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1/4회, 2/4회, 3/4회, 4-1/4회를 먼저 읽으시고 사진갤러리를 함께 보시면 더욱 은혜가 커질 것입니다.

아홉째 날(2008. 4. 15. 화요일)
6・7・8로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오는 길에 헤롯이 공동묘지를 포함하여 건설하였다는 안디바성을 지나고 갈릴리 호수의 땜 아래에 있는 하부 요단강 세례터에 도착하였다. 세례터의 물은 흐르지 않지만 썩지 않는다고 하며, 물속에는 팔뚝 길이 메기가 노닐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땜 아래의 동천에서 물세례를 주고 있으며, 주변은 유카리투스가 울창하다. 요단강 땜에 올라와서 다리를 건너는데 내가 아내를 불러 손을 잡고 함께 걷는데 시기한 장로님이 권사님을 부르니 3개월 후 가겠다며 먼저 가라 하시어 모두 웃어 신이 났다. 예수님 당시에는 갈릴리 호수 아래 요단강의 홍수가 범람하여 2~3Km 내려온 지류의 야르테니트에서 세례를 주었던 곳이라며 가리키는데 조그마한 개천에는 물이 말라 있다. 예수님도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단다.(막1:9) 8시 40분 여리고를 향하여 차가 달리는데 유대광야 우편에 헤롯의 궁전이 있었던 알렉산드리움의 봉화산이 보이는데 산꼭대기에는 레이다 기지가 있다. 하부요단강에는 물이 없이 건너편 요르단의 길르앗 사막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시험산은 예수님이 공생애 전에 40일간 절벽에서 금식하고 여리고 앞의 유대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았던 지역으로 사십의 산이라고 하며, 유대광야가 시작되는 곳이다.(마4:1~11, 막1:12~13, 눅4:1~13) 이 산의 정상부분에 시험산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여리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를 가진 팔레스타인자치구로 관리하고 있어 유대인은 들어갈 수 없으며, 구약의 여리고는 가나안 입성 최초의 도시로서 여호수아 군대가 나팔을 불며 7일간을 돌다가 갑자기 크게 함성을 질러 무너뜨렸다.(수6:1~27) 신약에서의 여리고는 와디 캘트 입구에 헤롯왕이 건축하였다는 겨울별장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무너진 대로 방치하고 있는데 건축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 장자가 죽는다고 하여 그냥 둔단다. 헤롯대왕은 피부병이 있어 이곳 궁전에서 올리브기름으로 목욕하다 죽었단다. 시험산 부근에 합한채가 있는데 향기가 좋아서 라헬과 레아가 야곱을 유혹하기 위하여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광야에는 욥이 먹었다는 소금풀도 있다. 엘리사의 샘 또는 슐탄샘이 있는 500m쯤 아래에는 세계 최대의 오아시스가 있는데, 년 간 강수량 50~150mm에 비하면 어디서 나는지 모를 맑은 물이 많이 솟는다. 물의 수질이 나빠 엘리사가 지하수 수원지에 소금을 뿌려서 고친 물이란다.(왕하2:19~22) 주차장 가게에서 아름드리 바나나 한 송이를 사오니 두 순배나 돌려먹고 한 광주리나 남는다. 여리고는 겨울이 없이 따뜻한 곳으로 마을에는 세리장 삭개오가 올라갔다는 뽕나무가 있다.(눅19:1~10) 돌무화과 이 나무는 나이테가 없고 20~30년 수령인데 딴 곳보다 3~4배나 잘 자라서 몇 아름이나 된다. 뽕나무와 비슷하나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해 사울의 열매라 부르며 번식을 못한다고 한다. 길에 있던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는 구원을 얻었던 곳이기도 하다.(마20:29~34, 막10:46~52, 눅18:35~43) 유대인과 서양인들은 메기, 뱀장어, 가오리 아나고 등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지 않고, 소고기와 우유제품, 닭고기와 계란 등 짐승의 고기와 그의 산물을 같이 먹지 않는단다. 