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요한복음을 읽던 중 11장에서 마르다를 보면서…여지껏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마르다를 사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11:5)”

저는 마르다,마리아와 관련한 구절들을 모두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볼수록… 마르다의 맞아들이는 자세,접대하는 섬김,말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아주 훌륭해
보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믿음도 부족했지만 …
당시 제자들도 마찬가지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매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언니가 일을 하는데 돕지 않는 것도 그렇고…나사로의 죽음에서도 마르다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특히 머리털로 발을 씻기는 장면은 ..사랑의 표현치고는 좀 기괴해 보였습니다.그런데 그 모습들이
단지 이기적이거나 이상하기보다는….상황판단력과 이해력이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죄인이란 표현도 있습니다.그래서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군가 마리아를 괴롭게 할 때마다 … ‘저를 가만두라’라고 하시며 감싸주시고
변론해주시는 이유는…마리아가 온전히 성숙한 모델이라서 그녀를 본받으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투고,대결하고,비난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물론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한일도 함께 전해지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힘을 다해 주님께 사랑의 헌신을 한 마리아을 기뻐하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며 이해하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믿는 수준이라서
아마도 예수님의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말씀도 그대로 믿고…슬피울며 얼른 나가서 향유를 사가지고
와서 장사를 예비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예수님의 죽음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태였을 제자들로서는 그녀의 행동이 황당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그녀가 주님의 장사를 예비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그녀의 지성이나 영성이 아닌…사랑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분명히 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그녀를 전체적으로 ‘온전히 성장한 모델’로 생각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발을 씻겨주시며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며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발을 씻기는 의미는…’서로 겸손히 섬기는 것’과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마음과 물질과 시간을 다해..가족과 친지,이웃을 섬기며 살고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