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엔 호주의 어느 신학대 학장님이 요 7:37~39 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세구절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왜 오셨는지…어떻게 우리를 축복하시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은 농사가 마무리되는 시기에 기쁨으로 열리는 축제이고….또한 광야길을 회상하게 하는 축제인데
물에 초점이 있는 ‘물 축제’라고 합니다. 그런 축제의 끝 무렵 예수님이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이란…. 농사에 필요한 물이기도 하고…광야길의
반석물을 생각나게도 하지만….스가랴,에스겔이 예언하였듯이 마지막 때에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스라엘
과 열방을 축복하는 미래의 소망으로써의 물의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런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가짜 영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몇 몇 예화를 드시면서… 그들이 왜 거짓말을 하겠냐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자신들이 체험한 것
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엔 갈급한 사람들이
오염된 영성의 물을 마시며 그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만…그들에겐 생수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뉴에이지 영성 축제가 열리면 그들 옆에 부스를 만들고 예수님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마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보였다는 그 심정이…
‘물 축제’의 마지막 기간에 예수님이 ” 내가 이 축제의 완성자이다. 비젼의 완성자이다..내가 생수의 강을
가져왔다.” 라는 뜻의 말씀을 선포하셨을 때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어서…이 세 구절 안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생수도, 성령도, 우리도 아닌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예배를 마치고….예수님이 물을 길으는 ‘우물가’에서도 생수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며칠 뒤 저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라는 책을 훑어보다가..원래 사려던 책을 대신해서 샀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런 경험을 적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뒤 청년부 회원들과 일 주일에 한 번씩 철야기도를 했었는데….어느 날 예배실에 흩어져
기도를 하던 중…문득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가 … 윗몸을
굽혀 머리를 바닥에 대었다가 …그래도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땅에 완전히 엎드려 이마와 가슴,배
를 땅에 대고 팔,다리를 양쪽으로 쭉 뻗는 자세를 취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는 카톨릭에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취하는 자세와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자세가 …주위 사람들의 눈길은 둘째 치고,자기 자신에게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몸가짐이었고
자기 상식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자세 외에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뜻밖에도 큰 평안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에 성서원어를 공부하면서 그것이 ‘예배’를 뜻하는 ‘하와’. ‘프로스퀴네오’가 가리키는 몸가짐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내용이 책의 부수적인 부분임에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이것과 같지는 않지만..저의 어떤
반응에 대해 나중에야 그것이 정상적인 것임을 알고 감격했던 몇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책을 거기서
덮었습니다.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제 오랫만에 새벽예배에 참석했는데… 전도사님께서 느8:1~12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을 송축하자….. 백성들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백성들이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격했고 ..또한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울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앞에 바로서면 사람은 마음이 변화되고…나아가
태도와 삶이 변화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보아야 할 것은…당시 학사들의 자세라고 하셨습니다.그들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전하기 위해…자신들이 먼저 말씀 앞에 섰고 늘 말씀을 묵상하며 연구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말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말씀 앞에 서서 하나가 될 때 영적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수요예배모임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고전15:8~11말씀을 나누어 주셨는데 ….우리가 다른 것은 잊어도 받은 은혜와 자신의 과거모습은
잊지 말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구원의 은혜와 받은 은혜들을 묵상하면 예배드림이 더욱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작은 교회를 섬길 때의 새벽예배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작은 공간을 빌려서 사용했었는데…새벽에 갔을 때 치워져 있지 않으면 빨리 그곳을 정리하고 성도들을 맞이
했었고…성도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면 혼자 남아서 카펫에 완전히 엎드려 기도를 하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카톨릭 사제 서품때 신부들이 하는 자세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셨던 것인데…그럴 때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무튼 놀랍기도하고…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외적 자세가 중요하다기보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중심이 참된 예배자가 되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윗 책의 저자는….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면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계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듭나고 말씀으로 인해 마음이 새롭게 되어도 하나님께 대한 반응의 완전한 회복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내적 갈등과 연습과 혼란을 겪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에 반응하고
교제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는 참된 예배를 통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