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을 보면 가야바가 예수님을 죽일 것을 제안하는 것이 스스로 말함이 아니라고 적혀 있습니다.그는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 하나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롯 유다의 경우는..그 마음에 사단이 역사하여 예수님을 판 것으로 나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붓고 머리털고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장면에 대해서는…이런 해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한 것뿐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을 아직 알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의 죽으심을 예비하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이미 성령의 감동에 민감 하게 반응하며 살고 있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실 때 누구는 악한 쪽으로…누구는 좋은 쪽으로 쓰시는 것을 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빚어가실 때 훌륭한 신앙인들만이 아니라 ..온갖 모양의 사람들을 사용하심을 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연이어 보면…하나님편에 있지 않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다는 점에서.. ‘쓰임받는 것’과 ‘신앙’은 다른 것이고…개인 신앙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쓰임받는 것’과 ‘신앙’은 별개 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적 체험이 사람을 바꾸지 못하며…오히려 환란과 믿음의 시련을 통해 …자기 의와 자랑이라는 불순물이 제거되어 신앙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런 변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돌아보면 제가 예전에 잘 이해하지 못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JMS에 빠져 있는 선배와 몇 개월 접한 적이 있었는데..그들은 ‘이상한 교리’보다는 ‘이상한 능력’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고…아주 사소한 필요도 채워주시는 경험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교리를 못 믿겠거든 나타나는 능력을 보고 믿으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계시는지 < 와서 보라 >는 것입니다.

그때 이상했던 것은…그들이 이단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이름으로 그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 주시는가였습니다.
사단도 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단의 이름이 아닌 < 예수의 이름 > 으로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모두 자녀로 인정해주시는 것아닐까 싶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기도중에..” 이쪽이 틀리고 저 사람들이 맞으면 어떻하죠?”라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나타나는 능력과 헌신하는 삶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선배는 돌이켰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주님 영접과 상관 없이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예수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단에 미혹되어 있어도 계속 자녀로 인정해주시고 보호해 주시는가?
나는 성령의 도우심을 먼저 입고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은혜체험을 할 수 있나?
예수이름으로 기도했기 때문인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를 다녀서인가?

당시 저는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후에 성경공부 모임에서 고넬료사건을 보면서… 예전 선배들이 어긋나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경건한 유대인일지라도 메시아 초림에 대한 예언을 잘못 이해하여 예수님을 알고도 거부한 자들은 결국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며…지금도 재림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도 전폭적으로 인도하여 성령세례를 주셨는데…당시 경건한 유대인을 방치하셨을까 싶어졌습니다. 성경에 모두 나와 있지 않더라고…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복음을 믿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예수님이 예상과 다른 모습으로 재림하신다해도..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들은 인도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공부 모임중에 기쁜 마음으로..”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재림하셔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라고 했었는데…그날 한 분이 걱정스런 눈으로 절 보셨던 기억이 납니다.그분은..성경을 나와 있는대로만 보아야한다는 조언을 해주셨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라’며 자신있게 말할 때……우리는 각자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그 중심내용을 좀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능력으로..성공으로..물욕을 버리는 것으로..희생으로..도덕으로..섬김으로..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고 성도간에도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서로 사랑하게 될 때….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며,그의 죽으심이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순종하신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었음을…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지체들끼리 하나된 것도 지키기가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서로 노력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하나님 앞에서 각자 다루어지고 새로워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고 무례해서도 안 되지만..경쟁하는 마음과 인정받으려는 마음과..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영적 우월감도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지혜로운 권면과 경계도 있어야 하고..상대방을 묶어버리지 않고 성령의 인도에 자유롭게 내어 맡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지난 이 주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신앙생활의 방향에 대해 개인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을 갖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분반시간과 본 예배와 어느 분과의 대화가운데 ….이 내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