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이 있다. 부모라….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지금도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들이다. 이렇듯 부모를 우리가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그런데도 실상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일까?
내게 잘 해주는 부모님공경도 쉽지 않은 마당에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싫어하는 원수를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일까? 이것은 더 가혹한 율법이 아닌가?

어떤 목사님은 그래서 위선자가 되기 싫다면서 이렇게 될수 없는 자신을 고백해야 한다는 분도 있고 어떤 목사님은 마음으로는 되지 않지만 순종이 제사보다 나으니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은혜가 있으니 마땋히 예수님이 하셨듯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하신다.

결국은 마음은 되지 않기에 인정하거나 혹은 순종하거나 빚진자의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 우리의 수준인것 같다.
만약 예수님이 이정도의 수준이라면 내가 무엇하러 예수님을 따를까?

그러나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이런 차원을 넘는다.
예수님의 눈에는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상속자로 보고 계신다.
물론 그것은 예수님자신에 대한 정체감이다. 예수님을 우리가 하나님의 맏아들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수님의 우릴 향한 죽으심도 하나님의 상속자로 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죽임을 당한 것이며 이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결정하신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의 사명을 다 하시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예수님자신과 사람들을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상속자로 보고 계셨다.
나도 처음 교회다닐때는 상속자란 단어가 낯설고 믿기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 멀리 했던 단어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 갈수록 상속자란 단어가 우리의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단어라는 생각을 한다.

상속자…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가진 존재.
흙이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되듯
무에서 돌담이 되고 성막과 성전을 거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되듯
우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완성되어야 할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다.

결국 만물은 이것을 위해 창조되었고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린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요
하나님의 모든 부유함을 간직한 성전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

이런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세상은 모두 흙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것 하나 흙으로 구성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세상속에서  땅의 존재가 아닌 하늘의 존재가 될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모래위에 지어져서 흙이 될수도 있지만 반석위의 집이 될수도 있다.
밭(흙)에 감추인 보화가 바로 인간인 우리 자신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렇게 보셨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눈이 밝아져서 모든 것을 이렇게 새롭게 볼수 있어야 하겠다.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상속자로, 영광의 광채로 볼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항상 얘기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나도 일하면서 가끔씩 하나님의 영광(부유하심, 이름)을 묵상한다. 하나님의 광대하심, 사랑, 지혜, 생명, 꿈, 신실하심….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면 어느새 상속자란 단어가 빛나는 보석이 된다.
세상 어느것도 이 기쁨을 빼앗을수 없고 어느 누구도 줄수 없는 감동이 마음속으로 다가 온다.

몰론 욕망에 의해 희미해 질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주시는 기쁨과 감동을 마음에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런 노력이 영광의 광채로, 상속자로 완성되어 가는 길이라 믿고 있다.

이런 상속자로서의 삶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셨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나라였다고 믿는다.
이런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마음이 안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정말 마음에서 그가 소중하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상속자로, 영광의 광채로 완성될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것으로서 흙으로 된 세상의 선악을 넘어 사랑할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중에 “아버지께서 해를 선인과 악인에게 비추신다”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해는 진짜 해를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시기에 여기서 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은혜(사랑)은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져 있다.
그러기에 인간은 모두 공평하며 모두 특별하고 모두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흙으로 자신의 바벨탑을 쌓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욕망의 바벨탑이 아닌 은혜의 성전을 짖기를 원하셨다.

나도 예수님처럼 더욱 신령한 삶을 살고 싶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부유하심안에 살고 싶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믿지 않는 하나님의 상속자란 이름으로 살고 싶다.

우린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다.
우리의 구원과 영광과 존재이유는 하나님에게 있다.

흙으로 구성된 세상속에서 우린 누구를 믿고 누구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

우릴 밭에 감추인 보화로 부르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상속자요 영광의 광채로 부르시는 예수님.
상속자의 값어치를 가르치시고 그것의 값을 샘해 주시는 예수님.

그러기에 원수는 없습니다.
해는 그렇게 선인과 악인에게 지금도 쉼없이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