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1/4회와 2/4회를 먼저 읽어보시고 가족사진실에서 사진을 함께 보시면 은혜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마중을 나온 한국인 Guide 이호일 목사님과 ‘살라마리 콤’(너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인사를 나누고 여리고성을 옆으로 처다 보며 바다보다 낮다는 알렘비 평원을 달렸다. 아랍인 기사가 운전하는 차가 좋지 않아 오르막길에서 가지를 못하고 멈추어 섰는데 우리는 내일에 차를 바꾸자고 Guide 이호일 목사님께 이야기하고 기다리다 출발했다. 베다니 교회에 들리니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던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오라비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려내신 무덤을 보는데 입구는 좁고 아래로 10m쯤 내려가니 석관을 두는 곳과 제단을 마련한 지하 동굴의 무덤이다.(요11:1~16)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랍국가와 수차례 전쟁을 하다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1993년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인구110만명)와 자치협정을 맺어 화합과 평화를 모토로 정착하였다. 이스라엘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면적은 골란고원을 포함하여 남한의 1/4.5로 강원도 크기이고, 인구는 596만명 중 500만명이 유태인이고 나머지는 아랍인과 소수민족이다. 의회민주정치로 국회의원이 선출한 대통령과 정부수반이 있으며, 집단농장으로 공동생산 공동분배 하는 키부츠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모사브가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국경같이 막아놓고 있으며, 가자, 지구에서 요르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치구에서 나오려면 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유대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국민소득 25,000불이며, 화폐는 성경에 나오는 세결로 3~4세겔에 1달러씩인데 가게마다 달리 적용한다. 석유가 나지 않으나 아랍국가가 팔지 않아 리터당 1500원하며, 공산품이 비싸고 화장실 사용은 돈을 낸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뉘어 동예루살렘은 아랍글씨로 간판이 씌어있고 지붕에 까만 물통이 있으며, 서예루살렘은 유대인이 거주하여 지붕에 하얀색 물통을 얹어 놓았다. 예루살렘성전은 솔로몬 시대에 건립하였으나 느부갓네살의 파괴-이스라엘 귀환 재건-로마 헤롯왕 점령 확장-로마 티투스 장군 파괴(통곡의 벽 남김)-콘스탄틴 황제 기독교 건물 재건하고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님 무덤 발견-회교국 오마르왕이 점령(회교사원 숭배)-1099년 십자군 기독교 건물 건립-1187년 살라딘 모슬림의 군대가 들어와 회교국 에랍사 모스크(거룩한 성소) 재건-1516년 오스만 터키군이 점령하여 성벽을 건축하였는데 예수님이 왕이 아니라고 무덤을 성 밖에 두고 축성-1961년 6월 전쟁 때에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예루살렘의 성전 되었다. 현재 4구역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정교회로 나뉘어 있고 3개 교단이 성지로 순례하며,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인구는 6만 명이 거주하였단다. 15시 어제의 공원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의 한식 도시락을 먹었다. 주변에서 고기를 굽으며 식사하던 주민들이 소고기를 한 점 주어 먹어보니 맛이 있다. 지엄나무 가로수 길을 달리는데 이는 돼지 또는 가난한 피지족 사람이 먹던 열매란다. 양무리교회는 목자들이 양을 치며 생활하던 동굴이 있으며, 들판교회는 예배당 중앙에 설교단상이 높게 있는 고대 정교회 양식의 내부로 꾸며있고, 우리는 기도를 하였다. 16시 30분 유다지파의 땅 배들레헴에 들렸는데 히브리어로 빵집, 아랍어로 고기집을 의미하며 원명은 에브랏이다. 헤롯왕 때에 그리스도 예수님이 탄생한 곳이고,(마2:1) 야곱 아내 라헬이 장사된 곳이기도 하다.(창35:19) 요셉이 다윗 후손이라 인구조사를 받기 위해 이 성읍에 왔다 예수님이 마굿간으로 쓰이던 동굴에서 태어났다.