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에는 주일학교 한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중에…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안식교
재단인데 보내도 되는지를 저에게 물어오셨습니다.이단이라는 말이 있어서..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훑어보았지만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고,아이는 영어학원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의 부모님들은 원래 카톨릭신자인데 요즘은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고,아이만 저희 교회에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안식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음 주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조언을 구하고 전도사님께 부탁드려서 자료를 본 다음에…간략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저는..어느 날이 정확한 ‘안식일’인가보다, 주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덧붙이며 어디에서든 예배를 드릴 것을 권하였습니다.
물론 이때 제가 생각하는 안식은… 하나님과 화목된 자녀의관계에서 오는 안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보낸 후에… 온유에 대한 아래 표현과 마11:29말씀을 함께 보면서 안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온유의 헬라어 뜻에는 ‘야생마가 주인의 가장 부드러운 명령에도 순종하도록 길들여졌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때 말은 힘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주인이 원하는 대로 힘의 방향이
조정된 것 뿐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고 할 때… 절대 순종,거룩함,온전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들인 성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만들어져 갈 때..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안이 우리를 채워감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안식이 겸손과 온유와 관련되었듯이 …. 안식은 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려는 목적은…. 우리를 훌륭하게 만드셔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기 위함도 있겠지만…
이미 안식의 관계에 있는 우리에게…더 깊은 안식과 기쁨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아무튼 안식을 논하기보다 안식을 누리며 …. 안식없는 세상에 서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