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성지순례단으로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을 11일 동안 다녀와서 기행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총4회로 나누어 연재코자 하는데 1회로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피라미드,스핑크스 관광 후에 예수피난교회에서 출발하여 출애굽의 광야 길을 따라 수에즈운하 – 시내산을 거쳐 이스라엘을 지나 요르단 입국까지 입니다. 남포가족사진실의 사진과 함께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기행문)
서언 : 예루살렘 등 성지를 11일간에 순례하고 돌아와서 기행문을 쓰려니 신앙이 약하고 성경지식이 일천한 저로서 먼저 두려움이 앞선다. 여행에서 기록하고 사진을 찍던 습관대로 해온 것을 동행한 여러분들이 권유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편을 들었다. 이 글은 출애굽의 사막광야 길과 예수님의 행적들이 남겨진 예루살렘과 곳곳의 성지를 확인하고 보고 느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체험하고 돌아온 성도 개인의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십시오.

* 첫째 날(2008. 4. 7. 월요일)
오늘 아침은 정말 하늘도 맑다. 나와 아내는 가지고 갈 여행가방 2개와 배낭 2개가 거실 한쪽에 나란히 놓여 몇 주일 전부터 꾸려지고 있건만 새벽부터 분주하고 바쁘다. 10시경에 집을 나서 리무진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12시다. Guide와 약속된 만남의 시간은 13시 30분이라 지하에서 3층까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며 곳곳을 살피고 점심을 먹고 약속장소인 G : 21~25번 홈에 가서 일행을 만났다. 명패를 달고 짐들에 꼬리표를 걸어 14시 30분에 가방을 탁송하고 마일리지를 확인한 후 여유 있게 출국장에 가서 수속을 마치고 나가서 면세점을 돌아보며 쇼핑을 하였다. 15시 40분 26번Gate 앞에 모여앉아 성지순례를 위한 출발기도를 하고, 15시 50분에 대한항공 28번~33번 좌석 줄에 탑승하였다. 비행기는 탑승객 300명가량을 싣고 16시 20분에 이륙하였으며, 우리들은 고국산천을 내려다보면서 환희에 찬 기쁨을 부풀리며 하늘을 향해 높이 더 높이 날아올랐다. 이내 바깥은 양탄자와 같은 구름만이 깔리고 기내에는 음료와 물 그리고 두번의 식사가 제공되었으며, TV에는 안내와 함께 영화 등이 상영되었다. 비행고도 1,200m에 비행속도 12,000Km/h로 서해에서 텐진-베이징-울란바트로-우르무치-알마타-타슈겐트-카스피해-바그다드-지중해-알만수라(나일강 하류)를 지나 21시 20분(12시간 비행에 시차 7시간 늦게 조정함)에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카이로의 야경을 내다보며 내린 우리들은 비행기에서 밤을 지낸 표정들이건만 마중 나온 Guide는 잠잘 호텔을 안내한단다. 화장실은 허름한 아랍인이 돈을 요구하는 듯 서성이고 높게 달린 이곳 소변기가 마음을 긴장시키지만 점원들은 잘생긴 얼굴에다 키가 헌칠하다. (주)기독교방송여행사에서 함께 간 김종환 전무님과 현지에서 나온 한국인Guide 김성민, 아랍인Guide 조지, 운전기사 샤밍과 함께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였다. Guide가 알려주는 준수사항은 ① 화장실은 어디서나 1~3명당 1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② 물은 2리터 1병에 1~2달러를 주고 사서 먹어야하며, ③ 아침에는 6시 기상(Call)하여 7시 식사를 하고 8시 승차하는 하루가 시작된다면서 6・7・8을 꼭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12시 Pyramids Park Inter Continental 호텔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아 가족별로 투숙하였다.

