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우릴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늘영광의 주인공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우린 이런 얘기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기에  하나님의 상속자인게

잘 그려지지 않고 실감도 잘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알아야 하나님의 상속자란 말이,

하늘주인공이란 말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하나님을 알기위해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운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만큼  

기뻐하고 자랑하고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움에 창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려고 우릴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린 처음부터 엄청난 계획속에 창조된 존재였습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분이요

모든 것의 주인이요 그 이상의 것을 소유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린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이런 창조의 목적을 가진 우리이기에 우린 처음부터 특별하고 놀라운 보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릴 창조하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이렇게 우린 처음부터 하나님의 기쁨이었고 사랑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런 창조를 하셨음을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나온 창조의 기사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과 소망의 약속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려고 우릴 창조하셨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이고

상속자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우린 창조와 십자가와 소망의 약속을 증거로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려고 날 창조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군대이야기프로중에  어머니코너가 있었습니다.

커튼 뒤에 가려진 분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확신하는

증거를 대면서 ” 이런 이유 때문에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말하는 군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이렇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창조와 구속과 약속이란 구원의 사건들을 친히 행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린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린 자녀가 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릴 사랑하고 우리도 하나님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 우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이 우리가 창조된 이유입니다.

두번째는 이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 볼 때만 우리의 특별함을 알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바라봄을 거부했을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흙뿐이었습니다.

탕자가 집을 떠났을때 만난 것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뿐이었습니다.

탕자가 돌아 왔을때 그는 그 자신스스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잔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초라한 모습은 아버지를 통해 완전히 바뀐것입니다.

이것은 탕자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봄으로 우리가 특별해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너무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날 보듯 나도 날 보는 것이요 하나님이 날 사랑하듯 날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날 대접하듯 날 대접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린 이미 나 자신을 세상의 무엇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무엇으로 나의 값어치와 특별함을 찾고 나아가 그것으로 나의 기쁨과 행복과 성공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다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정의하라는 것은

내 재산을 팔아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라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세상에서 부족할게 없는데, 아니 부족할 게 없이 살고 싶은데

그런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라니…..

그것은 영적으로 보면 가난뱅이요 소경이요 광야에 선 자가 되라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부자청년도 같은 고민을 했겠지요. 그는 예수님에게 자신을 자랑하고 싶고 자신의 옳음을 확인받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은 슬픈얼굴로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의 자랑과 옳음이 결국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무엇으로 자신을 값지게 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무엇으로

자신을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홰개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자신이 세상에서 가진 무엇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찾고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찾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없이 하나님의 사랑이란 복음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목말라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못만나는 것은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면 종교생활과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필요없어 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리에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대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린  하나님을 세상의 무엇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닌

내가 기뻐해야 할 내 아버지로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자체가 좋아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을 해 주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있는 모습 이대로 날 사랑해 주시기에  그 하나님이 좋아야 합니다.

그럴때 우린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회개하게 되고 기뻐 찬양하게 됩니다.

그럴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세상에 문제없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때

우린 하나님안에 숨겨진 나의 특별함을 보게 되고

그것때문에 춤추며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릴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특별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