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성지순례 1/4회 출애굽편(애굽에서 시내산까지)를 먼저 보시고, 남포가족사진실에서 사진도 함께 보세요.

요르단에서 만난 한국인 Guide 안지훈 집사는 이곳에 5년 되었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요르단은 구약시대 에돔(사해남부), 모압(사해동부), 암몬(남요단강 동편)지역을 영토로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여호수아의 영토 아래로 르우벤의 갓 지파와 므낫세의 반 지파에 분배하였던 곳이다.(신29:8) 나바트와 로마시대를 거쳐 주후 7세기 이슬람화 되었고, 후세인 2세에 의하여 입헌군주제에 양원제를 시행한다. 면적은 남한 크기이고, 인구가 600만 명에 70%가 팔레스타인이고, 수도는 암몬으로 우리와 1962년 국교를 맺었다. 인접한 국가로는 위로부터 시리아, 이스라엘,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홍해 건너편 이집트의 5개국과 경계하고 있다. 아랍어와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고 있는 22개국과 이란어와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을 합친 아랍의 23개국 중 장자의 국가로 행세한다. 아랍국 중에서 기독교에 가장 우호적이고 치안이 좋으며, 교육수준이나 물가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이슬람교는 ① 알라신에 고백하고, ② 하루에 5번 기도하며, ③ 구제를 해야 하며, ④ 평생에 한번 성지를 순례해야 하고, ⑤ 라마단을 지켜야 한다는 5대의 강령이 있다고 한다. 입국하자 맞이하는 아카바 항구는 면세도시로 산을 넘으니 닭을 사육하는 양계장이 있고, 사막을 개발하는 키부cm(농장)가 보인다. 기후는 11~3월의 우기는 영상의 온도로 비나 눈이 오지만 4~10월의 건기는 기온이 20~30도 정도로 건조하나 그늘은 덥지 않으므로 썬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면 여행하기 좋다고 한다. 와디 럼(Wodi Rum)은 사막 가운데 솟아 있는 갖은 모양의 만물상 사암이며, 영국의 로렌스 장군이 아랍군을 이끌고 터키에 대항하던 전쟁에서 낙타가 물을 안 먹고 7일간 견디는데 착안해 승리한 곳이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저주토록 발람이 발락의 부탁을 받고 달려왔다가 하나님의 저지를 받고 회군하여 돌아간 곳이라고 한다.(민22:21~30) 베두인 마을이 보이는데 이들은 들에서는 벽돌로 집을 짓고, 산간에서는 천막을 치고 목축으로 생활하는데 가난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최고로 높다고 한다. 와디 럼에서 페트라까지는 고대 융기현상으로 바다가 땅으로 솟아 빨간색 흙이란다.(민 20:14~21) 호르산은 1,317m로서 아론의 장지가 있으며, 모세가 아라바 신광야를 가기 위하여 에돔에 사신을 보내어 세일산을 거쳐 가데스 바네아까지 지나가도록 간청하였으나 거절당함으로 방향을 돌려서 아모리 족속 산지로 갔다고 한다.(신명기1:1~8) 요르단에는 한국교민 350명이 살며 그 중 한인교회 두곳 120명이 선교사로 있는데, 금요일 예배하고 비빔밥을 먹으며 토요일은 반공일이란다. 선교가 불법이라 아랍인이 알게되면 명예살인을 자행하므로 위험하다고 한다. 16시 10분 페트라를 지나 Grand View Hotel에 도착하여 19시 저녁식사를 하였다. 방에는 화장실의 변기 옆에 비데가 있는데 오른손은 밥을 먹을때 사용함으로 왼손으로 좌욕 시에 씻는데 사용한단다.