둘째 날(2008. 4. 8. 화요일)
Calling소리에 일어나 샤워하고 짐을 챙겨놓고 7시에 식사를 하였다. 후 불면 날아갈 알량미 밥과 갖가지 빵, 감자, 우유, 주스, 요구르트, 요플레, 닭고기, 사과, 도마도와 오이, 양파, 배추, 커피 등 모두가 맛있다. 8시 10분에 출발하여 기자, 지역의 피라밋과 스핑크스를 보려고 호텔을 나섰다. 이집트는 인구 5,500만명, 동북쪽 지중해와 홍해를 접한 나일강변과 삼각주 이외에 서남쪽의 97%가 사막이며,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교 수니파가 국교로 수도는 인구 1,800만명 카이로다. 한국과 비자면제협정이 되어있다. 구시가지를 달리니 4~10월 건기가 시작되는 때라 기온은 적당한데 거리는 쓰레기가 널려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차림은 살기가 어려워 보인다. 휘발유 기름 값이 리터당 220원으로 물보다 싸다는데 그래 그런지 차들은 많으며 중앙선을 넘나들거나 법규를 지키지 않아 교통사고가 많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제일이란 카이로 대학을 지나는데 10년 동안 임금이 동결되어 교수들이 임금 인상을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다고 한다. 피라미드에 도착하자 세계에서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고왕국 제4왕조 쿠푸왕, 아들 프레왕, 손자 멘카우레왕 거대한 돌무덤이 우리의 앞을 막는다. 시간은 역사를 비웃고 피라미드는 시간을 비웃는다는 속언을 깨트린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왕의 노예로 공역의 고통에서 시달리며 출애굽을 꿈꾸었을 것이다. 내세에 집착한 왕들이 영혼불멸의 사상에서 사후세계를 준비하려고 돌무덤으로 치부하며 자기 무덤을 제가 만들었다고 한다. 피라미드는 4650년 이전에 처음 미스타바 단층건물 모양으로 건축되어 95개가 남아있다고 한다. 쿠푸왕이 건축한 피라미드는 바위 위에 수평을 맞추고 밑에는 크고 위로 갈수록 적은 석회암 돌 무게 2.5t 230만개를 210층으로 쌓았으며, 밑변이 230m, 높이 146.5m에서 9.5m가 파괴되어 현재 137m라 한다. 4각형에 사면각도는 51°52′, 지구반구 43,200초 모형에 북쪽 입구를 통해 북극성을 볼 수 있으며, 내부에는 2/3위의 현실에 미이라가 썩지 않고 보관되어 태양신을 찬양하였다고 한다. 뗏목으로 돌을 10년간 옮기고 10년간 쌓아서 건축하였는데, 각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 것이라도 5°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1년 365일에 윤달을 만든 3,300년 전까지 이집트인들은 1년 360일로 하고 천문학을 연구하여 별의 주기를 측정하고 게자리 시리우스별이 빛날 때에 나일강이 범람함을 알았다고 한다. 뒤 쪽의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무덤을 지켜주기 위한 수호신으로 운모・장석・석영의 결정체인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카프레왕이 전체길이 70m와 높이 20m로 깎아서 만들었단다. 공포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부홀로 사자 몸에 신의 대리인 코브라가 이마에 있으며, 턱수염을 달고 있으나 코는 잘려 나가고 없다. 제작소를 지나 뒤로 돌아가니 투트모스 4세가 꿈을 꾸었는데 눈물에 감사하여 양다리 사이에 돌로 만든 비석를 세워 놓았다. 아미르 향유 판매장에 걸어가서 허브농장과 향신료의 설명을 듣는데 주인의 ‘하!하!하!’ 웃음소리가 인상적이다. 장미, 자스민, 라벤더, 백단향, 민트(박하) 등 향기를 기억하며 구시가지를 달렸다. 승리의 도시란 카이로는 도시명과 달리 아직 문맹이 55%이고 1부4처를 허용한단다. 봉고 등 대중교통은 차표나 정류장이 없어서 수신호로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주고 있다. 시가지를 두 갈래로 가르는 나일강 물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바람은 북에서 남으로 불어서 수상교통에 유용하단다. 신시가지에 창틀을 달지 않은 건축물이 많아 물어보니 입주할 때까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다 지어놓고도 마무리 공사를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이 분양주택을 사서 내부인테리어를 꾸미고 웃전을 붙여서 다시 되파는 투기를 하여 최근에 집값을 많이 올랐는데, 국민소득 10만원인 이집트인들은 살 수가 없으며, 대부분이 선진 외국인들이 구입하여 산다고 한다. 예수피난교회(아브사르가)에 들리니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 내부는 아담하고 12기둥 중의 하나는 가롯 유다의 죄 값을 상징해 기둥머리에 다른 무늬로 만들어져 있다. 12기둥은 12제자를 상징하며, 가운데는 세례교인이 예배하고 양 옆은 미세례교인이 예배였다고 한다. 천장에는 노아의 방주를 뒤집어 놓은 형상을 하였는데, 구약의 하나님 구원과 신약의 십자가 형벌로 죄 사함을 덧입은 의미를 합한 상징적인 지붕이라고 한다. 이 교회는 4세기 봉헌하여 이집트 78만명 교인 중 10% 기독교인이 예배하였으며, 로마인이 옛 영광을 위하여 복원하였단다. 