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경에 주변의 몇 가지 일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사람들은 ‘없는 일’이 아닌 ‘자기가 잘한 일’을 드러내는데..이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잣대로 남을 판단
하게 만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분들이 오히려 작은 공동체의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 무렵 modest에 대한 이런 성품 설명을 보았는데…한동안 마음에 있던 내용이라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 He doesn’t brag about his accomplishments. >
그 날 잠언큐티내용 중에는 ‘겸손에 대한 권면’이란 부제로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해설에는 ‘아무리 탁월한 실력을 갖춘 높은
관리도 왕 앞에서는 신하에 불과합니다…’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 며칠 전 잠언에 있었던 <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라는 내용이 떠오르며…하나님께서 일관되게
요구하시는 어떤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번 욥기에서도 같은 것을 느꼈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어려운 이들에게 많은 선을 행했고 공의로웠음을 말하며 신원을 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천지를 지으셨을 뿐아니라 그 전체를 주관하시고 피조물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니느웨에서 단지 하룻길을 행하여 심판을 외치고난후 지켜보다가…막상 그들이
회개하자 심하게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하나님은 같은 내용을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도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고..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하시며 ..너희를 사랑하는 자뿐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살때 더욱 경건한 자리로 가게되지만 의인도 선지자도 겸손한 사랑을 하기위해서는….
자기 위치와 하나님을 더욱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상대의 명백한 잘못 앞에서도 높지않은 마음으로 오래 참으며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암송시간에는 예수님을 닮은 모습중에 ‘겸손’에 관하여 빌2:3말씀을 암송했습니다.
부장집사님은 인간들이 왜 다투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다투는 이유는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보다 나은 부분을 보며 존중해준다면 다툼은 사라질거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의 결과는 ‘연합’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는 것’에 대해서는 정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높으나 종의 형체로 낮아지신’ 예수님을 본받자고 말하지만…..실제로 인도함받는 방향은…누가 누구
보다 높거나 낮지 않다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우리의 겸손은 달라 보였습니다.

그런데…얼마전에 선물받은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는 이런 독특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주장은 매우 거슬리는데 이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도는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세상엔 교만한 사람이 있고 겸손한 사람도 있지만…후자는 자기자신에 대해 대단한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구세주,심판주라고 주장했고..길,진리,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길을 잃었지만 자신은 길을 인도하는 선한 목자이며… 다른 사람들은 목말랐지만 자신은 그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고….모든 이가 죄를 지었지만 그는 죄를 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그러고보니 사람들 눈에 비친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에서 이해하는 겸손한 모습과는 달랐을 것 같습니다.
세상적으로 낮은 신분이었지만…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단호했고 그러면서도 죄인들과 어울리셨고, 가르치
셨고,섬기셨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사건은…어떤 면에서는 다투게 만들었고
인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주권과 은혜 안에서 비로소 연합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하나님 통치를 받고 순종하는 면에서의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