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가 아닌 구걸

미얀마의 수도 랭군에 큰 자연 호수가 있다.
인야 호수라고 불리우는데 면적도 넓을뿐 만 경관이 아름다운 호수이다.
그래서 호수 주위에는 음식점등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호수 옆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는데 특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 동자승이 시주하는 모습인데 그 장면이 일반적인 모습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시간이 다르다.
일반적인 시주는 새벽에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신도들이 가장 먼저 음식등을 승려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10:30분, 밝은 내낮이다.

두 번째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일반적인 시주는 신도들이 승려를 돕는 것이 아니라 승려가 신도들로 하여금 시주하는 기회를 줌으로 이들에게 공덕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에 지금은 이 동자승은 식당 테이블이나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구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태국에서의 아침 시주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나는 그림중 하나이다. 신도들의 기다림과 마음을 모은 시주의 모습은 소승불교의 인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인야 호수에서 벌어진 이 동자승의 시주행위는 종교인의 옷을 입고 그런 형식은 있으나 그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결국 그 동자승 자신이나 관련된 사람을 위한 음식준비시간으로만 비쳐지고 있다.

우리 안에도 이런 모습들이 있을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가운데서 형식은 남아 있지만 의미와 목적은 변질된 것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출발하였지만 인간의 이름을 위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동자승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일종의 거부감은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사람의 목적을 위하여 할 때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집단에서 멀어지고 있는 이유는 혹시 이 동자승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지적은 선교사역을 하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질문되어져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반성이나 회개를 통한 새로움이 상실되면 우리의 외침은 메아리로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