콘스탄틴 대제는 전쟁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군기를 강하게 앞세웠으며, 신성과 인성에 관한 단성론과 양성론에 대한 인두세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곱틱 정교회가 예수피난교회를 이슬람에 넘겨주므로 이 시대에 박해가 많았으며, 이로 인하여 무늬만 기독교인 곱틱이 많단다. 예수피난동굴교회는 예수님이 헤롯왕을 피하여 숨으셨던 지하 동굴로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물이 고였다는데, UN에서 지원・관리하여 이제는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마2:13~15) 유대회당은 아라베스크(Arabesque) 별무늬의 천장을 만들었고 10계명과 단상의 문은 동쪽 예루살렘의 성전을 향하고 있다. 유대인은 금요일을 휴일로 예배를 드리며, 교회설립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곱틱 정교회 신자는 헤롯왕의 보복위험과 주민 시선을 피해가며 일생에 한 번씩 성지를 순례하며 산단다. 벤에드 타워는 모세가 기도하고 출애굽으로 홍해를 건넜다는 교회로 이스라엘 친 주변국들이 이곳을 부수고 복원하였으며, 탈무드를 가르치는 강독당의 랍비들은 만권 이상 책을 읽는다고 한다. 마리아 곱틱교회는 아기 예수와 요셉 일가가 배를 타고 피난하였으며,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가에서 갈대사이 상자의 모세를 건진 곳이다.(출2:5) 모세가 기도하고 떠났다던 모세기념회당에 들렀다가 메론, 바나나, 걸레빵을 사서 먹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을 따라 까따야마(사막여행)를 시작하였다. 출애굽 했던 40년 광야 길은 애굽-수르광야-신광야-시내광야 7시간이 순례 시작이다.  ‘인생은 추억이고 추억은 아름답다’며 달리는 사막지대에서 나일강의 땜에서 내려오는 물 수로와 수력발전으로 요르단에 수출하는 전기 줄을 따라 가는데 점심때에 차안에서 한식도시락을 먹었다. 15시에 휴게소에서 선물용 어린이 T샤스를 구입하며 1병1불의 망고 주스를 사먹으니 맛있다. 수에즈운하는 1859~1869년에 이집트 사이트파샤가 프랑스인과 합작으로 건설했는데, 이때 미국의 남북전쟁 발발로 목화 운반선이 줄어 통관수입이 급감함으로 이집트 주권이 영국에 매각되고, 이후 주권분쟁으로 12만명이 사망하였단다. 수에즈운하는 홍해 얌수(염수) 갈대바다에서 지중해를 통하여 유럽으로 15시간 만에 갈 수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로 돌아서 갈 경우에 50일이 걸리던 해상의 교통거리를 단축한 것이어서 그 효과가 절대적이다. UN이 중재하여 이집트가 관리권을 되찾게 되어 하루에 평균 80척 배가 운항하여 그 수입이 엄청나서 국익의 보고가 되었다고 한다. 15시 40분 출발해 마라의 샘물에 시나이반도 홍해를 따라 수르(에담)광야 135Km를 달려 도착하였다. 성경에서는 ‘3일 길에 와서 물이 쓰다고 불평하여 모세가 기도하고 나뭇가지를 던져 물을 달게 만들었다.’는 곳이다.(출15:22~26) 홍해 해변의 모래밭에 위치한데 한 샘은 물이 있고 다른 샘은 말라있다. 광야사막은 년 50일 정도의 황사가 분다는데 샘물은 지저분하고 주변에는 띄엄띄엄 종려나무가 있다. 종려나무는 60여종 야자수 중의 한 종류로 그 열매를 대추야자라 부르기도 한단다. 차를 달려 열둘 샘과 종려나무 70주가 있었다는 엘림을 지나서(출15:27) 16시 20분 검문소에 도착하였는데 검문소는 베두인의 침몰에 사막여행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단다. 베두인족은 시내산에 3부족, 마라에 1부족, 떠돌이 2부족이 살며 목축을 하고 마약을 재배함으로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17시 20분 석회암 바위산과 시멘트공장을 지나다가 쿰란동굴 신광야 천년온천에 도착하여 해변에서 유황찜질의 습식사우나 체험을 즐기고 홍해바람을 쏘이니 금방 마르고 개운하다. 르비딤 골짜기는 끝없이 펼쳐진 시내광야의 사막 계곡으로 엎어놓은 것같이 밋밋한 시크 바위산 언덕들을 눈에 담아가며 지나간다. 이곳은 먹을 식량을 걱정하던 이스라엘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출16:1~9)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는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먹을 물이 나게 했던 곳이다.(출17:1~7, 민20:1~13) 아말렉 전투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지므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을 들어 올려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이끌어 내었으며, (출17:8~18), 장인 이드로가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운 곳이다.(출18:1~27,신1:9~18) 피로를 참으며 어둠의 광야를 달려서 19시에 시내산 아래의 Catherine Plaza Hotel 산장에 도착하여 호텔식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일찍 잤다.  