(눅2:8~14) 예수탄생교회는 아이보리색 원석으로 동굴 위에 지었고, 겸손의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는데, 순례 객이 많아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 좌측의 성 케터린 교회가 매년 12월 25일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예수님의 탄생 후에 헤롯왕이 명령하여 장자 약100명을 죽여서 묻은 무덤위에 요셉이 꿈에 천사의 계시를 받아 제단을 쌓았다고 한다. 그 날도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며, 겸손의 문 입구가 좁아 복잡하다. 안에는 은으로 표시된 탄생지점이 있으며, 우리는 탄생한 자리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건너편에 말구유가 있고, 옆의 지하에는 성경신학자 제돔이 수종 3명을 데리고 30년 동안 성경을 번역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증거 하였던 곳이다. 베들레헴 교회의 바닥은 1700년 전에 모자이크로 만들어 졌으며 기둥은 800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로마제국은 BC8세기부터 AD15세기까지 2,300년간 유지되면서 서로마가 700년 동안 유지되었는데 예루살렘성은 16세기에 건설하였단다. 19시 예수탄생교회를 출발하여 Hotel로 향하는 길가에 검은 양복을 입고 검정색 미망덕 모자를 쓰고 회당으로 향하는 유대인들이 더러 보인다. 이들은 아침, 저녁 하루 3시간씩 예배하며 피임은 죄악으로 생각하여 아이를 많이 낳는단다. Renaissance Jerusalem Hotel에 도착하여 20시에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여섯째 날(2008.4. 12. 토요일)
7・8・9로 출발하여 감람산이 보이는 쪽으로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성 성문에 갔다. 예루살렘성은 원래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다가 밖으로 나오시며 ‘돌 하나라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지리라’ 하셨던 이곳의 모리아산 정상에는 이방인이 세운 황금색 돔 회교사원이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던 곳이며 솔로몬의 성전이 있던 곳으로 691년 당시 예루살렘의 통치자 압텔 말리크가 황금사원을 건설했고, 황금성, 거룩한 성, 평화의 성으로 UN 감시로 이스라엘이 치안을 맡고 있다. 감람산은 해발 710m로 예루살렘 동편 기드온 골짜기 건너 있으며, 동쪽에 여리고와 요단 골짜기로 비탈져서 있다. 기드온 골짜기에는 압살롬의 무덤과 러시아의 정교회가 있으며,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먼저 나팔이 울릴 것이라 믿고 있는 곳이다. 9시 20분 우리는 높이 20m 성벽의 스데반문(사자문)으로 입성하였다. 이 성문은 성경시대에 병자들과 양들이 통과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베데스다 연목은 십자가의 길을 따라서 다다르며 저 아래 계단이 있고 그 밑에 두 개 직사각형 커다란 연못에 물이 흐르는데 흙을 성토한 곳을 발굴하였기 때문에 지면이 높아졌다고 한다. 병자들은 안식일에 병 고침을 받기 위해 몸을 씻고 양들은 제물로 쓰려고 깨끗이 씻었다고 한다.(요5:2) 주변엔 빨갛게 핀 백합이 병 고침 받은 옛 영혼이라도 되는 듯 도도히 뽐내고 있고, 에셀 나무가 사막의 소금 끼도 없을 절벽 끝에 붙어 잎으로 물을 빨며 자란다고 한다. 안나의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태어났던 어머니 안나의 동굴 집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우리 일행들은 잠깐 단상 앞에 둘러서서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를 합창하였는데, ‘나 같은 죄인’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길을 걸어 감람산 근처에서 들어오는 동문 앞에 다다르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감람산에서 잡히시어(마26:36~56, 막14:32~50, 눅22:39~53) 동굴감옥에 갇히셨다가 제1지점의 빌라도법정(현재 알 오마리야 초등학교 안뜰)에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제2지점 채찍질성당에서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씌우고 자색의 옷을 입히며 때리고, 재판성당에서 유월절 명절에 십자가의 형벌을 선고했던 가바다(박석)이다.