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님들께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한 줄 압니다만,월, 수요일 형진이가 수업하러 학교에 가는 날이라서 우선 지면을 통해서 근황을 알려 드립니다.
2004년 7월9일 미국에 계시는 외할머니 팔순생일 잔치에 참석하러,출국 했다가 도착한 첫날 아침 먹은 것이 체해서 토하는 중, 일부가 기도로 넘어가서 막히는 바람에 호흡곤란이 시작된 이래,2년 2개월 동안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8월24일 복학해서 첫 수업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2년여만에 우리 모두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삼성의료원에서 18개월
미국의 중환자실에서 2개월 반,영동세브란스에서 5개월 반,총 26개월의 길고도 긴 병원생활
이었습니다.

그동안 남포교회 권사님들의 안타까운 기도와 사랑속에서 큰 위로와 힘을 얻었으며 이에 머리숙여,감사드립니다.
영동세브란스 재활의학과에서도 형진이의 퇴원을 위해서 정말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퇴원하던 날,의료진들이 가족보다도 더 기뻐하면서 ,병원 홍보실에서 사진을 찍고,취재도 하였습니다.
퇴원 앞둔 어느 날,26개월이라는 시간을 생각 하면서,불현 듯 군 복무기간과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임을 알았습니다.
언젠가부터 군대에 가는 청년들이 부럽고 형진이 친구들이 군대갈때는 더욱 더 부럽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부대에 가는 대신 병원에서 군 복무를 대신해서 시키셨나 하는 생각에 “형진아,우리 26개월을 군대 갔다 왔다고 생각하면 되겠네”…..했더니 “엄마, 저는 특수부대 다녀  왔어요,”하더라구요.
부러워 하는것도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니까 하였더니 ,모두들 웃었습니다.
형진이는 군 복무 훈련을 받았다고 하지만, 나는 여자로써 할머니로써 왜 군복무를 함께 훈련시키셨을까 했더니 한 친구가 “너는 거룩해 지는 훈련을 받은거지,…”하더군요.
거룩해 지지는 못했지만, 26개월 동안 어느 하루도 마음 편안한 날이 없었고 ,따라서 하나님을 붙잡고, 애원하는 훈련은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확신 속에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복학을 해서 월요일 두시간 ,수요일 1시간 수업을 받습니다. 9월 6일 수요일에는,개강파티를 하느라 저녁 8시까지 학교에 있었습니다.
동아리 후배와 친구들이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손뼉을 치며 복학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총장님께서 오셔서 “장하다” “고맙다”를 연신 말씀하시고 ,교목께서 기도해 주시고 ,교수님께서 예쁜 꽃다발을 안겨 주셨습니다.

26개월을 기관지 절개 때문에 목소리가 안나와서 후배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도 글자판을 동원해서 대화를 하고 돌아가면,“엄마,목소리라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할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이번에 파티에서 그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벙어리도 아닌데,26개월이나 목소리가 안 나와서 말을 못하고,글자판을 동원해서 대화하는 훈련,호흡도 안되어서 사경을 헤매는데 복막염이 생겨서 수술했고,마무리가 안 좋아서 몰핀주사를 얼마나 맞았는지 중독현상이 와서 고생했던 일, 간신히 수술이 회복되니까,욕창이 두군데 생겨서 회복되는데 1년, 기관지 절개를 통해서 호흡을 하기를 25개월,기관지 삽관한 것을 빼고 봉합하는 작업이 5개월…. 이런 고비를 수없이 겪으면서,“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기는 하나? ”싶은 마음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겪어야 되는지 위안을 얻으려고 자주 구약의 욥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은 복 주시고 ,너무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서,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권사님들,그동안 형진이를 위해서 여러모로 도와주시고, 찾아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기도해 주신것,거듭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앞으로도 수업 잘 받고 학교생활 ,교회생활, 잘 해서 많은 아픈 아이들과 장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삶이 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해 주세요.

2006년 9월 10일 이원옥 집사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환우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