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하루는 친구가 점심을 먹은 후 미국산 수입소고기에 대한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 친구랑 달리…저는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뚜렷한 판단도 잘 서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중 어떤 생각을 말했더니..놀라워하며 저를 보았습니다.안 좋은 쪽으로…
저는…소고기 수입에 문제가 있고 광우병때문에 사람들이 한우를 선호하지만…과연 한국산 육류,양식 어류,채소가
안전하냐고 했습니다. 알고 보면 항생제,호르몬,농약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먹거리 하나를 보아도 인간과 세상은 참으로 부패했다”고 말미에 무심코 말했더니…
“너는 세상을 그렇게 보는구나.놀랍다.난 세상을 참 아름답게 보는데..하기야 나도 한때 그렇게 볼때가 있었어..”
‘쩝…..’

그런 후 그 친구 약국에 도착해보니 카운터 유리 안에 어떤 글을 복사해서 넣어둔 것이 보였습니다.
내용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름답다.너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 마음의 눈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공부를 한 후 세상을 향한 분노를 내려놓고… 좀더 평안해 졌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도 분명 이런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과 인간에 대한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이 열리고 찬양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단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글엔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이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그런 마음공부로 용서와 사랑과 화합이 가능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다스림이…실제적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에 효과적이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다음 대화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당시 저는 기독교 신앙안에 있는 긍정과 부정의 힘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전달 못했을 것입니다.
부정이 어디로 이끄는지….결국 어떻게 전체를 다 품는 긍정으로 가는지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설명한다해도 실제로 그러한 자유함가운데 사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동안 …그 동안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계속 훌륭한 사람도 없고 계속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지혜의 글도 없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만 바라볼 때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 계속 주님을 의지하는 동안만 가능한 일입니다.
새로운 마음과 지혜와 회개와 용서와 도우심이 주께로부터 오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