클링턴이 와서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서 엘리야의 고향인 디셉(길르앗)을 요르단에 돌려주었는데 거기서 석유가 난단다. 11시 15분 사해사본이 발견되었다는 쿰란을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이곳은 AD68년 당시 가이샤라 로마총독이 쳐들어오므로 키부츠 공동체가 성경을 연구하고 기록한 책들을 곡식항아리에 넣어서 동굴 집 안에 묻어두고 피난하였는데, 1947년에 베두인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서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 사본을 발견하여 고고학자에게 전해짐으로서 유명해졌다. 쿰란 동굴에서는 BC2세기경의 사해문서와 정경주석들이 발견되었는데, 그때까지는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사본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었지만 이는 무려 1100년이나 앞선 BC100년 전후에 기록한 구약성서 사본이다. 20세기 최고의 발견으로 전시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12시 정각에 우리말로 안내방송을 한다. 동굴 11개가 절벽 곳곳에 보이는데, 첫 번의 동굴에서 이사야 66장을 발견하였고 4번째 동굴에서 많은 성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양피에 갈대 잎으로 글을 썼는데 더 이상 늦었더라면 판독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키부츠들은 예루살렘에는 어둠의 자녀라 하고 스스로는 빛의 자녀라 칭하며, 들에서 길어온 물로 하루 2번 정결의식을 하고 성경공부에 열중하면서 여호와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단다.(사40:3) 야하드(엣세네)집단 공동체가 생활하던 유적지는 계곡 위에 땜을 만들고 흐르는 물을 용수로 이용하였는데 공동체 내부에는 수로를 통하여 물을 탱크에 저장하고 주방, 식당,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과 광야들에서 수확한 곡식을 저장하였던 창고도 있다. 세례 요한이 이곳에 2년 동안 머물렀었는데, 수년 후에 헤롯에게 처형당한 소식을 전하여 듣고 공동체 모두가 슬퍼하였다고 한다. 한식 도시락 점심을 먹고 바로 옆 면세점에서 쇼핑 하였는데, 사해의 진흙과 소금으로 만든 화장품, 대추야자가 있고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하여 비싸고 종류들이 별로 없다. 전쟁을 겪으면서 성경공부와 필사를 하였지만 기록한 성경사본에는 사회적 분위기를 기록한 내용은 한귀절도 없으며, 오직 복음의 말씀만을 기록하여 오늘에 전하여진다. 엔게디는 어린염소의 샘이란 말로서 험준한 요새의 협곡에서 다윗이 군사 6,000명을 이끌고 올라와(삼상23:29) 사울의 3,000명 군사와 마주건너다보며 가깝게 대치하다가 다윗이 몰래 사울에게 다가와 겉옷의 자락을 잘라 가면서도 죽이지 않고 살려주므로 감동한 사울이 다윗을 용서하여 주었던 곳이다. 이곳 산에는 다윗의 샘과 폭포, 동굴이 있으며,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기에 양각을 만드는 들염소 등 동물이 살고 있다. 사해는 염해(창14:3), 동해 또는 아라바 바다라며(신3:17, 수3:16), 염분30%, 길이 78Km, 폭 22Km로 깊이는 북 360m, 남 9m, 소금층이 1Km 깊이로 가라앉아 있단다. 사해는 에메랄드색 땅 꺼짐의 씽크워드이고 해발 -400m 세계에서 제일 낮은 곳이며, 북쪽의 진흙과 남쪽의 소금이 나는 곳이다. 15시 호텔에 도착하여 짐들을 놓고 16시 사해체험으로 바닷물에 들어가 누워보니 염분이 너무 많아 절대로 가라않지 않는다. 머드팩을 하고 수영을 하면서 물이 얼굴에 닿으니 따갑고 특히, 눈이 아프므로 짠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단다. 해수에는 염분 이외에도 이산화탄소, 포타슘 등의 미네랄 오존성분이 많아서 피부병, 무좀, 습진 등 치료에 좋다고 한다. 17시 호텔내의 해수온천에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였다. 19시 30분에 다시 바다에 들어가 염수에서 수영을 하면서 물속에서 소금덩어리 한 봉을 건져 호텔 온천해수에 몸을 씻고 행복한 깊은 잠에 빠졌다.

