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서양음악사(23회)

하이든, 그 생애와 음악Ⅱ

지난 2월호에서 우리는 하이든의 어린 시절과 청·장년시절에 대해  인간학적 관점에서 알아보았습니다. 가난한 마차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재능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던 모습에서 참으로 인생의 계기란 무엇인가라는 막연한 질문을 되새기게 합니다. 인간은 어떤 가정에서 어떤 부모의 양육을 받고 성장하느냐, 라는 생득적 운명관도 있지만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모진 정신적 고통을 받고 이를 극복하여 후에는 인류를 위해 많은 공헌을 남기는 후천적 운명관을 가진 위인들도 많은 것을 보면 결국은 자신의 창조적 의지가 어떤 환경을 뚫고 생존하는가, 에 달려있는 듯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후천적 음악위인 중 한 명인 하이든의 음악세계를 장르별로 집중적으로 검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이든의 기악 작품세계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벽한 능력을 선물하지 않음으로 해서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협조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예로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성품과 작품세계를 들어 알 수 있습니다. 하이든은 그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무척이나 소박하고 정갈하며 겸손하고 온화한 인품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특히 교향곡에 대한 애정은 특별해서 발표되지 않은 것 까지 약 110곡 정도라고 합니다. 베토벤이 9곡, 모차르트도 41곡을 썼다고 하니 그의 교향곡에 대한애정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든이 20대였던 1750년대만 해도 교향곡은 북독일악파와 중부지방인 만하임악파 그리고 남부지역인 비엔나 악파로 구분되었고 3개의 악장형식을 띄었습니다. 여기에 만하임악파의 요한 슈타미츠라는 작곡가가 느린 2악장과 빠른 3악장 사이에 미뉴엣이라는 춤곡을 추가함으로써 4개의 악장 형식을 띠게 된 것입니다. 요한 슈타미츠가 1757년에 죽었으니까 하이든이 젊은 시절에는 아직까지 독일의 교향곡은 3개 악장이 대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4개의 악장을 가진 교향곡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역시 하이든의 중기라고 할 수 있는 1761년 이후 부터라고 할 것입니다. 즉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수하에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였지요. 이때부터 하이든은 1악장 알레그로, 2악장 안단테, 3악장 모데라토 미뉴엣,  4악장 알레그로의 새로운 교향곡양식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현악기 중심의 전고전주의 양식도 많이 바뀌어 오보에(Oboe)나 혼(Horn)과 같은 목관악기를 독립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하이든의 큰 업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1750년경까지만 해도 혼이나 오보에 같은 악기는 특별한 선율을 연주할 기회가 없었고 작곡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화음이나 멜로디의 강조점에서 다른 관악기들과 함께 코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 역할이었는데 하이든이 이러한 악기들의 음색이나 기술적 특징을 잘 파악해서 훌륭한 선율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지요. 하이든의 중기에 해당하는 1771년 이후에는 교향곡의 규모가 대단히 커지고 리듬이 다양해지는가 하면, 각 악기의 개성을 존중하는 등 화음이나 악기의 표현이 대담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고전현악사중주의 형식은 그에 의해 이 무렵부터 정형화되었고 이후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하이든의 현악사중주의 양식을 모델로 작곡했다고 합니다.

  1780년대 그가 50대에 접어들면서 작품에 새로운 시도가 가해지는데 느린 도입부를 점차 생략한다든지 느린 악장을 변주곡으로 처리한다든지 하여 대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가의 특권은 작품의 양식을 마음대로 바꾸어도 누구나 이를 수긍한다는 것이지요. 즉 형식이나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지요. 하이든은 이미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유럽을 휩쓸고 있던 때였고 스스로도 대음악가로서의 권위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스타일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작품스타일은 고전 교향곡의 전형이 되었고 이는 50년 동안 비엔나의 음악 패턴을 이끌어 갔던 것이지요. 하이든은 1791년 에스테르하지 궁에서 나와 비엔나의 자신의 거처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이는 하이든이 평생 모시고 살았던 니콜라스 에스테르하지공작이 금전적인 문제로 악단을 해체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이든의 나이도 이제 60대에 접어들면서 은퇴를 결심했던 것이고요. 그러나 이런 쉼도 얼마못가고 런던에서 활동하는 사업가 잘로몬의 초청을 받게 됩니다. 이미 런던의 시민들은 비엔나의 세계적 음악가 하이든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잘로몬은 그를 불러 런던에서 돈을 벌어볼 욕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2.런던교향곡  