넷째 날(2008. 4. 10. 목요일)
오늘은 6・7・8로 호텔식의 아침식사를 하고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의 무대였던 에돔땅 Petra에 9시 30분 도착하니 바위 또는 성경속의 Sela라고 부르는 곳이란다. BC4세기부터 건설된 낙타 카라반의 주인 나바테아인 왕국의 산악도시 분지 수도다. 갈라디아서1:16~17 아레다 왕의 이방 아라비아, 사사기1:36 아그립빔(전갈) 비탈, 왕하14:7과 사16:1의 셀라로 표현된 곳이다. 지진으로 무너져서 묻힌 도시를 1812년에 도미니카 수도원장 부르크하르트가 전설 따라 베두인과 함께 발견하여 1929~1958년 발굴・조사하였다. 매표소부터 인파가 몰려서 현지인 Guide가 표를 사서 나누어주는데 말 타는 비용포함 1인당 43불인데 들어가자 말을 타고 가느냐? 마느냐? 모두들 일행을 점검하고 찾으며 시작부터 어수선하고 분주하다. 갈 때나 올 때 중 한번 6~7백m를 말을 탈 수 있는데 팁이 3불이라는데 올 때에 말을 타기로 하고 조별로 걸어갔다.(올 때는 팁도 5불이고 말이 없어 타지 않음) 입구부터 와디무사란 높은 절벽의 바위산을 깎아 만든 대협곡에 차가 다닐 폭의 돌 포장 시크 길을 따라 절벽 아래 토관수로가 있는 사암의 골짜기다. 들어가는 양쪽 절벽마다에는 지층의 무늬가 형형색색으로 새겨진 쌘드아트가 있으며, 키스 바위, 돌비석, 코끼리 바위를 지나면 정면에 바위신전이 마주한다. 신전은 사암을 파서 폭43m 높이80m 깊이23m로 만든 2층 건축물로 조각되어 웅장할 뿐만 아니라 새겨진 조각이 섬세하고 너무 아름답다. 이집트 여성적 신을 12개 기둥으로 상징하고, 6개 기둥머리는 고린도양식으로 조각되어 말을 탄 두 제우스 왕자가 있고, 12봉우리에 7잔과 30송이 무궁화(원산지 시리아)가 있다. 내부는 제사・종교의식・도서관으로 왕의 부장품을 보관하는 알카즈네(보물창고)와 그 위에 항아리가 있었다고 한다. 시크는 폭 50~100m, 총길이가 1.6Km인 대협곡 작은 분지로 되어 있고 7,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야외원형극장이 있으며, 주거, 무덤, 공중목욕탕으로 이용하였던 동굴들이 있다. 하늘 틈 사이로 비췬 햇살에 시간을 따라 변하는 붉은 기암절벽은 그 아름다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눈에 담아 머리에 새기며 그저 아~! 하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페트라는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카의 교차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나바테아 인들이 사막 대상로를 지배하여 동부의 향유 등을 지중해 국가와 교역하려는 행상이나 성지 순례자 집단의 시크 길을 안내하며 번영을 누렸던 캐러밴과 구리광산의 제련업 등으로 살아온 도시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므리바(무사) 물이란 길섶에 있는 ‘모세의 샘물’을 11시 반 보았는데 성경에서 읽었던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목동의 치기로 지나는 양떼들이 많이 보이는데 염소는 흩어서 풀을 뜯게 하고, 개는 한곳으로 몰아가고, 나귀는 앞장서 이끌어 간다. 밭에 감람나무(올리브유)나 밀 등은 지중해의 거센 바람으로 모두 동편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암몬 수도의 인구는 280만 명으로 아카바에서 316Km, 페트라에서 240Km 길인데 출애굽기 3장, 6장, 8장, 34장과 민수기 21장, 32장에 나오는 출애굽의 통과지역이다. 세렛 골짜기를 지나고 슐탄 휴게소에 들러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밥상에 상추가 나와 알랑미 밥에 갖고 간 고추장을 비벼서 오이와 풋고추를 찍어 함께 먹으니 꿀맛이다. 아르논 골짜기는 13시 50분에 출발하여 산등성이를 따라서 차가 달리는데 곳곳에서 토네이도(회오리)가 휘어 감긴다. 이스라엘에 기업으로 주신 모압 평지에 가서 저 건너 고대 롯의 자손 아모리 족속의 성읍이었고, 르우벤 지파의 영지이며, 레위인의 므라리 자손에게 주신 기름진 그데못 평지를 처다 보았다. 경계를 이루는 골짜기는 험준하고 100m쯤 아래로 깊은 계곡이 있으며, 상류에는 땜이 있어 하류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왕의 대로(Kings Hiway : 민20:17, 민21:22)를 따라서 헤스본을 지나 찬송가 222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을 찬송하였다. 왕의대로는 3,800년 전 이집트 투트모스3세인 바로왕이 건설하였는데, 에돔과 모압을 통과하여서 다마스커스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술탄의 길로서 왕이 살 수가 있는 기름진 땅이다. 모압의 땅인 디반(성경 디본)지역의 모압왕 뫼사비문에서 발견되었다. 14시에 르우벤 지파에게 준 그데못 광야에 이르니 이곳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처음으로 전투를 겪었던 곳이다. 해발 845m 고지대에 마케루스가 높이 있는데 헤롯왕이 유대인의 추앙을 받기 위하여 만든 요새의 별장으로 여름궁전이다. 헤롯왕이 동생 빌립의 아내에게 장가를 들어서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세례 요한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데려와 감옥에 두었다가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 헤롯왕에 소원하자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서 내어줌으로서 순교한 곳이다.(마14:1~12, 막6:14~29, 눅1:57~66, 눅3:19~20, 눅9:7~9, 요19~28) 수도암몬에 도착하여 마다바 시장을 지나는데 길옆 상점에는 과일 등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시가지에는 57층 쌍둥이 건물을 건축 중이라는데 깨끗하고 아름다운 3~4층 주택이 밀집하여 번창한 도시의 느낌이 든다. 