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명의양식/Andrea Bocelli. * *-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
/Andrea Bocelli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
/Andrea Bocelli


Panis angelicus, fit panis hominum
Dat panis coelicus figuris terminum
O res mirabilis, manducat dominum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Panis angelicus, fit panis hominum
Dat panis coelicus figuris terminum
O res mirabilis, manducat dominum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Translations in English
Heavenly bread that becomes the bread
Of all mankind
Bread from the angelic host that is the end
Of all imaginings

Oh, miraculous thing, this body

Of god will nourish
Even the poorest, the most humble of servants
Even the poorest, the most humble of servants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맘이 빈자에게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님이 해변서 떡을 떼심과 같이

하늘의 양식을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여 주여 먹이어 먹이어 주소서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는
세자르 프랑크가 파리 성 클로틸드 교회의
합창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작곡한 곡이다.

프랑크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매주 예배 때마다 부를 노래를 작곡했고,
1859년에는 3성부(소프라노, 테너, 베이스)를
위한 미사곡까지 작곡하기에 이른다.

초연은 1861년 성 클로딜드 교회에서 이루어졌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로부터 11년이 지난 1872년,
프랑크는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 곳에서 자신의 만족스럽지 못한 미사곡에 붙일
“파니스 안젤리쿠스”를 작곡했다.

결국 이 곡은
프랑크의 가장 대표적인 선율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958. 9. 22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라자티코 작은 농가에서
올리브와 포도 농장을 재배하던 가정에서
태어난 안드레아보첼리는

6살때 피아노, 풀룻, 색소폰을 배우게 되고
특히 오페라가수의 꿈을 키워나간다

앞길이 창창했던 보첼리는
그의 나이 12살때 시력을 잃게 되고

그가 원하던 오페라 가수의 꿈을 접게 되는데
피사대학의 법대에 진학하여 박사 학위 취득 후
1여년 동안 법정 선임변호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당시의 세계 최고의 테너 중 한명,
결국 그의 영웅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를 찾아가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1992년 드디어 보첼리는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고
이태리 락 보컬인 주케로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Miserere를 부를 데모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소리에 반한 주케로는
그의 공연에 보첼리를 초대하여 유럽투어를 하게 되면서
유럽에서 엄청난 히트를 거두게 되고
안드레아 보첼리는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된다

franco corelli
이태리 팝 음악제인 산레모 송페스티벌에서
“II Mare calmo della sere”로 우승한 그는
자국에서 엄청난 스타로 떠오르며
같은해 데뷔앨범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으며
두번째 앨범인 bocelli에서 [con te partiro]가 크게 히트를 거둔다.
얼마뒤 이곡은 사라브라이트만과 듀엣곡
“time to say goodbye”로 번안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다

1999 에는 sogno를 발매 빌보드 팝챠트 5위에 진입하는 등
보첼리의 목소리가 세계적인 관심속에 들려지게 된다.

2001년에 cieli di toscana 그리고 andea에 르기까지
크로스오버 앨범 활동 또한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

악조건 속에서도 정상인과 똑같은 삶을 추구하며
보통 사람들처럼 아온 보첼리..
벨칸도 창법에 충실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공명하는 비브라토가 특징인 그는
꾸준한 클래식 앨범을 발매해 오고 있는 현성악가로
이 시대의 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음악가로 손꼽는다.

12살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
피사대학 학과를 졸업한 후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수년간 법정 선임 변호사로도 활동하였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 변호사를 그만 두고
야간에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레슨비를 벌면서
명테너 프랑코코렐리에게  성악 레슨을 받는다.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성악계에 투신한 것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는 악보를 볼수 없으므로 일일히 녹음된 것을 외워야 하며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통해서만 음을 익힌다고 하는데
산레모 가요제 1위, 독일챠트에서 14주간 1위,
기록적인 판매량,   세계적인 인기 등을 생각 해보면
이제 그는 `맹인가수`가 아닌 당당한 세계적 성악가 임에 틀림 없다.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