열흘째 날(2008. 4. 16. 수요일)
이날은 5.5・6.5・7.5로 일찍 식사를 하고 군사적 요새인 마사다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맛사다는 BC35년 에돔 족속 헤롯왕이 건설한 바닥높이 395m, 길이 660m, 광폭 220m로 만든 고구마 모양의 요새 궁전이다. 헤롯이 로마로 떠나면서 신하 800명과 아내・가족들을 피신시킨 도피성이다. AD66~73년 유대반란 시 시카리란 열심당원들이 점령하여 로마군 후레비우스실바가 군사 8,000명을 이끌고 와서 정복전쟁을 벌이면서 3년 동안 에워쌌다가 서쪽에 유대인 600명을 동원하여 측면에 비탈을 만들고 성 위에 올랐더니 유대인 967명이 민족적항쟁으로 노예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10명이 모두를 죽이고 마지막 E. 벤야이르 장군이 나머지를 죽여 집단자살한 곳이다. 19세기에 에디워드 로빈슨이 발견하며, 유대인이 적국에게 굴복하지 않는 의지가 서려 있어 지금도 군인, 학생 등과 세계인이 방문하여 정신무장 교육을 받는단다. 올려다 보이는 요새는 해발이 지중해와 같으나 정면으로 걸어가면 2시간, 측면 비탈로 30분간 걸리나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으며, 아래쪽 성벽밖에는 로마군의 주둔지 6군데가 남아있다. 올라가서 보니 헤롯의 부성, 행정청사, 곡식창, 목욕탕, 열심당원의 회당과 군영, 파수대, 수로를 연결한 물웅덩이가 있다. 궁궐은 벼랑 끝에 바위를 깎아서 상・중・하 건물로 건축되었으며, 각각이 요새 중의 요새로 만들어져 있다. 곡식은 올리브, 대추야자, 보리, 밀 등을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여 상하지 않게 했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대추야자를 심었더니 발아하여 생육하고 있다고 한다. 성벽은 여리고의 라합의 집 같이 방의 바깥벽이 무너지면 안쪽 벽이 성벽이 되었으며, 지방섭취를 위해 비둘기를 사육하기도 하였단다. 전쟁에서 식량이 남았음을 보이려고 한 군데 곡간을 남겨두고 태웠으며, 후세에 알리고자 할머니 2명과 어린아이 3명을 살려두었다 한다. 유대인은 전쟁에 많은 민족과 혼합되고 1980년에는 이디오피아에서 3,000년 전 솔로몬의 자손 60,000명이 이주해옴으로서 현재 그 정의는 혈통보다도 믿음이라고 한다. 소금산은 9시 10분 출발하여 40분쯤 지나서 이르니 진노한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에 유황불로 멸망시킨 곳이다. 성들은 바다에 잠기고 뒤로 돌아보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 오늘도 서 있다. 소금산은 사해가 솟은 이회토로 12Km나 형성되어 있다. 굴러 내린 바위덩이의 깨진 조각이 소금덩어리 그 자체라서 기념으로 몇 개씩 주어왔다. 고대인은 노동의 임금을 쌜러리 또는 솔트라 하며 소금을 지급하였으므로 오늘의 쌜러리(맨)의 어원이 되었단다. 소돔 사과는 사과같이 생겼지만 눌리면 펑하고 터지면서 독이 나와 사람이 기절하게 되는 독 사과인데 백설 공주가 먹고 잠에 빠졌던 사과라고 한다. 가나안은 동편사해 쪽에서 서편의 지중해로 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브엘세바는 사해 남쪽으로 년 간 강우량이 250mm로 적어 산지에서 잘 사는 낙타와 나귀, 양, 염소를 키우고 있고, 이스라엘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 하는 것은 헬몬산에서 사해남단 신광야까지이고, 헤롯대왕 궁전은 (헤로디움)예루살렘, 가이사랴, 여리고, 알렉산드리아, 맛사다, 마케루스 6곳이다. 10시 20분에 성경에 나오는 남방의 네게부광야 휴게소에 들렸다가 차를 달리면서 지금껏 찬송하던 것과는 달리 돌아가면서 각자 성지순례의 소감을 이야기하기로 하였는데 스쳐가는 창밖의 전경에는 사해 소금공장이 지나간다. 