  1차 런던 방문은 1790년 여름에 이루어졌습니다. 하이든도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저택에서 은퇴한 이후 무엇인가 새로운 일들을 구상하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잘로몬의 런던 방문 요청이 있자 서슴치 않고 수락한 것입니다. 물론 잘로몬은 하이든을 이용하여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하이든은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런던시민들에게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여행의 즐거움도 가져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2차례에 걸쳐 런던을 오가면서 모두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이를 지휘하기도 합니다. 물론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는 평판이 나있는 런던 시민들에게 그는 그동안 작곡을 공부해왔던 지식과 경험을 모두 쏟아 부어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음악으로 보답하려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런던교향곡 12개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런던교향곡의 특징을 보면 작곡기법과 형식의 규모가 훨씬 커지고 음악적 요소들이 대담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군대(100번),시계(101번)같은 교향곡은 그 특징적인 리듬과 음색으로 인해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지요. 런던교향곡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트럼펫과 팀파니가 느린 악장에서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하이든의 음향이 매우 대담해지고 음량도 커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전까지 금지 되었던 클라리넷을 과감하게 사용하기도 하였고 혼(Horn)과 트럼펫(Trumpet)을 단순한 화음구조와 음량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단순하게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독립적으로 연주하는 매력적인 악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런던교향곡에서 달라진 요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음역의 확대와 화성의 밀도가 단단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3화음과 같은 조밀한 음정을 여러 악기들로 밀집시켜 화성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도 특이한 점입니다. 하이든의 교향곡에 나타나는 소나타 형식의 특징을 보면 1악장에서 2개의 뚜렷한 주제를 가지면서 제2주제는 제1주제의 딸림 조로 자유롭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주제 간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2악장은 느린 템포의 자유로운 변주곡 형태입니다. 역시 단조의 대조군을 만들어 앞부분과 차별화하였습니다. 3악장은 미뉴엣과 트리오의 비엔나 풍의 춤곡형식으로 빠른 3박자 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4악장은 역시1악장처럼 2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빠른 론도 소나타 형식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론도소나타 양식은 고전 소나타형식의 기본 틀로서 작곡자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표현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3.  하이든의 성악작품

  하이든의 성악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작곡도 한 개인의 성격이나 이상을 노래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작곡가들마다 그들이 선호하는 음악장르가 있고 또 그 분야를 작곡할 때 더 많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흔한 말로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악분야에서 하이든의 작품은 주로 교회음악에 한정됩니다. 어릴 적에 비엔나의 스테판 성당에서 배웠던 미사 같은 예배음악의 모형을 잊지 않고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중 마리아쩰(Mariazell) 미사라는 곡이 있습니다. 마리아쩰 성당을 위한 미사음악이지요.

  제가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여행을 하면서 ‘니더외스트라이히(Niederösterreich)’ 와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 지역을 지날 때 마리아쩰 성당을 구경했습니다. 이 성당 입구에 있는 유리로 닫힌 게시판을 들여다보았더니 제2차 세계대전당시 이 지역 출신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성모마리아에게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문이 여럿 붙어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울컥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독일군으로 편입되어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전범국가의 병사들이었지만 아름다운 고향마을에서 나고 자라 이렇게 고운 심성까지 지녔던 순수한 청년들이었음을 생각하니 히틀러와 같은 광기가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을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목이 메더군요.
  
  이 마리아쩰 성당을 위한 미사음악이 그의 신실한 신앙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미사곡의 느린 도입부는 일반적인 수법으로 시작되나 크레도에서는 매우 강렬한 리듬과 화성이 나타나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이든의 성악곡 중에서 오라토리오는 1799년 이후 많이 나타나는데 특히 헨델의 합창곡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헨델의 메시아 같은 합창음악은 그 음역의 폭으로 인해 많은 합창단들이 커다란 도전으로 생각하는 대곡이지요. 하이든은 그의 ‘천지창조’에서 자연의 장대함과 신에 대한 경외감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이후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곡에서 하이든은 독창과 합창영역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헨델로부터 시작된 오라토리오 음악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