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태풍안에 있어서 피해가 심하다고 합니다. 태풍안에 있기에 그것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은 이렇게 예수님의 영향을 받고 산다는 것이겠지요.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는 십자가를 보며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요. 또한 부활하신 영광의 몸을 보며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와 부활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처럼 나에게 영적인 만나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우린 예수님으로 인해 “나”라는 존재를 매일 재해석해 가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나무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면서 우린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한동안 “너희는 먼저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의가 무엇일까? 의를 구하고 의에 주린다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에 와서는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이해를 합니다. 의란 하나님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가치 있다고 여기시는 절대가치가 곧 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의인은 하나님만이 가치를 판단하시고 결정하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가치 즉, 의를 따르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가치는 우리의 가치와 충돌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육신이 원하는 가치(육체의 소욕)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가치(성령의 소욕)가 부딪히는데(갈5:17) 이것도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영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장치이겠지요. 예수님도 이런 영적싸움을 하셨지요. 공생애 시작부터 겟세마네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의 조롱 앞에서도 이렇게 예수님처럼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 우린 예수님이 누리셨던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기쁨에 동참해 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부족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선언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건강해지고 회복이 되는 것이 구원이라면 구원을 성취하신 것이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용시키실 때 적극 동참해야 할 몫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치 물을 준비해 두시고 입에 까지 대어 주셔도 내 목으로 넘겨야 하는 노력은 내가 해야 하고, 예수님이 휘장을 찢어주셨다면 예수님의 손을 잡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지요.

천국을 침노하는 최후의 몫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천국을 이뤄가기 위해 하나님의 몫과 우리의 몫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고 완전한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이 사랑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며 이 사랑이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능력입니다. 사도바울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를 우주만물에서 가장 최고의 보물로 만드시는 사랑, 독생자까지 내어주면서 우리를 행복하고 기쁨의 존재로 만드시겠다는 사랑…. 그 끝없는 사랑이 하나님자녀의 능력입니다. 천국을 침노함은 곧 이 사랑을 가진다는 것이요 이 사랑이 있기에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모든 것을 가진 자보다 (영적으로) 부유하며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이 고백을 소유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요 바로 천국을 침노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것을 기대하시며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 우리 눈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완성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가치 즉 의를 구하는 삶이며 천국을 침노해서 반석위에 신령한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하나님의 가치, 사랑)는 결코 우리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예수님께 배워야 하겠지요. 예수님은 모든 삶으로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겉모양을 닮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난다면 우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대표되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가치(의, 사랑)를 배워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어떤 인간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새로운 피조물의 삶!!!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복음이요 이 삶을 깨닫고 우리 삶에서 맛 볼때 우린 예수님이 그렇게 이루시고자 했던 하나님나라를 알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의(사랑)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되고
나아가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