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TV채널을 돌리다가 지나치듯 몇 번 본 스님이 계신데… 그분을 볼 때마다 잠시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되곤 합
니다. 유독 그분만 그렇습니다. 모습이나 말투가 참 온화해 보이고 지식적으로도 가득 찬 느낌이 드는 분이었는데
알고보니 승가대 총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분이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이런 얘기 하는 것을 잠시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외부로부터 오는 도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 은혜 >에의한 뭐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흔히…성화는 내 힘으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 < 은혜의 과정 >에 어떻게 진입하느냐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인지…훈련으로 문을 여는 것인지…어떤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것인지…일방적인 은혜로만
가능한 것인지… 설명이 쉽지가 않습니다.

전에 박영선 목사님의 책에서 이런 뜻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성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우성으로 가게 됩니다.우리는 실천해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알게 되고…그 아우성은 더욱 성령께 의지하게 만들며…..힘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자주 언급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 그리스도인은 순조로울 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순조롭지 않을 때 자랍니다.
섰을 때가 아니라 넘어질 때 자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자라는 기본적인 조건은 자신을 아는데 있습니다.
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을 통해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글은 표시를 해놓지 않아서 누구 글인지 모르겠습니다.

< 우리가 비록 말씀과 기도와 성령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은 사실이라도 우리들에게 가장 큰 은혜의 수단은 …
[성령의 훈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매일의 훈련을 통하여 하시는 일은 우리가 설교말씀을 들을 때
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더 쉽게 진리를 보게되고 그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실제 배우는 실상’보다…단순히 ‘말씀의 지식’만을 훨신 빠르게 파악합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에 대해..
한 번 듣고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도…실제 삶에서 훈련 받을 때는 열 번을 훈련받아도 여전히 어리둥절
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워치만 니의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말씀을 보며 기도하고 훈련하는 가운데…
< 은혜를 구하는 자세 >와 <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 >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