암몬은 고지대로 여름 동안 시원하여 휴양지가 되고 이때에는 인구가 3배로 늘어나면서 밤 문화가 발달하며, 공무원은 9시 출근하여 14시 퇴근하였다가 다시 17시에 출근하여 20시에 퇴근한단다. 이곳 남자가 결혼 때 지참금을 준비하는 풍습은 이혼 시에 여자가 먹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장대책이라고 한다. 요르단에는 한국차가 38%이고, LG전자가 냉장고에 자물쇠를 달아서 인기가 높다는데 어린이 개방과 가정부 도난에 예방이 되어서란다. Jerisalem International View Hotel에서 19시에 식사하고 근처 마트에서 쇼핑하여 과일과 선물을 사는데 화폐는 JD(예루살렘 디너)이다. 이스람교인은 독경을 외우므로 음악을 가르치지 않고, 우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도록 미술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아랍 여인 머리에 쓰는 가리개(쓰개)는 검정이나 흰색에 물방울 또는 핑크색 꽃무늬에 레이스를 다는 등 면직과 모직으로 얼굴을 가린단다. 얼굴 전체를 가리면 차도르, 눈에 망사만 가리면 부르카, 눈만 보이면 니깡, 얼굴과 가슴을 보이면 휘잡이라고 한단다. 이곳에서는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는데 아랍전쟁 때부터 과부를 돌본다는 명분이며, 2번째 부인을 맞이하기 위한 청혼을 하면서 첫째 부인을 보내어 허락을 받아오게 하며 첫째가 가기를 거절하면 이혼사유가 되나 모든 부인들에게 똑 같이 대우해야 한단다.  

다섯째 날(2008. 4. 11. 금요일)
5:30, 6:30, 7:30에 식사하고 출발하여 종려나무(대추야자)의 과수원을 지나가는데, 대추야자는 몸에 열을 많이 내어 추위가 덜해 감기가 없고, 식욕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메드바에 있는 성조지 교회에 들러 모자이크로 제작된 예루살렘 주변 성읍들의 지도를 구경하였다. 교회바닥의 30평 넓이에 200만개의 돌을 박아 6년간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며, 그 중 10평정도만 남아 있는데 이 성경지도의 발견으로 많은 유적지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모압의 성읍들로 르우벤 지파에 할당되었다가(수13:9,16) 다윗왕 때에는 암몬이 지배하였으나(대상19:7) 메사에 정복을 당한 곳이다. 9시 40분 느보산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1933년에 돌무더기에서 발굴하였으며, 정상의 입구는 2,000년에 교황바오로 5세가 성경책 탑을 건립하여 맨 위 예수님, 중간에 사도, 밑에 기부자를 조각하여 놓았다. 정상에서 뒤로 돌아 전망대에 가보니 놋 뱀이 높이서 있고 아래의 아르논 골짜기에는 27Km 떨어진 멀리 예루살렘과 여리고(길갈)성이 보인다. 정상에 비잔틴 때의 교회가 공사 중에 있는데, 우측의 세례식 방은 수리 중이고, 좌측장례와 학습(앞에 가묘)을 하는 방이고, 중앙은 세례교인의 예배당으로 3칸이 있으며, 앞마당 정원 가운데 심은 백향목 열매가 구상나무 비슷하단다. 성경에서 에녹, 엘리야,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으며, 출애굽한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모세는 들어가지 못하였는데 ‘모세가 모압의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와 여리고의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며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며, 모세로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적과 기사와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신 자로 모압 땅 골짜기에 죽어서 장사 하였다’는 증거다.(신명기34:1~12) 느보산은 비스가산이라고도 하며 여리고의 맞은편 요단강 하구 동편 약20Km 떨어진 아바림 산맥에 있으며, 발락이 발람을 소빔 들로 인도하여 단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민23:14) 만일 모세가 죽지 않고 가나안에 건너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단강은 갈릴리의 단에서 물이 흐른다는 의미의 사행천인데 갈릴리에 땜을 막아 강은 말랐으나 이스라엘은 용수의 70%를 해결한단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동에서 서로 건너가게 한 것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이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만남은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만남을 의미 하고 있다고 한다. 느보산 해발800m 고지에서 10시 30분 출발하여 모압 평지로 내려가니 이곳은 해수면 아래 -180m 해발이라 덥기도 하다. 알렘비 국경에 도착하여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요르단 출국을 마치고 이스라엘 국경에서 여권에 입국 스탬프를 찍고 통과하니 13시 30분이다. 이스라엘의 세관에서 짐을 부치는데 Tip을 주었는데도 공공연히 재차 추가로 Tip을 요구하였고, 장애자나 어린이에게도 인권이 없고 무도덕하다. 이스라엘 1등 국민과 축복받은 기독교 국민의 의미지가 무색하며, 물품검사-입국검사-세금납부검사-화물표 검사로 절차도 복잡하다. 마중을 나온 한국인 Guide 이호일 목사님과 ‘살라마리 콤’(너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저자 : 남포교회 최청인 안수집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