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만큼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왜 마음대로 안 될까요?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이지요. 부모 마음대로 자식을 키우려고 하면 할수록 힘든 일들이 많은 것이 이 세상 이치입니다. 자식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하는 지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의 모습 속에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33년 간을 사셨는데 성서는 그 33년 인생 중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마지막 3년 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의한 잉태와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탄생 시기와 족보를 우리에게 알려 잠깐 줄 따름이지요. 그리고는 대부분 30세로 넘어가는데 루가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12세 때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 내용입니다. 오늘 일은 예수님의 12살 시절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로 소년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사건인데 여기서 성서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얼마나 무관심했으면 12살 된 아이가 어디에 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발견했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당시 상황을 알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나자렛은 예루살렘 북쪽 지역으로부터 약 91km 이상 떨어진 거리였고,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해방절, 오순절, 초막절 등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의 시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마치 행상의 행렬처럼 그룹을 지어서 길을 오고 갔습니다. 더구나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인들은 여인들끼리 모여서 움직였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소년 예수가 보이지 않아도 별 걱정 없이 하룻길을 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뒤늦게 아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가서 사흘만에 찾았다고 하니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애타게 찾은 아들이 성전에서 어른들과 별 일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들 같았으면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화를 낼만도 한데 성모님의 태도는 그래도 고요하시지요. 오늘 복음이 점잖게 전합니다.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루가2,48)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참 뜻밖입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2.49)

궁극적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오늘 복음은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지요. 예수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고 소년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고 성서는 전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부분에 중요한 구절이 나오지요.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루가2,51)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이란 사실을 어머니인 마리아는 깊이 간직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식 농사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은 자녀 교육을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힘들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려고 하니 마음 고생이 안 될 리가 없지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재능이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것을 무시하고 부모가 원하는 길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자녀에게 어떠한 재능을 주셨는지를 찾아내서 키워주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아시지요?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마태25,15)

사람마다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는 다 다르지요.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확인해주고 키워주며, 받은 재능을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시련기를 맞거나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아이의 재능과 상관없이 부모의 욕심을 강요하면 안되지요.

어느 신혼부부가 아기를 낳고 나서 너무나 예쁜 나머지 돌이 되자마자 말하기를 바랬습니다. 엄마, 아빠 소리 듣고 싶어서 ‘엄마’소리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되풀이 들려주었지요. 지성이면 감천이었는지 아기가 말을 하게 되었는데 나오는 소리는 ‘엄마’가 아니라 ‘마엄’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어 있는 것을 억지로 만들면 그르치게 되는 법이지요. 아이의 재능을 찾아서 키워주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련기를 겪지요. 그런데 이 시련기가 성숙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좌절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성숙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경험이 많은 사람의 몫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집에 대입 수험생이 머리도 좋고 평소에 공부도 열심히 잘 했는데 대학에 낙방을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부모가 더 난리를 치고 실망감으로 좌절하면 부모의 몫을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삶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생 길에는 실패도 있을 수 있고 또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때 먼저 태어나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부모가 그 실패의 시기를 성공의 시기로 승화시켜줄 수 있도록 삶의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실수 할 수도 있다. 괜찮으니 용기를 내라.”

부모의 이 한마디가 시련과 실패의 시기를 오히려 성공과 성숙의 시기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모의 몫은 그 정도의 역할로도 족하지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도록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예수님 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안내하고 끌어주며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그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를 통해서 어떤 일을 드러내실 지 마음 속 깊이 헤아리고 기도하시며 인내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교육은 조급하게 서두르며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담고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떤 뜻을 드러내실 지를 분별하고 어려운 시기를 도와주고 바르게 키울 수 있도록 늘 기도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