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죽

내 어린 시절은 상상할 수 없는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인정이 범벅이 되어 엉켜지던 시절이었다. 가뭄 든 들판에 도깨비불이 돌아다니고, 소나무 높은 가지에는 어린아이의 주검이 항아리에 담겨 바람에 흔들렸고. 흔한 약 한 번 못 써보고 홍역이며 천연두, 심지어는 급체에도 사람들이 죽었다.

가난은 얼마나 심했던가. 옷 한 벌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이와 벼룩에 시달리고, 불결한 환경이 가져온 온갖 곰발테기며 피부병은 아이들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영양실조와 추위, 겨울이 지나면 들판 볏짚단 속에는 겨우내 얼어죽은 거지들의 시체가 있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내 친구들도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당시 국민학교라 불리던 학교는 동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는 거리. 그 거리를 아랑곳 않고 배고픈 아이들이 학교로 몰려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주는 옥수수죽을 타먹기 위해서였다.

책상도 없는 맨바닥에서 고픈 배를 주려 안고 기다리던 친구들은 줄을 서서 빈 그릇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받아든 노오란 옥수수죽을 조금씩 핥아먹으며 친구들은 행복해했고, 그리고 그 죽을 먹으며 졸업했다. 공부야 별것 없겠지만, 그래도 제 이름자 정도는 깨우치고 졸업을 하였다.

농사를 짓다 서울로 서울로 떠나가던 친구들. 눈물겨운 60-70년대를 무사히 견디고, 성장하여 마침내 우리들은 옛 국민학교 교정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교실과 옥수수죽을 나눠주던 터에서 우리는 그 시절을 회억하였다.

만약 그 옥수수죽이 없었다면, 우리 친구들 대부분은 무사하지 못하였으리라. 배움도 없었을 터이고 아예 학교 문턱도 밟지 못 하였으리라.
옥수수죽. 바로 미국 원조물자였다. 내 친구들은 이 옥수수죽으로 에너지를 얻으며, 참고 일하여 오늘의 번영을 이룩하였다.

나는 지금 적화통일세력들과 좌파들이 미군철수를 외치는 현장을 보며, 형언할 수 없는 감개에 젖어 있다. 물론 미국이 언제까지 이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자주국방을 통한 자주독립을 바라는 사람이다. 지난 시절 미국의 오만에 분노하고 김동성이의 빼앗긴 금메달에 분노하고, 미국 언론들의 한국 비하 발언에 적개심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옥수수죽을 생각하면서, 나는 또 하나의 미국을 바라본다. 김일성의 천인공노할 동족상잔이 가져온 비극에서, 마침내 우리 이웃과 내 친구들을 구해준 미국 원조물자 옥수수죽. 우리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 죽을 먹고 젖을 내어 우리를 길렀었다.

김일성이 주는 것을 먹고 우리는 살지 않았다. 김일성은 우리에게 한탄과 원한을 심어주었을 뿐, 우리에게 노오란 옥수수죽을 주지 않았다. 만약 그 옥수수죽이 없었더라면, 지금 미군철수를 외치고 있는 좌파와 전교조 아이들도 태어나지 못하였으리라.

미국 원조물자를 먹고 자란 애들이 미국을 타도하자고 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작은 도움 하나라도 감사는 감사로 답하는 것이 올바른 인간일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부덕한 자세 . 핏속에는 미국이 준 옥수수죽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데, 참으로 웃기는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