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전쯤, 묵상수첩에 ‘신앙의 본질’이란 제목으로 각기 다른 내용이 적혀 있던 것을 한 페이지에 모아서
정리를 하였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 이었는데…”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전에 목사님 책에서 신앙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 것을 보았을 때… 한 편으론 세리의 기도를 떠오르게도
했지만,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세 노인들’의 기도가 생각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보편적으로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를 생각할 때면 우리자신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귀한 자녀 ‘로 생각
합니다. 그리고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 ‘양’으로도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죄된 모습을 생각할 때면……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합당한 존재라고 인식하며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표현이 정확하진 않지만 예전에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랍비가 젊은이에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한쪽 주머니에는 <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귀한 자이다.>
라고 쓰여진 돌을 넣고,다른 한쪽 주머니에는 < 나는 하나님 앞에 벌레만도 못한 더러운 자이다.> 라고 쓰
여진 돌을 넣고 살아가다가…필요한 때에 한 쪽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서 그 내용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무슨 이런 황당한 조언이 있나 싶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이 말은 맞는 말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우리 임의대로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적절하게 우리자신의
모습을 묵상할 때… 힘을 주시기도하시고 교만을 꺽기도 하시고 회개도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바라는 그의 백성이 …. 자신의 죄성 앞에서, 인생의 문제 앞에서
한계를 인정하고 긍휼을 구하는 자세이므로….우리가 취해야할 올바른 자세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과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대로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하고 있지
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있는 모습그대로 긍휼을 바라며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다윗은 밧세바 사건이 있었음에도 하나님께 회개하며 긍휼함을 구하고 있고
아이가 죽은 후에는 원망함없이 몸을 씻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서는 특별 새벽예배에 산상수훈으로 말씀을 나누어주시고 계신데, 말씀을 보며 예전 생각
이 났습니다. 교내에서 전도하러 다니는 학생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일어서려는데 저에게 이런 말을 했
었습니다. ” 마음이 참~ 부자시네요.”…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이 어떠한지를 알수록 더 마음이 가난해진다
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대한 다른 하나는…< 이웃과 나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 >이었는데…
” 함께 가야 한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세상에 보내지는 하나님의 편지이고 증인이고 화목케하는 제사장입니다.그래서 서로 용서,용납하며
기다려주고,세워줘야 합니다. 상대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무수한 훈련도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며 들어야하고,
참아야하고,입술의 훈련도 해야합니다.이웃을 어떻게 도울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할 때도 많습니다.
마음의 연단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우리 모습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