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자영감

이 글은 축자영감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쓴 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여졌다. 이것은 성경이 명확하게 가르치는 진리다. 따라
서 성경의 영감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
이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졌는가 이다. 영감의 방식과 영감의 범위는 조심스럽
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쓸데없는 논쟁이 재생산되고
있다.

영감의 범위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축자 영감’과 ‘사상영감’으로 나눌 수 있다. 축자 영
감은 성경의 원본이 글자 하나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주장이
다. 반면, 사상 영감은 성경 저자의 사상에 한해서 영감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사
상 영감을 주장하는 부류들 가운데, 로마 카톨릭의 경우, 성경의 영감 범위를 교리와
도덕에 한정시킨다. 그렇게 되면, 영감의 범위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영감의 방식에 있어서는, ‘유기적 영감’과 ‘기계적 영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는 하
나님께서 마치 성경 저자를 타자기처럼 사용하시거나 받아쓰기와 같은 방식으로 성경
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
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감방식이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반면 유기적 영
감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저자의 모든 것 (사상, 교육, 습관 등등)을 사용하셔서 기록하
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영감의 범위와 방식을 구분하지 못한 사람들은 축자영감설과 기계적 영감설을 혼동하
는 오류에 빠진다. 이 둘을 동일시하면서, 축자 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지하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자유주의 신학을 한 사람 중에서 이런 오류에 빠진 경우가 역사적
으로 적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축자영감과 유기적 영감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이 영감의 범위에 있어서는 축자 영감을, 영감의 방식에 있어
서는 유기적 영감을 믿는다.

축자 영감설은 원본 성경에는 어떠한 오류도 없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성경 속에서
약간의 불일치가 발견되면, 그것을 조화를 이루도록 설명을 하려고 하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뿐이라고 간
주한다. 반면, 축자 영감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것들은, 대부분 성경 기자의
오류라고 쉽게 간주해 버린다.

축자 영감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축자 영감을 문자적 해석주의라고 단정짓는 것이
다. 사실, 축자 영감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문자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
럽다. 실제로 축자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자적, 혹은 여자적 해석을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하나는 성경의 기록에 관한 문제이고, 다
른 하나는 성경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축자 영감을 주장하더라도 해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방식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축자영감을 따르는 사람 중에, 여자
적 해석에 매몰되어 역사적, 문화적, 신학적 해석을 무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먼저 문자적 해석이 무엇인지가 정의 되어야 하고, 문자적 해석이 과연 나쁜 것인지
도 점검 해 보아야 한다. 무조건 문자적 해석이 무식한 해석이라고 정죄하는 것이야
말로 맹목적인 비판이다. 성경의 수많은 기적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냥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또 다른 예를 들겠다.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며 거기에 절하지 말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
제 시대 때, 문자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순교했다. 반면,
문화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십계명이 구약의 율법이기 때문에 오늘날 적용될 수 없
고, 따라서 신사 참배는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예들은, 문자적 해석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성경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한, 해석은 문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의
문자적 해석은 불가피하다. 문자를 무시하는 해석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문자적 해석을 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문자적 해석을 비난하
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마치 문자적 해석을 하지 않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축자 영감을 따른 사람들 중에서도 이 이론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는 것
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앞에서도 분명히 밝혔지만, 영감설은 최초 원본 성경에 한정
된다. 그리고 오늘날 단 한 페이지도 최초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글 성경
이 글자 하나 하나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킹제임스 영어본
이 매우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옳은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다.  

축자 영감론자들이 정말로 축자 영감을 믿는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오늘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더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데, 이것은 불행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성경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
이다. 축자 영감설만 주장하면서,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성경을 연구하지도 않고 따르
지도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위선자의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재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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