(마27:15~26, 막15:6~15, 눅23:13~25, 요18:39~19:16) 이사야서 53장을 낭독하고 나오는 길에서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때~’를 찬송하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에치호모(Ecce Homo = 자, 이 사람이다) 아치문을 통하여 골고다(해골의 장소)로 걸어갔다. 골고다는 복잡한 시장 골목의 좁은 길이라 지나가는 행인과 순례자가 마주 부닥치고 상인들은 물건을 들어서 팔려고 1달러! 5달러! 외쳐대며 옷소매를 끌어대고 붙드는데, 앞에 가는 일행을 놓칠 새라 재빠르게 걸었다. 예수님은 40Kg의 십자가를 어깨에 둘러메고 가셨다는데 제3지점에서 첫 번째로 쓰러지셨다는 피아돌로르사(공고다의 언덕)를 지나서(애1:16) 제4지점은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이 만났던 곳으로 여기는 바로 마리아의 집 앞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본다.(눅2:34) 10시 30분에 제5지점에 다다르니 이곳은 알렉산더(나중에 초대교회의 수장이 되었다고 함)와 루포 아비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운 곳이다.(막15:21~22, 요23:26) 제6지점은 헬루증 환자 여인 베로니카가 고된 채찍을 같이 맞으면서 구원확신을 가지고 손수건으로 피를 닥아 주는데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여인의 입었던 옷에 찍혔다는(민6:25) 언덕이란다. 제7지점은 예수님이 두 번째 쓰러지신 곳으로 길이 좁고 경사가 급해지는 시장이다. 제8지점은 예수님이 고통가운데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던 곳으로 우리는 잠시 동안 기도를 하였다.(눅23:28) 제9지점은 예수님이 세 번째 쓰러지신 곳으로 곱트교회의 입구 기둥에 표시되어 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인파가 장사진을 치고 있어 우리는 여기서 되돌아 시장으로 다시 내려와서 다른 길을 통해 무덤 뒤편에 다다라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무덤성전은 AD325년 콘스탄틴 대제의 명으로 새로 세워졌다가 페르시아의 전쟁으로 파괴되고 재건되며 1009년 칼리프 하킴으로 다시 파괴되고 1149년에 건축되었단다. 이후의 지점들은 무덤교회 안에 위치한 곳이며, 예수님의 무덤은 콘스탄틴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던 중 꿈에 계시를 받고 알게 되었다고 하며, 무덤성전은 ① 예수님의 빈 무덤 위의 아나스타시스라는 둥그런교회, ② 중간에 십자가 처형장소를 표시하는 칼바리움(골고다) ③ 제일 위에 마투리움이란 웅장한 바실리카 세 개이다. 제10지점은 예수님이 옷 벗김을 당하시던 곳으로서 무덤교회의 안에 위치한 곳이다.  제11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 모자이크가 고난을 묘사한다.(눅23:33) 제12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곳이며,(마27:50) 제13지점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몰약, 노회, 향유를 발라 세마포에 염하던 곳이다.(막15:46) 제14지점은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이 있어 대성전이 세워졌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시며 부활하신 곳, 예수님의 무덤성전 또는 예수님의 부활기념 성전이다. 안쪽은 예수님께 무덤을 내어 주었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있고,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 어머니 마리아 및 살로메가 무덤 밖에서 울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곳(막16:36)이 바로 옆이다. 돌아 나오는 길옆에는 로마병사 한 사람이 해면에 포도주를 적셔서 마시우고 ‘엘리야가 와서 내려주나 보자’고 하는 마지막의 희롱까지 당하시며, 핏자국이 묻었던 쇠사슬이 전시되어 있다.(막15:36) 십자가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위로 추슬러야 숨을 쉴 수 있다는데 형틀에 달린 시체가 금요일에 있으면 불경하다고 생각하여 예비일 다리를 처서 꺾으므로 빨리 죽게 하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확인하였다고 한다.(요19:31~37) 북문으로 나와 통곡의 벽에 가보니 성전하고 마주 닫는 서쪽 성벽인데 로마가 성벽일부를 상징적으로 남겨두어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에서 모자를 쓰고 들어가서 기도하는 곳이다. 