셋째 날(2008. 4. 9. 수요일)
시내산 등정을 위한 아침 기상은 1시 30분이고 2시에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시내산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인파가 몰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희고 검고 크고 작고한데 그래도 우리가 중간 정도이다. 시내산은 걸어가면 깜깜한 돌밭 길을 3시간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은 밝을 때라 2시간 반 소요된다. 오를 때는 중간까지 낙타를 타고 15불과 팁2불에 갈 수 있고 이후로는 800여 계단을 걸어서 정상까지 간다. 낙타는 뒷발부터 서고 앞발부터 앉으므로 엎어지지 않도록 낙타 봉 사이에 앉아 앞 봉을 잡고 뒤 봉에 등을 기대 타는데, 다리는 낙타 목에 얹고 졸지 말아야 한다. 베두인 Guide가 매표하여 입장했는데 성캐더린 수도원 앞에서 1차 집결하였다가 산중턱 오른쪽 카페 1,2,3번과 왼쪽 1번 카페를 지나 두 번째 카페에서 낙타 팀과 만나서 2차 집결하고 마지막으로 정상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추위를 생각해 옷을 겹겹이 덮쳐 입고, 모자 쓰고 목도리에 등에는 물과 라멘이 든 배낭을 지고 손전등을 들었으니 숨을 헐떡이며 가쁘기도 하다. 올라가는 돌밭 길에서 오르내리는 낙타를 피하느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단다. 광야 일출은 5시 10분 민둥산에서 붉게 솟았고, 우리는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생을 인도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백성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시내산은 호렙산이라고 부르는데 성산으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소명과 10계명을 주신 곳이다.(출19, 20장) 모세봉 2,285m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주변은 온통 끝없는 광활한 사막이나 그 아름다운 자태는 밀림에 못지않다. 카페에 들어가 기도하고 물을 사서 라멘과 커피를 맛있게 먹었다. 하산 길은 성캐더린 수도원 앞에서 모두 모였다. 성캐더린 수도원은 마가가 로마의 박해 당함을 기리어 변화산 수도원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귀족집안의 딸 캐더린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단다. 5,000권의 성경사본과 3,000권의 희귀사본이 잘 보관되어 있고, 시나이 사본은 영국의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바티칸 궁전 다음으로 유명하단다. 성캐더린 수도원은 스데반 집사가 로마의 박해와 베두인 습격으로 몸을 피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호텔로 돌아와서 알량미 밥, 야채, 달걀 찜, 삶은 계란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10시 30분에 순례에 나섰다. 들을 지나고 산을 도는 광야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와디(마른 하천)와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메마른 사막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로뎀나무와 싯딤나무가 자라고 있다. 로뎀나무는 콩과 식물로 2~3m크기로 사막 곳곳에 자라나며, 싯딤나무는 딱딱한 나무로 변하지 않아 법궤를 만들었으나 판자를 켤 만큼 크지 않아 조각조각을 잘라 붙여야 판자를 만들 수 있다고 하여 조각목이라고 한단다.(출26:15) 모세가 신광야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내니 40일간에 하맛, 헤브론, 에스골 골짜기까지 정탐하였고 가데스에 이르렀는데, 바란광야는 지명이 그대로이다.(민13:3) 13시 30분 홍해 아카바만 항구의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14시 이집트 타바국경을 통과하여 이스라엘에 14시 30분(썸머타임 1시간을 늦게 조정)에 입국하고, 버스를 타고 이스라엘 엘랏국경에서 출국하여 비무장지대를 지나 15시 50분 요르단 아라바국경을 통과하였다.

저자 : 남포교회  최  청  인  안수집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