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는 십자가와 부활이 없고 예수님자신도 경배의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자신이 했던 기도로서 제자들이 기도를 어떻게 할지를 물었을때 “자신처럼 기도하라”고 가르쳐 준 것뿐이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주기도문은 예수님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기도의 처음만 살펴보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다.
여기서 하늘은 물리적 공간적인 개념이라기 보다 상태를 설명한다고 봄이 더 적절한 듯하다. 우리 즉 인간과는 비교할수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우리가 “하늘과 땅차이가 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하늘은 땅인 인간과 다른 거룩한 존재로서 하나님을 설명할때 쓰인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늘로 계신이나 하늘이신 우리 아버지로 바꾸어도 뜻이 통한다. 하늘이신 나의 아버지…..
이것이 단어가 주는 오해를 피하고 원래 예수님이 의도한 하늘의 의미를 더 잘 설명하는 문장인것 같다.

그럼 하늘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것은 자주 얘기했던 내용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요 생명을 만드신 분이고 생명의 공장이다.
가장 작은 것에서 무한한 우주의 생명을 계획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생명의 원천이기에 끝이 없고 제한됨이 없다.
이런 생명에 비해 내게 주어진 생명은 마치 땅과 같다.

하늘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능력은 존재의 신비와 초월을 만드신 능력이다. 무한한 우주를 펼쳐 놓으신 능력…. 그리고 그 너머를 무한히 펼쳐 놓았을 능력…. 존재함은 신비중에 신비이다. 어떤 기적도 어떤 인간의 작품도 무한한 우주의 초월과 신비를 생각하면  땅일 뿐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주가 풍선처럼 팽창하여 터질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또 오렌지처럼 축소가 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누가 맞든지 우주는 점점 사라지고 낡아져 가는 것은 분명한것 같다. 그러나 이 우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지듯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도 목적을 가진다. 그 목적은 우리 영혼에 하나님을 담아 하나님의 자녀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우리 영혼에 하늘을 담아 하늘의 존재로 자라고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며 모든 것이 투자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모든 것을 펼쳐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의 존재로 자라고 완성되길 믿고 계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앞에 나의 육적인 계획은 땅이 된다.

하늘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것은 구체적이며 실재적이다. 사랑한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그 만큼의 대우를 해 주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담을수 있는 영혼을 가졌기에 사랑하신다. 어떤 인간이건 영혼이 있고 하나님은 이 영혼을 가진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유하심을 영혼에 채움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세계로 까지 끌어 올리신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즉 보이는 하나님으로 지위를 회복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이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동일하게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영적인 모든 것(부유하심)을 주어서 우릴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와 조건들을 갖추게 하신다.
만약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영적인 부유하심을 가지면 예수님처럼 우리도 고백할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할수 있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이요 나의 인간적인 사랑은 땅이 된다.

하늘은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과 지혜와 계획과 사랑이다.
하늘이신 나의 아버지….
하늘로 계신 나의 아버지…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이렇게 예수님은 인간과 다른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하늘이란 단어로 설명하신다.  하늘은 이렇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단어가 된다.

예수님은 또 이 하늘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소개하신다.
나와 상관이 없는 하늘이 아닌 나와  절대적인 관계를 얘기한다.
없으면 내가 죽는, 내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의 것….
이것이 아버지라는 단어가 하고 싶은 얘기이다.
하늘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원하고 나는 아버지를 원한다.
그런 원함을 만드는 도구로 하늘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하늘까지도 수단일뿐이다.
오직 목적은 아버지와의 사랑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다.
아버지안에 살고자 하는 마음…
그 안에 살면 내가 무엇으로 살든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그 안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고 싶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얘기이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할까?
하늘을 먹고 하늘을 내것으로 만들면 된다.
그것뿐이다. 하늘이 내 것이 되면 나는 하늘의 존재가 되고 하늘에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은 여기있고 저기 있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했다. 하늘이 일용할 양식이 될때 오직 그때 하늘이신 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육체의 욕망을 따른다.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육체를 생각한다. 육체의 허망함….육체의 욕망은 소금물과 같아서 채울수도 없고 끝도 없다. 그 욕망에 우리가 갇히면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영혼을 돼지에게 줄것인가? 우리가 돼지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짖밞을 것인가?

우린 그 이상의 존재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릴 초대하신다.
반석위의 집……
하늘을 먹고 사는 하늘로 지어져 가는 하늘의 존재….
예수님처럼 하늘이신 아버지를 꿈꾼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품으로 걸어 간다.

예수님처럼 물위를 걷는 “말도 안되는 꿈”을
아버지로 인해 꾼다.

하늘이신 나의 아버지를 믿기에….
내가 하늘이 되길 아버지가 믿고 계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