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산] 가평 연인산잣나무숲 지나 2시간 오르막 견디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신준범 발행일 : 2012.08.16 / 주말매거진 D3 면

▲ 지면ㅈ보기연인산은 이름을 바꾼 산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는 1068.2m, 무명봉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산아래 상판리 주민들은 우목봉이라 불렀고, 조선시대 문헌에는 산 위로 달이 떠오른다 하여 월출봉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연인산(?礪裸?)이란 이름은 1999년 생겼다. 경기도 가평군 지명위원회가등산객과 관광객들에게 산을 정확하고 친근감 있게 알리기 위해 붙였다. 덕분에 뛰어난 산세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던 연인산은 찾는 이가 급격히 늘어 200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연인 깨기산’ 별명 붙어

낭만적 이름 덕분에 젊은 연인들이 찾기도 하는데 이들 때문에 생긴 별명이 ‘연인 깨기산’이다. 연인산은 경기도에서 드문 1000m대 산으로 정상까지 최소 2시간 이상, 산행 시작지점에서 해발고도 최소 700m 이상 올라가야 하는 큰 산이다. 등산 경험이 적은 젊은 연인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예상치 못한 산행의 힘겨움에 다툼을 벌여 연인 사이가 종종 깨진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러브랜드라는 간판이 있는 가평군 북면 백둔리 공원에는 넓은 공터가 있다. 공터 끝에 대형 등산안내도가 있고 계단에 올라서면 소망능선 입구다. 정갈한 잣나무숲이 등산객을 맞는다. 순간, 여름에서 가을로 바뀐 듯 시원하다. 향기로우면서도 톡 쏘는 야성의 숲 냄새, 머리가 맑아진다. 솔잎 쌓인 흙길은 푹신해 디딜 때마다 편안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흠뻑 땀이 흐르지만 걸을수록 몸이 개운하다. 잣나무숲의 숨결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이다.

산행 초반, 아직 호흡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산은 사정 봐주지 않고 오르막을 들이민다. 중간 조망 하나 없는 빼곡한 숲을 올라 정상에 닿자 사방으로 뻥 뚫린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쪽으로 흑등고래처럼 검은 덩치로 거칠게 솟은 명지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연인산보다 높은 봉우리가 없어 시야가 훨씬 시원하게 트인다. 곡선을 이룬 산의 흘러내림이 멀리까지 겹쳐 있어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도 부드러워지는 듯하다. 표지석은 독특하게 하트 모양인데,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적혀 있다. 이런 의미와는 달리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정상 아래에는 ‘아홉 마지기’라 불리는 너른 분지가 있고 무인산장과 샘이 있는데 이곳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옛날 숯을 굽는 청년과 참판댁 여종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결혼을 청한 청년에게 참판은 조 백석을 가져오면 결혼시켜주겠다고 했고, 청년은 연인산 정상 부근의 분지를 발견해 아홉 마지기의 밭을 일궈 조 백석을 마련한다. 그러나 참판은 청년을 역적의 아들로 몰아 청년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실의에 찬 청년은 아홉마지기 밭에 불을 질러 스스로 그 불에 타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다.

◇휴식 같은 산행길

정상에서 우정봉과 우정고개로 이어진 우정능선은 연인산 특유의 휴식 같은 산줄기를 보여준다. 산불방화선을 만들기 위해 능선의 나무를 베어내 오붓한 숲길이 생겼다. 신갈나무와 잣나무가 번갈아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운데로 난 여유로운 흙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우정능선의 가장 낮은 안부(산 능선이 낮아져 말 안장과 비슷하게 된 곳)인 우정고개에 닿으면 6개의 갈림길이 있다.

용추계곡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계곡을 따르는 산길이 길게 이어진다. 10㎞의 먼 길이지만 계곡 하류의 관광객들은 맛볼 수 없는 상류만의 원시 계곡미를 느낄 수 있다. 용추계곡을 따라 오래도록 걸으면 용추계곡 공영주차장에 닿는다.

숯 굽는 청년과 종살이 하던 처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한(恨)이 오히려 이곳을 찾는 연인의 사랑과 소망을 이뤄지게 한다는 의미가 담긴 연인산. 산의 오르막조차 함께 극복할 자신이 없다면 애초 연인 사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여행 수첩]

흙산이라 위험한 곳은 없지만 산이 크고 산세가 복잡해 산행에 주의해야 한다. 정상까지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짧은 코스는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서 소망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연인교 버스정류소부터 걸어가면 정상까지 5.5㎞, 승용차로 백둔리 공원에서 출발하면 3.9㎞다. 이렇듯 연인산은 대부분의 산행기점이 버스정류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용추계곡은 2.8㎞까지 떨어져 있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하산은 장수능선을 따라 백둔리로 돌아가거나 우정능선을 종주해 우정고개까지 이른 다음 마일리나 용추계곡으로 할 수 있다. 우정고개에서는 마일리 국수당 방면이 1.6㎞로 짧고, 용추계곡은 10㎞가 넘는 긴 길이라 대개 마일리로 하산한다. 용추계곡 방면은 길지만 내리막이 대부분이고 길이 수월해 거리에 비해 산행시간이 적게 걸린다.

백둔리에서 소망능선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는 3.9㎞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정상에서 우정고개까지는 4.5㎞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우정고개에서 용추고개 공영주차장까지는 10.2㎞에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연인산은 등산로가 복잡하고, 어떤 코스로 잡아도 산행이 긴 편이라 자신의 체력에 맞는 코스를 정해야 한다. 초보자는 베테랑과 동행하는 것이 좋다.

가평버스터미널에서 백둔리행 버스를 타고 연인산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1일 6회(06:20~19:30) 운행하며 30분 정도 걸린다. 연인산 입구에서 하차한 뒤 연인교 건너 임도를 따라 직진해 3㎞를 오르면 소망능선 입구인 러브랜드 푯말이 있는 공원에 이른다. 용추계곡에서 가평터미널행 버스는 1일 8회(07:10~20:30) 운행한다. 가평버스터미널(031-582-2308).

[그래픽] 가평 연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