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지휘관은 우리의 생각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결정된다. 히틀러의 생각이 히틀러를 만들었고 간디의 생각이 간디를 만들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 눈, 귀, 입, 행동, 인생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기에 생각은 우리 몸과 인생에 지휘관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생각이 중요하기에 나는 나의 생각을 많이 생각한다.
할수만 있다면 더 넓고 높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싶다.
이렇게 되기위해 나는 하나님을 많이 생각(묵상)하려한다.
나의 생각의 많은 부분은 하나님의 영광(말씀,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초월적이고 보이지 않은 하나님은 우리의 눈높이로 자신을 알리시고 보이신다. 우리가 보통 우리를 소개하듯 하나님도 자신의 부유함, 생명, 사랑, 능력, 지혜, 꿈과 계획등을 우리에게 보이심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성경에선 이런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한 단어로 영광(말씀, 이름)이라고 한다.

나의 생각은 이 영광을 여행한다. 성경에서 “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을 오게하라”고 하는데 나는 그 여행길을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모든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씨가 뿌려져 있다. 그러나 도토리가 흙이 될수도 상수리나무가 될수도 있듯이 우리도 흙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될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믿고 그것을 자기보화가  되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상속자, 영광의 광채, 반석위의 집, 열매맺는 나무, 창조의 완성자…) 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꿈과 계획과 목표를 알고 그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귀하고 값지게 느끼게 되는 것이요 보화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이렇게 느껴지고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믿고 그것을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그것이 너무 좋기에,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수 없기에 그것을 증거하는 증거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주는데 이 평안은 세상이 알수도 줄수도 없다고 했는데 그 평안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환경과 연결된 편안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예수는 평안을 전했고 그를 따라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어떤 이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진리가 무엇인지를 얘기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예수를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진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형상)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평생 이것을 전했고 이것을 전하시다 죽으신 것이다. 예수는 그의 삶을 통해, 가르침을 통해 이 진리를 전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런 말에는 관심이 없었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나도 다 알고 있는 얘기”로 치부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렇다치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존재이고 또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 존재인지 알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알았다면 예수를 그렇게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리어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이고 얼마나 값진 존재인가를 알았다. 그랬기에 그것을 전하셨던 것이다.

혼인잔치비유, 천국비유, 탕자의 비유, 달란트비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씨뿌리는 비유등이 모두 이것을 설명하는 그림이다. 당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했지만 이미 돌밭이고 가시덤불밭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될수 없음을 얘기하신 것이다.  옥토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고 이들이 결국 하나님을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을 목숨처럼 사랑하면 자기자신도 이웃도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고 만나고 있기에 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영광안에 머물고 그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과거에 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없는 세상을 많이도 싸돌아 다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은 길이 없고 생명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생각은 애굽을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와있다.
이곳에 와 보니 처음부터 애굽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애굽은 우리의 생각이 만든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내가 못보고 내가 못듣고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은 공짜로 주어진 무한한 값어치가 있는 선물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영광을 여행하게 하심으로 나를 완성시켜가신다. 나의 생각을 바꾸심으로 나의 마음과 눈과 입과 삶과 인생 그리고 나의 운명을 바꾸신다. 예수께서 회개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생각을 바꾸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회개를 한 사람이 된다. 또 천국을 얘기하시는 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안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천국을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아직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어느정도 나에게 이것이 이루어 졌음을 나는 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씨앗을 품고 탄생한.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할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우리가 이렇게 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린 떡만 먹다 죽을 존재가 아니다. 말씀(영광)이란 또 다른 날개를 날고 하나님의 사랑을 여행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곳은 우리의 무덤이 아닌 우리의 여행길이요 우리 육체는 우리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이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러한 믿음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보는 것 이상의 존재이다.
창조기사도 그것을 증거한다. 창조가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창조의 과정을 그리기도 하겠지만 더 깊이 보면 창조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말씀 즉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이다. 무한히 펼쳐진 우주도 아주 작은 꽃한송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케 하신 것이다. 우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존재케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은 창조계속에 완전하게 드러나 있다. 그것을 우리가 생각할수 있느냐 없으냐의 문제이다.

떡만 먹다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걸어갈 것인지
예수를 따라 말씀(영광)을 먹고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고 완성될것인지 우린 선택해야 한다. 육신적으로만 보더라도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간디처럼도 될수 있고 히틀러처럼 될수도 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우리를 너무나 다르게 바꾸어 간다. 같은 모양을 한 인간이라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린 달라질수 있다.

흙에 문화와 흙인 육신을 보더라도 우리는 큰 위기속에 있다.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간다. 사막이 늘어나고 수많은 닭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살처분이 된다. 정치인들은 이미 자기 탐욕에 눈이 멀어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나름대로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한쪽날개로는 하늘을 날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다른 날개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래야 우린 하늘을 날수 있고 우리의 욕구가 그 안에서 충족되어 서로를 사랑하며 살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이미 하나님의 자녀란 씨가 있다. 그 씨가 자라서 하나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처럼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우리로 자라가길 소망한다.
시작하는 그곳이 곧 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함으로 사랑의 길을. 생명의 길을 걷고 싶다.
우리 모두가 이 길을 따라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이 여행에는 돈도 안들고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번 주어진 여행의 기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 여행을 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