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학교 예배에서는..약4:1~3 말씀을 < 폭력 >이란 주제로 설교하셨습니다.
우리가 다투는 이유는 싸우는 정욕과 욕심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예로는.. 고난주간이
시작되기 때문인지..예수님과 빌라도,유대인을 삼각구도로 그림을 그려가며 그들이 각각 무엇을 ‘근거’로
행동했는가를 비교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유익과 그릇된 자기 판단에 의해 움직였고… 빌라도는 자기 생각과는 달랐지만 유대인
들의 강한 요구와 자기 안위를 생각해서 결정해버렸고…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 그들의
오해,조롱,폭력을 받아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스데반의 이야기도 하시면서… 스데반 역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란..조롱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길 바라신다는
것이고 실제로..스데반을 죽인 사울이 후에 회심하여 바울로 변화되었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아이들이 잘 알아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분반시간에…. ” 함부로 맘 상하게 하는 친구들을 어떤 마음으로 참으며 품어주어야 할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왈가닥 소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요..”
제가 웃으며 …선생님은 예전에..’그래…착한 내가 참는다.’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고 하자….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면서 자기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저는 ..겉보기에 동일하게 보이는 인내와 자비, 사랑일지라도..그 동기와 근거는 다양할 수 있음을 설명
해주고,,, 예수님과 스데반의 마음을 다시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신다 >는 것과 < 저들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해주며…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친구들을 선하게 대하자고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실제로 폭력적인 상황을 맞게 되면 그 대처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양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향한 마음자세는 동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보더 더
많은 인내와 포용의 결과를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고난의 주간에는 특별새벽예배가 있었는데…첫 날엔 막14:52~65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 예수님은..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들에게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운 채 주먹으로 치며..’선지자 노릇을 하라 ‘
하고 손바닥으로 쳤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이런 폭력을 견딘 이유가..십자가를 통해서만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전에 전도하러 온 학생들과 대화하던 생각이 납니다.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전도지를 한 번 읽어 주고 ‘기독교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라고
해서…제가 정말로 궁금한 질문들을 하면…모두들 혼란에 빠지곤 했었습니다. 한 2년동안 세 명정도와
얘기를 했었는데…마지막 학생은 갑자기 일어나더니..저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외쳤습니다.
그 학생은 제가 자신을 시험에 들게 만들고 있다고 여겼던 모양입니다.물론 제가 당시 기독교와 신자들을
우습게 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이 질문을 끈으로 해서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저를 기도하게 인도하시고 ..질문을 받아주시고..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번 고난의 주간 동안 저 역시 ..제가 받은 십자가 사랑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천년 전에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멸시와 조롱과 고통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제가 믿음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도…다시금 제 무지와 편견과 자존심 앞에서 멸시받으시며 오래
참으시며 묵묵히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