유대인들은 1947년 귀환하였으므로 이벽은 이제 유물에 불과하나 이슬람 회교도들은 귀한을 염원하며 매년 기도를 하고 있단다. 시온산 비탈을 내려가 겟세마네에서 오셔서 이곳 언덕길을 오르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알면서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고 한걸음 두 걸음 옮기심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다윗성에 12시 들리니 이는 다윗의 시온 산성으로 오순절에 죽었던 다윗왕의 무덤을 옮겨 놓았던 곳이며, 모리아 산에서 발원하여 실로암 연못까지라고 한다.(삼하5:7~8) 옥상에서 저 아래 우리아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고 있을 집을 찾아보았다.(삼하11:2~4)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이 유월절 마지막 식사로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곳으로 원래의 모습대로 14세기 복원하였으며,(마26:17~29, 막14:12~26, 눅22:7~23, 요13:21~30)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곳으로(행2:1~12) 우리는 기도를 하였다. 12세기 건축양식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하고 있다하니 시대별 정복자에 의한 희비라고 생각된다. 다윗의 무덤에 가보니 가묘를 만들어 검정 휘장을 덮었는데 묘지는 성 밖에 있단다. 12시 30분 성을 나와 가야바 대제사장집에 가니 이곳은 예수님이 죽음을 예언하셨고, 예수님을 아느냐고 묻는 물음에 베드로가 3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하였던 곳이며, 또한 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는 회의를 했던 곳이란다. 가야바 대제사장은 로마의 총독이 가이샤에 거주함으로서 이곳을 통치하는 왕의 권능을 겸하던 자였으며, 집의 구조는 지하1층이 예배당이고, 지하2층에 예수님이 1일 밤 갇혔던 감옥이 있다. 감옥은 바닥에서 5m 아래로 등을 밀어 떨어지면 계단이 없으므로 올라올 수가 없고, 식사는 지하1층 구멍에서 달아 내리게 되어 있다.(마26:45~27:2, 막14:41~15:1, 눅22:53~62, 요18:11~27) 반대쪽 우측 아래에는 가롯 유다가 자살한 곳 파란 깃발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피밭으로 저주 받아 묘지, 오물, 태금 등으로 더러워진 곳이다.(마27:27) 건너에 위치한 모하멧트 신전에서 알라신을 축원하는 스피카 방송이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버스의 주차비 58,000원을 지불하고 13시 어제의 공원에서 한식 도시락 점심을 먹고, 히브리대 전망대에서 예루살렘을 처다 보고 1불에 전경을 샀다. 예수승천교회는 예수님이 부활일로부터 40일 후에 승천하시고 승천하면서 밟아 남긴 발자국을 기념하는 교회로 바닥 가운데 바위가 있어서 만져보았다. 4세기에 지붕 없는 8각형 교회로 건립하였으나 페르시아인의 파괴로 20세기 십자군들이 다시 건립하였고, 1187년에 이슬람교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두려워하여 사원 형태의 돔을 씌웠단다. 주기도문교회는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세상 말기의 징조를 가르치시었던 교회로서 동굴이 있으며, 4세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세운 교회이다. 벽면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66개 국어로 주기도문이 쓰여 있다.(마6:9~13, 눅11:2~4) 벳바게교회는 예수님이 유다광야에서 출발하여 감람산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타고 가셨던 어린나귀가 매어있던 곳이라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맞으러 나가 호산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외침을 받으셨는데, 겸손한 동물 어린나귀를 타고 가는 것은 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요12:12~15)솔로몬의 왕위 즉위식에 다윗이 나귀(노새)를 타고 감을 비유하여 왕으로 상징한단다.  전망대에서 건너다보니 예루살렘성이 한눈에 보이고 아래로 즐비한 유대인 묘지는 30,000불을 기증해야 매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예수님의 깨끗함을 시기해 헤롯왕이 검정색 돔으로 만들었고, 예수님의 무덤은 왕이 아니라고 기독교는 성 밖에 있었다 하고 가톨릭은 성안에 있었다고 한단다. 