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던 사회에서의 하나님 체험
        – “예수 없는 예수 교회”(한완상 저) 내용 중에서

  1. 기독교는 현대 및 초현대(포스트 모던) 사회에서 본질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수천 년간 기독교를 뒷받침해온 초자연적 유신론의 틀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표현되는 하나님은 외부에 존재하는 막강한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밖으로부터 우리 삶 속으로 개입하는 外在神이다. 이러한 초월적, 초자연적 하나님은 근·현대에 와서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과 프로이드 등에 의한 과학적 발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처참한 전쟁 폐해 및 자연 재해, 2차대전 이후 공산치하의 대량 학살사건 등으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성서에서의 그 위풍당당한 만군의 총사령관 外在 超越神의 모습은 현대에 와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p.90~95)

  2. 그렇다면 침묵하는 외재신, 초월신, 초자연적 신을 넘어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포스트 모던 시대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비록 성서 기자들이 당시의 유신론적 관점에서 그들의 하나님 체험을 그 당시의 유신론적 언어로 표현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체험 자체가 참으로 소중한 영적 체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의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바벨론 유배지에서 겪은 허무한 듯한 하나님 체험을 추체험(追體驗)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존재 깊숙한 곳에 이미 와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새롭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너무나 소중한 예수의 하나님 체험과 바울의 그리스도 체험이 언어적 표현에서는 낡은 유신론적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오늘의 상황 하에서 그것을 다시 새롭게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p.97)

  3. 예수의 하나님 체험은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복수의 신, 정의의 신과는 다른 과격하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예수의 광야 체험을 보면 그는 권력, 금력, 초능력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이 유혹을 성령의 힘으로 이기셨다. 성령의 힘은 예수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힘이다. 이것은 바로 당시 사회의 각종 잘못된 제도, 편협한 신적 관념의 장벽을 허물고 참된 공동체와 새 역사를 엮어내는 內在神의 힘이기도 하다.(p.98)
예수의 하나님은 고통의 벽을 허물고 인간과 공동체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만드시는 분이며 사랑으로 생명의 원천이 되시고 존재의 근거가 되신다. 사랑으로 당신 자신은 비우시되 남은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신이다. 즉 남의 존재를 확장시켜 주고 사랑으로 생명을 더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다. 이런 하나님은 밖에서 개입하시기보다 안에서 뜨겁게 살아 움직이시는 분이다. 개인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인간 존재와 생명을 맑고 밝게 확장시켜 주시는 분이다.(p.99)

  4. 하나님  체험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이미 와 계심을 뜻한다. 전통적 유신론의 틀을 벗어날수록 하나님 체험은 더욱 직접적 체험이 될 수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하는 것은 남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비운 공간에 하나님의 즐겨 찾아오심을 체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존재의 중심이 사랑으로 비워질 때, 바로 그 빈 곳에 즐겁게 자리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예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근거요 우리 생명의 중심이 된다. 사랑이 작동할 때 존재와 생명이 더욱 확장되며 하나님의 현존은 사랑 속에서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러기에 사랑의 삶 속에서 초월과 내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p.101)
하나님 체험과 예수 체험은 시간 속에서 영원을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결코 탈 역사적 환상이 아니며 그 신비한 영원체험은 역사 속에서 버티고 있는 온갖 구조적 장벽들을 허물어낸다. 하나님 체험은 한편으로 영원으로 잇대어주는 황홀한, 초월적 경험이 되면서 동시에 그 영적 동력은 역사적 변혁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체험하고 영원과 시간을 잇대어 살며 기도와 사랑의 실천을 연결시켜야 한다.(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