와다 럼은 모양과 색채가 아름답게 빛나고, 아라바광야의 새까만 화산재와 베두인족 목장들이 보인다. 11시 50분에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때 물을 마셨다던 욧바다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으며, 식당에서 테마르란 대추야자를 구입하고 3불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13시 출발하여 30분 이스라엘 최남단 도시 엘랏 타바국경에 도착하여 14시 전품목에 대한 Tax검사를 마치고 세금환불을 받아서 15시 10분 이집트 입국 스탬프를 받았다. 이집트는 썸머타임 해제로 15시 30분인데 차가 에어컨이 고장이라 타고갈 수가 없다. 김성민 Guide 섭외로 다른 차를 바꿔 타고 갔다. 바란광야를 지나고 16시 30분에 수르광야의 휴게소에서 15분 쉬고 나서는데 갑자기 경찰이 에스코트하여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중동의 사막은 바위산 85%와 모래가 15%인데 97년도 베두인족이 출몰 이후부터 경찰이 감시를 하며 더러 출동을 한단다. 이집트 공무원의 보수는 가정부, 운전기사와 같이 월 10만원이며, 3인 가족 전기료가 월15,000원, Gas가 월3,000원정도이며, 우리교민은 6~700명 정도가 있단다. 이집트인은 시키는 대로 잘해도 자발로 못하며, 물건은 가짜도 가짜지만 진짜도 가짜 같단다. 수르광야는 모래바람이 심하여 도로에 모래가 쌓여 있으며, 수에즈 운하가 가까우니 검문하느라 차가 밀려 지체된다. 운하는 총길이 4.5Km이고 해저만 1.5Km라 하는데, 지나자마자 망고주스를 먹었던 가게에 들러 잠간 쉬며 가죽낙타 한 마리를 샀다. 17시 30분 카이로 시내 한인들이 사는 교마다 지역 아리랑식당에서 낙지볶음, 불고기, 구운 조기, 상추쌈 등으로 맛있게 식사하였다. 19시 공항에 도착해 면세점에 들르니 살만한 물건들이 없어 서성이다 11시 30분 6번 Gate에 집결하여 대한항공에 탑승하였다.

열하루 날(2008. 4. 17. 목요일)
비행기는 고도 1,200m, 속도 12,000Km/h 우랄산맥, 모스코바, 알타이산맥을 지난다. 기내에서 식사를 하고 졸다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7시간 시차로 17시 40분이다. 우리는 짐을 찾고 공항에 둘러서서 좋은 여행사와 유능한 Guide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성지순례 11일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은혜와 축복으로 인도해 주셔서 보람과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드렸다. 성지순례로 출애굽 한 사막 광야의 길을 답사하며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 발자취가 역사적인 사실임을 확인하고, 헤롯왕 권세가 강성하여도 하나님의 권능 가운데 세상적 역사에 동참하여 연출하였고,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였던가를 볼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그 나라와 그 의를 성취하시려는 열심과 신실하심을 확신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육신이 되어 직접 오셨던 성경말씀이 사실로서 역사위에 생생하게 나타나고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을 받고 있는지 발로 뛰며 눈과 귀로 가슴에 새겼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은 그리스도 날에 우리를 자랑하게 하시려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우리 죄를 사하시는 섬김의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하나님 구원하심으로 그 사랑 안에 끊어질 수 없으며, 이제 나그네가 아닌 은혜와 축복을 입은 천국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하여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며 용서와 사랑을 더하여 거룩하고 복 있는 자로 서게 하시기를 믿습니다.  – 아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