예수님 예언에 따라 믿는 자 6만명이 요르단 등으로 피난하였으며, 전시에는 인구 20만 내지 100만명이 되었단다. 동문은 황금문으로 7세기 구조물인데 7개 성문중 하나로 예수님이 재림 시 동쪽에서 오실 것이라는 염려로 9세기부터 굳게 닫아두고 있다고 한다. 성 밖에는 아랍인들의 묘지가 빽빽하게 있으며, 아래의 기드론 골짜기는 지금보다 20m 더 낮았다고 한다. 벌레가 먹지 않는다는 백향목을 지나고 내려가서 4,000년 전 무덤을 보았는데 가묘를 썼다가 뼈를 모아 던지면 열조에게 돌아간다며 장사하다가 이후 두개골이나 대퇴골을 골라내서 어른은 큰 돌 상자에 넣고 아이는 작은 돌 상자에 넣어 장사하였다고 한다. 눈물교회는 이태리 안토니오가 건축하고, 정원에는 가시면류관을 만들었다는 성경에서 나오는 측백나무가 있다. 일방통행인 포장길을 걸어서 내려오는데 올라오던 차가 있다.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아랍어로 기름을 짠다는 의미이며, 놀이터만한 동산에는 최고 수령 2,000년 되어가는 감람나무 8그루가 있다. 예수님이 기도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3번씩이나 깨어 있으라고 당부했던 곳이다.(마26:36~44, 막14:32~42, 눅22:39~46) 만국교회가 바로 옆에 크게 있는데 8개 국가가 건축하였음이며 고뇌교회라고도 한다. 비잔틴시대 기둥교회를 교황 요한2세가 넓히면서 다시 명명하였으며, 이태리 건축가 안토니오 바를로치가 설계・건축한 반구형 천장이며, 벽면에 예수님이 바위 위에 앉아 기도하시는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로 장중하게 그려있어 전면 바위에 꿇어 기도하였다. 동정녀 마리아의 무덤교회가 위에 있는데 지하 동굴에 요셉과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  마당가에는 올리브기름을 짜는 연자 맷돌이 있는데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의미란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교회는 길옆에 있는데 16시 차를 타고 다윗성-가야바 대제사장 집-마리아 영명교회(카도릭에서는 마리아 승천교회라고 함)를 뒤로하고 왼쪽 아래 힌놈 골짜기에 있는 쉰들러의 무덤을 바라보면서 우편에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서원하였던 발상지인 마운틴 세렛을 보았다. 16시 30분에 세례 요한의 고향으로 ‘위대한 동리’의 요한의 탄생교회는 에인켈렘에 있는데 어머니 엘리사벳의 친척 혹은 병원에서 탄생한 것이란다. 요한은 예수님과 고난을 동행한 자로(마3:1~12, 막1:1~8, 눅1:5~25, 36, 57~66, 눅3:1~20, 요1:19~34) 건물 입구에는 4세기에 건축한 흔적이 있으나 1963년 재건축하여 지하 동굴은 보존되어 있다. 이곳의 다락방은 철근콘크리트 지붕의 옥상을 말하며, 돌무화과(오디가 열리는 뽕나무) 나무와 유채 비슷한 계자씨 식물이 보인다. 에인은 우물을 케렘은 포도송이를 나타내는 말로 부촌이고 공기가 좋으며, Cafe들이 많고 연인들이 Date를 하는 곳이라기에 도로변의 의자에 앉아 휴식하면서 2불에 자몽 3~4개씩 갈아 주는 즉석 오렌지주스를 사서 먹으니 새콤・시원하여 힘이 불끈솟는다. 요한의 집은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이 살았던 곳으로 우물이 옆에 있으며, 마리아방문교회는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 기념하는 곳이며, 건너편엔 마리아의 샘물이 있는데 로마의 병정들이 세례요한을 죽이려고 하자 바위가 솟아 가로막아 줌으로서 안전하게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할 수 있었다고 한다. 17시 40분에 출발하여 18시 20분 실로암에 도착하니 이슬람 샤밧(안식일) 토요일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이 물은 히스기야왕 때 지하 바위층을 파고서 기드온 샘으로부터 터널을 통하여 흐르는 것으로 30m 아래의 위치가 맞는 곳이라며 개발 중에 있으며, 예수님이 보내어 소경 나자로가 병 고침을 받았던 곳이다.(요9:7) 모리아 산, 즉 시온 산의 지하로 흘러들어 전시에는 예루살렘이 유용하게 사용하였던 샘물이다. 버스를 타고서 다시 다윗성-가야바 대제사장 집-마리아 영명교회-쉰들러 리스트 무덤을 지나 Gas실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죽어 예수님 사랑을 실천했던 야노스 코르작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코네셋이라는 국회의사당을 지나 18시 40분에 Renaissance Jerusalem Hotel에 도착하였으나 아랍인들의 샤밧 출근으로 방 배정이 늦어 지하 방을 빌려 1시간 기도회를 가지고 저녁을 먹고 20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