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존재는 우연인가 선택된 것인가
–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한편으로 우연인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우리를 세상에 낳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고 은혜를 베풀며 선택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아주 의식적으로 우리를 원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원했다. 우리가 자란 문화, 우리의 기질과 능력, 한계 모두를 이대로 원했다.

– 우리 자신과 우리 인생을 체험하는 것은 우리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나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존재함에 감사한다. 나는 내 가치를 느낀다.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 성경의 말씀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고 내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나는 그것으로 특별한 사람이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2. 나는 왜 세상에 존재할가
– 세상에 존재하기 전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생각이었다. 그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육신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단 한 번 말하고 내 안에서 육이 된 그 말을 세상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세상에 내 삶의 흔적을 남기고 하나님이 내 안에 넣은 것을 세상에 다시 퍼뜨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고 우리 안에 선함을 심어 놓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세상에 전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특별한 사명이 있다. 우리는 우리만을 위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의 작은 충동에 귀 기울일 때 본래의 사명이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도하며 마음의 충동에 집중하면 우리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사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밝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가
– 죽음은 우리 삶의 경계이다. 모든 경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분리되어 있다. 우리는 죽음의 경계 안에서 의식적이고 강렬한 삶을 산다. 우리는 그 경계를 넘어서서 역사적 실존, 제한된 실존의 한계를 벗어나 넓은 곳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이 경계를 지나면 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충만함으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삶의 변화이자 깊은 갈망을 성취함이다.
* C. G. Jung은 자아(Ich)와 자기(Selbst)를 구분하여 자아는 인간이 의식하는 본질로, 자기는 무의식을 포함한 가장 깊은 본질로 정의했으며 하나님 존재를 무의식 세계와 연계시켰다. 죽는다는 것은 육신과 의식세계인 자아의 소멸을 의미하며 무의식 세계의 심연에 있는 참자기는 존속되어 하나님 나라와 연계되어 영원한 실재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한다.(필자 주석)

– 우리는 죽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실재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원초적 근원인 우리의 참된 고향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갈망을 그 사랑의 실재 안에서 성취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죽음 뒤의 삶을 혼인잔치에 비유한다. 영원한 잔치, 하나님을 인식함, 영원한 인식 등으로 묘사된다. 이들 표현의 중심에는 공통된 확신이 있다. 그 공통된 확신이란 우리는 죽어서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참된 본질을 발견한다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