적인 기쁨이
하나님의 위로를 통한 치료약이 주어질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떨어져서는 안되는 관계가 가장 위험한 관계일수 있습니다. 작은 실수 부딪힘에도 네가 이럴수 있어
하는 상실감 배신감으로 회복할수없는 깨어질수있는 관계로 나아갈수 있다는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어야 될까요? 우리 목회자들 사이에서 불문률로 할 정도로 하나의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 성도들간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 멀리,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너무 친밀하게 지내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오해와 미움을 받는 그런것들에 대해서 두려움때문인것 같은데,
그것은 일방적인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는자들이나 인간의 삶속에서 불가피한 문제를 영적인 공동체도
당연한 하나의 원리처럼 받아야 되는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으로 초월적인 임재가 있어야 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평,평화의 관계라는 것은 다툼과 분열과 깨어짐의 가능성을 전제해 두는 것이죠. 우리안에서는 여러사람
이 모인 관계안에서는 반드시 비틀리고 부딪히고 서로 피할수 밖에 없는 그런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누구하고는 친하고 누구하고는 어울리지않고 하는 그 모습이 우리 본연의 모습인데, 화평의 열매는 우리
관계들이 조금더 해소가 되는것이죠. 전에는 내가 평화를 이룰수있는 테두리가 서너사람으로 늘 제한되어
있다면 조금더 넉넉하고 조금더 성숙해져서 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완전히 수준이하 사람조차도,
가까이에서 대화를 건넬수있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좀더 과감하게 품어줄수있는 그런 관계로 나갈수있게
되는 열매가 화평일것입니다.

주님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최대한 용량의 100% 힘을 갖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성도들이 가기까지 당연한 목표입니다.

바라기는, 도서관이라는 공동체가 세가지 열매 사랑,희락,화평이 늘 교인들 중에 더욱 풍성하게 맺으시고
그리고 성령의 열매는 대단한 전염력이 있습니다.어느 한 성도가, 공동체가, 아름다운 열매,그리스도의 향기
를 강하게 풍기게 되면 굉장히 매력있기 때문에 그 맛을 느끼는 사람들이 쉽게 모이게 되죠.

맛있는 사과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과는 그 맛을 원래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훨씬더 피하고 멀리하게 되죠. 예수믿는 사람이 어떠해야 되고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열매의 특징들을 수준이하로 유지 할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세상사람으로 부터도 가혹한 질타와 미움을
받을수밖에 없습니다.

본래 가져야될 기본적인 맛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면 훨씬더 기하급수적인 따돌림 과 비난과 배척을 받을수
밖에 없는 일이 우리의 신자된 모습에 정체성의 중요한 책임이라는것을 기억하시고,

하지만 평균이상 요구된 수준 이상의 맛을 내게 되면 어마어마한 교회안에서나 세상에서나 매력을 발산할수있는
하나님의 귀하신 은혜의 도구들이 될수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특히 도서관 식구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맛있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