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전능하고 至善한 인격적 존재로서 우주만물의 主이시며 사랑으로 조물세계를 창조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능하고 至善한 하나님이 왜 세계 안에 악을 존재케 하여 수많은 인간들로 하여금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게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2. 이 물음에 대한 전통적 신학의 해답은 무한한 사랑이자 선이신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원하지는 않으시나 이를 허용은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왜 고통을 허용하시는가’ 하는 새로운 질문을 유발케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 신학의 입장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 의하면 세계질서 안에서 발견되는 악은 본래 선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세계질서의 아름다움은 바로 상반되는 이 악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이다. 동 입장에 의하면 하나님과 고통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至善에 대립되는 고통의 현상은 바로 하나님의 至善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악은 하나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봉사적 기능을 지닌다.

3. 그러나 이와같은 전통적 입장은 엄존하는 현실적 거대한 악의 세력과 엄청난 고통의 실재 앞에 설득력을 잃고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인간들이 겪는 고통은 원조 아담이 범한 악의 결과이고 누구나 이에 대해서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심리학이나 생물학, 사회학 등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과실의 책임은 사실은 인간 외부로부터도 다가온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기에 고통에 대한 책임은 인간이 지기보다는 오히려 절대자인 신이 져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인간조건에 대한 이러한 통찰에 직면해서 현 세계가 곧 최상의 세계라고 규정하는 입장은 현실적으로 수용되기가 어려우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구원복음의 내용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4. 인간의 고통문제를 보다 신빙성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유한하면서 자유로운 인간과의 관계를 보다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자유는 창조된 유한한 자유이다. 그러므로 전혀 고통이 없는 유한한 자유의 개념이란 삼각형적 圓의 개념처럼 본질상 모순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고 해서 조물적 자유를 창조하면서 동시에 고통마저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한 요청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조물적 자유를 원하시기에 이와 함께 고통의 가능성 또한 필연적으로 주어져 있다. 한편으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유한한 조물이다. 이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앞서 불가피하게 하나님과 관련을 맺고 있는 조물적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거스르거나 상실한다면 자기 존재의 충만이나 완전한 행복 또는 구원을 성취하지 못한다. 이 처지는 인간이 자유를 그릇 사용하였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슬러 행동하면 자기 본연의 상태로부터 멀어져서 무의미한 공허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에 인간은 고통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로운 조물로 창조할 때에 이 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서 비구원에 이르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 가능성도 필연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이 인류의 역사 안에서 실제로 발생한 것이다.

5. 잘못 내려진 결단은 우선적으로 결단을 내린 개인과 상관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고통을 초래하게 되는 잘못된 자유결단은 개별인간에게만 아니라 타인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온갖 형태의 무질서와 부조리 그리고 불화를 초래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슬러 자유를 사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쟁과 수탈, 온갖 유형의 흉악행위, 증오와 시기 그리고 모함 같은 정신적 폭력을 자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스르고 타인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죄악으로부터 초래되어 이 세계의 면모에 깊이 각인되는 이 온갖 고통은 인간의 자유와 함께 필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으로부터 야기되는 고통은 인간존재와 함께 나아가게 마련이다.

6. 따라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한 분으로서 악을 절대로 원하지는 않으나 자유로운 조물을 창조하는 가운데 악이 발생할 수 있는 그래서 고통이 초래될 수 있는 가능성도 허용하신 것이다. 악을 절대로 원치 않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에게는 유한하긴 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가장 귀중한 존재이기에 악과 고통이 조성되는 가능성마저 감행하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기독교 구속사를 통하여 악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함께 우리 인간에 의해 구현되는 악에 대한 책임을 걸머짐도 아울러 보고 있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 나머지 친히 사람이 되시어 인간을 대신하여 속죄행위를 이룩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순명과 인간을 위한 봉사적 삶을 십자가에서 끝맺는 가운데 인간을 구속하는 온갖 질곡을 분쇄하는 구원사업을 성취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