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9~10월중 저는 기독교에 관하여 전혀 상반된 두 부류의 책을 접했습니다. 하나의 부류는 정통 기독교적 입장에서 쓴 “완전한 승리(Total truth)” (Nancy Pearcey)와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How Now Shall We Live?)” (Charles Colson)이고 또 다른 부류의 책은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Richard Dawkins)입니다. 후자는 뉴욕타임즈 연속 베스트셀러이고 국내 서점가에서도 상위 판매 책으로서 많은 사람들에 무신론에 관한 확신을 가져다주는 책입니다. 주요 쟁점중 하나는 창조론 내지 설계론 대 진화론 내지 자연선택론이었습니다. 전자의 책들은 하나님이 계획과 설계에 의하여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보는 주장이고 후자는 이를 철저히 부정하고 우주와 생물이 우연적으로 생성되고 이후 생물은 자연선택에 의거, 진화되어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많은 신학자들과 소위 창조과학회 회원들이 설계론을 주장하고 있으나 제 생각에는 가능성도 낮고 논리적 타당성도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설계론자들은 반대쪽 주장을 깊이 성찰해 보지도 않고 현상계에 대한 설명론으로서 진화론은 너무 단순하다고 치부하고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양쪽 주장의 논리를 검토해보면 진화론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통계학적으로 무작위 추출이 계속되면 확률법칙에 의거, 정규분포를 이룹니다. 우주는 우연하게 발생하고 10억분의 1의 확률로 지구가 생성되고 생물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어 생물이 생성되었으며 일단 발생된 생물은 자연선택 법칙에 의거, 진화되어 왔다는 논리가 훨씬 그럴 듯합니다.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진화론을 반대하기 위한 주장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예 : 창조론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지 진화론이 이러이러한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니까 창조론이 맞다는 식)

3. R. Dawkins는 또한 성경에 많은 사실의 왜곡이 있고 창조에 관한 창세기 기사는 현대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설득력이 떨어지며 아담과 하와 얘기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노아, 아브라함 등 믿음의 선조들 행태도 이해 못할 부분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기사는 후대에 구약의 예언에 꿰맞추어 갖다 붙인 요소가 많고(예: 동정녀 탄생, 호적신고를 위한 요셉과 마리아 이동, 헤롯왕의 영아 말살 지시) 구속신앙은 바울이 신봉하는 “희생 없이는 죄 사함도 없다”는 유대교 일부 파의 신앙을 접목시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너무나 철저히 성경을 비판했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접하는 수많은 독자 특히 불신자들이 호응하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쾌재를 부르며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 신부님들의 학문내용이 너무 외골수로 빠져 반대편 주장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 아닌가 합니다. 반대편에서는 성경 내용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성경 구절을 이미 진리로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4. 상기 양 부류의 책을 읽고 나서 내 입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저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쓴 전자의 책들에서의 주장을 기본으로 하면서 R. Dawkins의 주장도 상당부분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세상은 R. Dawkins의 주장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훨씬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요소가 많아 R. Dawkins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곤란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인간의 희노애락, 창조적 활동 등 각종 요소를 모두 그저 뇌 속에서의 생화학적 작용 또는 이기적 심리요인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생물은 잘게 썰어 최종적으로 원자형태로까지 분해될 수 있는데 역으로 그것이 어떻게 모여 생물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설명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일정단계에서 어떤 승화작용이 있어(소위 엔트로피 현상) 생명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직 이해 못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관한 R. Dawkins의 비판도 피상적으로 읽고 각종 비판서를 종합하여 성경이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며 중요한 사건(예: 부활, 성령강림사건)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기독교에 관한 깊은 성찰내용은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5. 그러나 R. Dawkins의 주장 중 상당부분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우주와 생물의 발생과 진화론에 관하여 적어도 창조과학회 회원들 주장보다는 설명력이 높은 것 같습니다. 신학자 내지 기독교인들의 비논리적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많은 부분 수긍이 갑니다. 그래서 그저 틀렸다고 매도만 할 게 아니라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창조론이냐 자연발생설 내지 진화론이냐에 관한 논쟁에 관하여도 일방적으로 반대편 주장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자연발생설 내지 우연론도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수긍이 가기도 하나 전적으로 맞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고 다만 그 배후의 힘 내지 창조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되며 일반 상식으로는 후자에 더 점수를 주는 것 같습니다(물론 이것도 틀릴 수 있으며 R. Dawkins처럼 우연론이 훨씬 설득력 있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많음). 진화론도 현대 관련 학문의 바탕을 이루고 있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이론적 도구입니다. 우리는 학교 교육을 이에 바탕을 두고 받아 왔으며 천주교에서도 교황(바오로2세?)이 인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 배후의 동인에 관해서는 여전히 상반된 주장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R. Dawkins처럼 배후 동인은 없고 자체의 역동성을 주장하는 자도 있고 배후 동인을 신적 존재로 보는 학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6. 신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면 할수록 창조론-죄론-구속론을 신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 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상반된 경우를 많이 접하기 때문에 늘 고뇌하게 됩니다. 아마 이 과정은 평생 동안 계속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다만 반대편 주장을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꾸준한 성찰을 통하여 진실에 바탕을 둔 믿음을 세우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